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 『주간시사』 편집국 회의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하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았다.
“이하나!”
그런 하나를 보고 오정환 편집국장이 소리쳤다.
그 날카로운 소리에 하나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넵!”
“왜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나! 무슨 죄지었어?”
“그게… 저 때문에 회사에 피해가……”
하나는 여전히 미안한 표정으로, 제대로 된 사과를 하려 했다.
“정말 죄송……”
“박태수!”
하나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말끝을 자르고 오 국장이 태수를 크게 불렀다.
그는 하나의 사과를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네.”
태수가 대답했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수호건설 부실시공 건.”
“안 그래도 보고를 드리려고 했는데요…….”
그 질문에 태수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이 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무서울 정도예요. 국장님 지시대로 하자 소송 판결문 전부 뒤져보고 있는데, 철근 누락은 거의 보편적인 수준이고, 콘크리트 강도 미달 문제도 상당히 많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태수가 침을 꼴깍 삼켰다.
오 국장과 하나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작년에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 신축 공사 현장에서 지하주차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다는 겁니다.”
오 국장의 눈이 커졌다.
“작년에?”
“네. 그런데 단 한 건의 기사도 나지 않았어요.”
“사망자나 부상자는?”
“더 취재해 봐야 알겠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천만다행이죠.”
이번에는 하나가 끼어들었다.
“아무리 수호그룹이라도 그런 큰 사고가 났는데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 있죠? 아니, 그 전에 선배는 그 얘길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관리팀 지원 씨 알지? 지원 씨 부모님께서 그 신축 단지 바로 옆 아파트에 사신다고 하더라고. 붕괴 당시 소리랑 진동이 엄청났는데,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 이상해서 지원 씨한테 최근에야 말했다더군.”
오 국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수호그룹…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언론 통제력이 강한 것 같군. 박태수, 너 혹시 그 사건 첫 기사로 생각하고 있어?”
“네. 진상은 밝혀봐야 알겠지만 이게 부실시공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이 건으로 문을 열고 싶습니다.”
태수의 대답에 오 국장의 근심이 더 깊어졌다.
“하, 이 건도… 아주 난리가 나겠어.”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좋아. 실수 없이 준비해. 이하나는?”
오 국장이 이번엔 하나에게 물었다.
“아, 저는 박주환 군 어머님과 인터뷰한 내용 기반으로 다음 기사 준비하고 있습니다. 3년 전 추락 사고의 진실에 대해서요.”
“그… 생존자분은 만나봤어?”
오 국장이 지선우에 대해 물었다.
“그게… 그분이 지금 사실상 잠적한 상태인지라 아직… 더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가 ‘김민수’라는 가명으로 수호타워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지금은 회사에 말하는 것이 꺼려졌다.
수호타워 붕괴 비전과 관련된 일이나 우진과 함께 겪은 일 모두도.
“그래. 그렇게 진행해. 그리고 오늘 봤을 거야. 국세청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세무조사 시작한 거.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될 거다. 그러니까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해, 둘 다.”
“네.”
“알겠습니다.”
하나와 태수가 차례대로 대답했다.
회의가 끝나고, 두 사람은 무거운 표정으로 회의실에서 나왔다.
자리에 돌아온 하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차우진 신부님’이라고 쓰인 연락처가 떠 있었다.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러나 하나는 결국 버튼을 누르지 않고 조용히 핸드폰 화면을 껐다.
-
그 시각,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는 노동사목위원회 사무실.
그곳에서 우진이 선배 신부인 정형석과 낡은 소파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쩐 일이야? 통 연락 안 하던 녀석이 최근 들어 자주 찾는다?”
형석이 아주 친근한 투로 물었다.
형석과 우진과 신학교 시절부터 끈끈했던 선후배 사이였다
“에이, 신부님 바쁘신 거 다 아니까 연락 자주 못 드렸던 거죠.”
우진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우진을 뚫어지게 보던 형석이 물었다.
“얼굴 보니까 요즘 무슨 일 있구나?”
형석은 예전부터 관찰력이 좋았고 눈치가 빨랐다.
오늘도 우진의 얼굴에서 금세 수심을 알아챘다.
“…….”
우진은 아무 대답 없이 싱긋 웃고만 있었다.
“왜? 혹시 아는 사람이 일하다 사고라도 당했어?”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우진은 말을 망설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왜?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
그 말에 우진은 겨우 입을 열었다.
“어떤 친구가 있어요. 우리 사회에 적개심이 아주 가득한…….”
“그런데?”
형석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아직 확실하진 않은데, 그 친구가… 안 좋은 선택을 하려는 것 같아요.”
형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우진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는 그 선택을 바꿔야만 해요. 그래서 다시 그 친구와 얘기를 나누어보려고 하는데, 솔직히 자신은 없어요. 그 친구… 상처가 워낙 깊어서 말이에요.”
그 말을 들은 형석이 빙그레 웃었다.
“여전히, 너는 참 너답다. 여전히 라자로는 라자로야.”
“네?”
우진이 형석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형석은 잠시 추억에 잠긴 듯한 얼굴로 말했다.
“너랑 신학교 동기였던 베드로 기억나?”
“베드로… 알죠, 민호. 어쩌다 보니 지금은 연락 못 한 지 꽤 됐어요. 그때는 참 친했는데… 그런데 왜요?”
“그 친구 신학교 시절에 외출만 나갔다 하면 술 먹고 사고를 치고 왔었잖아.”
“네… 그랬던 걸로 기억해요.”
“그 친구 퇴교도 될 뻔했었는데 말이야.”
“퇴교요? 그렇게까지 사고를 쳤었나요?”
우진의 눈이 커졌다.
“그랬었지. 술 마시고 들어와서 지도 신부님한테 대들기까지 했으니까.”
우진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은 그 녀석이 사고 친 걸 가지고, 자기가 한 거라면서 나섰었지, 너?”
“어…….”
우진은 당황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었다.
그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일이었다.
“알고 계셨어요?”
“하하하, 거기 지도 신부님, 교수 신부님들 다 알았어. 네가 한 일 아니라는 거.”
“그, 그랬나요?”
우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데 왜…….”
“너니까. 네가 그런 녀석이니까. 교수 신부님들도 그냥 속아주고 넘어가 준 거야.”
“그랬었구나…….”
“그런데 베드로 그 친구 있잖아. 그 이후로는 단 한 번의 사고도 안 친 거 알아?”
“그래요?”
“그래. 지금은 어엿한 본당 신부가 됐고.”
우진은 갑자기 형석이 왜 이 옛날이야기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형석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우진의 어깨를 툭 쳤다.
“라자로야, 옛날부터 난 네가 참 이상했다. 너는 늘 나와는 다른 이상한 답을 내놨지.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늘 그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단 말이야.”
형석이 우진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거다. 네가 진심으로 그 친구를 위한다면, 그 친구도 반드시 변할 거야. 네 마음속 소리를 믿어. 주님을 믿어.”
37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