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윽!”
하나는 고양이 쪽으로 다가가다 말고 성당 마당 한가운데서 쓰러졌다.
관자놀이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이 따랐다.
눈앞의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고, 귓가에서 ‘삐-’ 하고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그녀의 눈앞에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
"끼이익!"
낡은 석등이 기울어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마치 연쇄적으로 뼈가 어긋나는 듯한 끔찍한 소리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대한 돌덩이가 옆 돌담을 향해 쓰러졌다.
쿵!!
석등이 쓰러지자 그 충격에 돌담까지 무너져 내렸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그리고… 방금 전까지 들리던 새끼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그쳤다.
소름이 끼쳤다.
-
“하아, 하아……!”
하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현실로 돌아왔다.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기자님! 괜찮으세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
하나는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손을 벌벌 떨며 남자의 소매를 붙잡았다.
신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신부님…….”
하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저기 저 석등…….”
그녀의 손가락이 성당 마당 한편, 기울어져 있는 낡은 석등을 가리켰다.
“무너져요! 저게 무너져서… 고양이들이, 고양이들이 깔려요!”
-
30분 전.
월요일 오후의 진영동 성당은 평화로웠다.
이 고요하고 거룩한 공간에서 주임 신부 차우진은 사제복 소매를 걷어붙인 채 아주 천천히, 우스꽝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표정은 미사를 할 때보다 백배는 더 비장했다.
“괜찮아, 괜찮아. 해치지 않아. 이건 그냥… 그냥 맛있는 참치란다.”
우진은 제 키만 한 나무 뒤에 쪼그려 앉아, 참치 통조림을 나무 막대로 어설프게 밀고 있었다.
성당 마당 한편, 낡은 석등과 돌담 사이에, 어느 날 보금자리를 마련한 길고양이 가족을 향해.
우진이 고양이 가족을 발견한 건 사흘 전이었다.
어미 고양이가 눈도 못 뜬 갓 태어난 새끼 세 마리를 품고 마당 한편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우진의 하루는 고양이와의 어설픈 밀당으로 시작되었다.
문제는 어미 고양이의 경계심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밥을 줄 때면 거의 닌자가 되어야 했다.
우진의 기척만 느껴지면 온몸의 털을 곤두세운 채 하악질을 해댔으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자, 어미 고양이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털을 세웠다.
그 바람에 우진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이쿠! 알았어, 알았어. 안 갈게. 여기다 둘게.”
그는 결국 항복 선언을 하고, 마치 대단한 선심이라도 쓰는 양 멀찍이 물러났다.
그러곤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는 어미 고양이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네, 네. 거기에 놓을 테니 드세요, 드세요.”
우진이 동네 비둘기랑도 대화를 한다는 소문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진의 시선이 고양이 가족 옆 낡은 석등으로 향했다.
언제부터 저기 서 있었는지 모를, 이끼 낀 화강암 석등은 눈에 띄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꼭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저거 언제 한번 사람 불러서 바로 세우긴 해야 하는데…….’
그러나 그는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곤 돌아섰다.
예산 문제와 밀린 행정 업무를 떠올리자 머리가 지끈거렸기 때문이다.
사목 활동이라는 게 꼭 기도와 미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이런 고양이와의 심리전이나 낡은 석등 걱정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과 씨름해야 했다.
하나가 성당에 도착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운전석에 앉아 선배 태수가 보낸 메시지를 보며 툴툴거렸다.
‘하나야, 신부님 사진 잘 찍어 와라. 요즘 보기 드문 훈남이시래.’
“잘생긴 신부님이라고? 휴, 그게 기삿거리가 되나. …되나?”
그녀는 혼잣말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런 인물 취재도 다 도움이 되는 일이겠지.”
그녀는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성당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하필이면 발 끄트머리가 살짝 들뜬 보도블록에 걸렸다.
“악!”
하나는 짧은 비명을 뱉으며 앞으로 넘어졌다.
꽈당!
간신히 땅에 손을 짚어 얼굴이 깨지는 참사는 막았지만, 어깨에 멨던 가방이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안에 든 물건들이 와르르 바닥에 쏟아졌다.
립스틱, 쿠션 팩트, 그리고 취재의 생명인 녹음기와 수첩, 여분의 배터리까지.
거의 뭐 길바닥에 좌판이라도 벌린 모양새였다.
“에휴, 진짜 이 덜렁이…….”
창피함에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하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곤 황급히 소지품을 주워 담았다.
이놈의 덜렁대는 성격은 서른이 되도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프로페셔널한 기자의 모습은커녕 늘 이렇게 우당탕거리는 게 일상이다.
재빨리 물건들을 가방에 쑤셔 넣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은 그녀는, 고개를 들어 성당 마당을 보았다.
그리고 목격했다.
자신보다 더 심한 광경을.
‘어라… 저 신부님, 나보다 한 수 위인데?’
그것이 ‘훈남 신부님’의 첫인상이었다.
나무 뒤에 쭈그려 앉아 고양이랑 대치하다가, 결국 패배를 선언하고 물러나는 모습이라니.
선배 태수가 말하던 성스럽고 고상한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나는 방금 전 창피함은 까맣게 잊고, 자신과 같은 과의 인물을 발견한 듯한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허당 신부와의 오늘 인터뷰는 아주 쉬울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프로페셔널한 기자의 표정을 장착했다.
그리고 당차게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신부님? 혹시 차우진 신부님 되실까요?”
고양이에게 집중하느라 인기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우진이, 등 뒤에서 들려온 맑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가방을 멘 젊은 여자가 어쩐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네! 맞습니다! 제가 차우진입니다.”
우진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고 대답했다.
고양이에게 참치를 바치려다 엉덩방아를 찧은 상황이 민망해서인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안녕하세요, 오늘 인터뷰하기로 한 『주간시사』 이하나 기자입니다.”
하나가 의례적인 미소와 함께 명함을 건넸다.
“아, 기자님이셨군요! 어서 오십시오. 제가 잠시… 길 잃은 어린 양들을 돌보느라.”
우진은 고양이들을 ‘길 잃은 어린 양’이라고 표현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엉뚱함에, 하나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성당이 참 조용하고 좋네요.”
하나가 가벼운 칭찬을 건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론, 진심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성당을 둘러보던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낡은 석등과 돌담 사이로 향했다.
어미 고양이 품에 옹기종기 모여 꼬물거리는 새끼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까맣고, 하얗고, 얼룩덜룩한 솜뭉치 세 개.
“와, 가까이서 보니 너무 귀엽잖아!”
저 작고 무해하기 그지없는 생명들을 보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하나는 자연스럽게 새끼 고양이들에게 다가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왔다!’
-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