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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랑 Jan 12. 2019

골 세리머니를 바라보는 예민한 시선

2018년 8월 18일에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이 열렸고 9월 2일까지 그 열기가 이어졌다. 여러 운동 경기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남자 축구 경기였다. 2018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대표팀은 여러 경기를 거쳐 결승전까지 올라갔고 일본과의 대결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이승우 선수는 이란과의 16강,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각각 1골씩, 베트남과의 4강에서 2골을 득점함으로써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173cm라는 작은 키로 인해‘뽀시래기(부스러기를 뜻하는 전라도 지방의 사투리)’라는 별명을 얻었고 SNS에는 ‘이승우 남친짤’이라는 제목으로 이승우 선수의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승우 선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그의 과거 경기도 주목받고 있다. 그 중 재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 2015년 12월 27일에 열린 '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5'이다. 당시 이승우 선수는 사랑팀vs희망팀으로 진행된 경기에서 희망팀의 선수로 출전해 세 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mvp로 선정됐다. 


자선 경기는 승리만을 위한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세리머니로 경기에 재미를 더하는 경우가 많다. 이 날 경기에서도 선수들은 복면 가왕 세리머니, 야구 세리머니 등 다양한 세리머니를 보여주며 관중들을 즐겁게 했다. 이승우 선수 또한 눈에 띄는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골을 넣은 뒤 정지원 아나운서와 함께 댄싱 및 뽀뽀 세리머니를 보인 것이다. 이승우 선수는 인터뷰에서 “골을 넣고 춤 파트너를 찾던 중 정지원 아나운서가 눈에 들어와서 같이 춤을 추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춤을 추던 중 정지원 아나운서의 허리에 손을 얹는 이승우 선수[출처: 비디오머그]
다시 한 번 볼에 입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이승우 선수[출처: 비디오 머그]

하지만 단순히 세리머니로 치부하여 웃고 넘기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이승우 선수는 골이라는 성취에 대한 대가를 정지원 아나운서와의 춤에서 찾았다. 심지어 춤을 추는 와중에 정지원 아나운서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볼에 입을 맞출 것을 요구했다. 이는 남성이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큰 계약을 체결했을 때 여성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성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성취를 만끽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여성을 승리에 대한 대가이자 전리품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세리머니를 끝내고 '해냈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이승우 선수[출처: 비디오머그]

이 세리머니에 대한 정지원 아나운서의 인터뷰를 찾아볼 수 있었다. 정지원 아나운서는 “사전에 협의된 세리머니가 아니어서 당황했지만 거절하면 민망할 것 같아서 응했다.”고 하며 “패기가 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정지원 아나운서가 당황스러웠지만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인 위치에서 남성의 제안과 대시에 대한 여성의 거절은 결코 쉽지 않다. 암묵적으로 하지 말아야할 일에 가깝다. 그렇기에 정지원 아나운서가 거절을 하지 못한 것은 예민한 여성에 대한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때문이다. 


귀여운 모습이 여성에게는 디폴트로 여겨지는 반면 남성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때때로 남성은 귀여운 모습을 어필하여 문제 상황을 모면하고는 한다. 세리머니의 성추행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이승우 선수는 귀여운 남성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있다. 복잡한 이유로 인한 것이긴 하지만 당사자인 정지원 아나운서조차 기분 나쁠 수 있는 문제를 어린 선수의 귀여운 패기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기사의 제목에도 세리머니에 대한 문제의식 대신 자극적인 내용만이 담겼다. 정지원 아나운서를 ‘이승우의 그녀’로 묘사하거나 흔히 클럽에서 추는 춤을 일컫는 ‘부비부비 댄스’라는 말을 사용하여 둘의 댄스를 설명했다. 또한 ‘이승우와 댄스, 좋아서 죽겠네.’와 같은 말로 정지원 아나운서의 기분을 묘사했다. 정지원 아나운서는 이승우 선수와의 댄스가 즐거웠다고 조차 언급한 적이 없음에도 ‘능력 있는 남성이 권하는 댄스와 스킨십을 여성은 항상 좋아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남성주의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네티즌들 또한 이 세리머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룸싸롱에서 할 만한 짓을 왜 여기서’, ‘성추행 아님?’, ‘역겨워’와 같은 불편 섞인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승우 선수의 댄싱 및 뽀뽀 세리머니를 영상으로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대체 여성을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을까?’였다. 정지원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다. 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5를 취재하고 방송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런데 이승우 선수는 정지원 아나운서를 ‘눈에 보이는 여성1’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여성’이라는 성별보다 ‘정지원’이라는 사람을, 이 사람이 취재하러 온 아나운서라는 사실을 우선에 두었다면 허리에 손을 얹고 뽀뽀를 하라고 요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리머니의 대상이 그 어떤 직업의 여성이었어도, 이승우 선수의 열렬한 팬이었어도 이승우 선수가 저지른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이 더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여성조차 성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승우 선수는 그저 자신의 성취에 대한 대가로 여성이라는 성별을 소비했다. 


뽀뽀 세리머니는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다. ‘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3’에서 축구선수 지소연이 골을 넣은 뒤에도 뽀뽀 세리머니가 있었다. 지소연 선수가 넣은 골을 축하하기 위해 손흥민 선수가 지소연 선수의 볼에 뽀뽀를 했고 다른 남자 선수들은 주위에서 환호를 했다. 이 경우에는 지소연 선수가 손흥민 선수에게 뽀뽀를 요구하는 손짓을 취하지 않았다. 지소연 선수는 가만히 서있고 손흥민 선수가 포상하듯이 지소연 선수에게 뽀뽀를 했다. 


지소연 선수와 손흥민 선수의 뽀뽀 세리머니를 성추행까지로 볼 수는 없어도 이승우 선수의 뽀뽀 세리머니와 유사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앞서 이승우의 세리머니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했기에 두 뽀뽀 세리머니의 차이점에 좀 더 집중하고자 한다.


1. 한 남자 축구 선수가 경기 중 골을 넣었고 댄스 세리머니가 하고 싶어졌다. 그때 한 여자 아나운서가 눈에 보였고 함께 춤을 추기를 권했고 손 뽀뽀까지 받았다. 

2. 한 여자 축구 선수가 경기 중 골을 넣었고 세리머니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었지만 한 남자 축구 선수가 와서 뽀뽀를 해줬다. 


1의 남자 축구 선수의 상황과 2의 여자 축구 선수의 상황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남자 축구 선수는 본인의 세리머니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 자신이 생각한 세리머니를 함께 할 상대를 찾기도 하고 당당하게 볼 뽀뽀를 요구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반면 여자 축구선수는 세리머니를 같이 기획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동적으로 남자의 뽀뽀를 기다리고 있다. 본인이 넣은 골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원하는 포상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정된 행동만을 했다. 


이 두 상황의 차이는 결코 개인의 성향 차이로만 넘길 수 없다. 각각 다른 성별의 축구 선수가 이런 행위를 하게 된 것에는 사회적인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리더십있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을 때 존경을 받는다. 반면 여성은 진취적이고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했을 때 ‘여자애가 기가 세다.’와 같은 표면적이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여성은 거절을 표하는 것도, 뽀뽀라는 행위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어진다. 이 모습이 축구 세리머니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이 글을 읽고“즐겁자고 한 일에 왜 죽자고 달려드냐?”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즐거움의 주체가 누구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여성은 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타자화되고 대상화되었다. 사회로부터의 위압적인 시선에 거절의 의사도 거짓된 미소로 숨겨야했다. 이제 우리는 그 미소의 이면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사회 현상을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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