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어젯밤

by 온새결

“네 마음속 소리를 믿어.”


우진은 서울대교구에서 나오며 계속 형석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형석은 왜 십수 년 전에 있었던 신학교 시절의 일을 꺼낸 것일까.

답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우진에게는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 대화였다.

우진은 진영동성당이 아닌 어디론가 향하며 하나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강준호 군 사건 기사가 실린 『주간시사』를 들고 찾아온 하나와 나누었던 어젯밤 대화를.


-


어젯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설득해 보고 싶습니다. 그가 정말 그런 끔찍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묻고, 만약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우진의 고백에 하나는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우진의 선의와 아이들을 지키려는 그 절박한 마음은 뼈저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6년간 ‘실패’만을 기록해 온 자신의 낡은 수첩이 떠올랐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 어쩐지 애처로운 눈으로 우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신부님.”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따듯했다.


“신부님은 그저 아이들을, 사람들을 지키고 싶으신 거잖아요. 저도 그 마음 너무 잘 알아요.”


하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좋아요. 신부님 말씀대로, 그 사람 마음 한번 돌려보죠.”


우진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말했다.


“고맙습니다. 제가 꼭…….”


그때 하나가 우진의 말을 잘랐다.


“그런데… 이렇게 막무가내로는 안 돼요.”

“…….”

“제가 6년 동안 그래 왔어요. 저도 신부님처럼… 끔찍한 비극을 보면 이성을 잃고 무작정 뛰어들었어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요. 그리고 결과는… 말씀드렸죠?”

“기자님…….”


마음만 앞섰지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우진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아시겠지만, 지금 저희 상황이 더 나빠졌잖아요. 마음대로 수호타워 내부를 돌아다닐 수도 없게 되었고, 저희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점 찍은 사람한테는 경계심만 잔뜩 높여놨어요.”

“…….”

“그 사람, 지선우 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절망과 불신 속에 있을지도 몰라요. 신부님께 그동안 했던 행동을 생각해 보면 말이에요.”


하나의 말을 듣고 우진은 선우를 떠올렸다.

3년 전 세상에게 결국 배신당한 그였다.


“그런 사람에게 지금 신부님이 다시 찾아가서 ‘그러지 말라’고 설득한다고… 그 마음이 돌아설까요?”

하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솔직히… 우리의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버릴까 봐 두려워요.”

“…….”


우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나의 말이 맞았다.


“그러니까 신부님.”


하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따듯했다.


“우리 조심스럽게… ‘같이’ 다가가요.”

“‘같이’요?”

“네. 조금만 더 신중하게요. 그리고 둘이 함께.”

“기자님도 함께 가시려고요?”

“당연하죠! 저도 그 사람에게 다가갈 거예요. 다만 저는 제 방식대로요.”

“기자님 방식이라면……?”

“지금 준비하고 있는 다음 기사가 바로 지선우 씨 사건이에요. 수호건설 현장에서 일어난 박주환 씨, 지선우 씨 추락 사고요.”

“그 기사를… 내보내고 만나보실 생각이세요?”

“네. 자신을 돕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태도도 분명 조금은 누그러질 거예요.”

“네…….”


그런데 어쩐지 우진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왜… 그러세요? 제가 영 미덥지 못해요?”

“아, 아닙니다. 다만…….”


우진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지선우 씨가 그런 말을 했어요. 전에도 저같이 돕겠다는 사람이 찾아왔었다고. 기자, 정치인…….”

“아… 그래요?”

“네. 처음엔 도와줄 것처럼 하더니 나중에 배신을 좀 세게 당했나 봐요.”

“그랬구나…….”

“기자님.”

“네.”

“기자님께서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일 하고 계신지 잘 압니다. 그런데 정말…….”


우진이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

“저한테 그러더군요. 이런다고 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말이에요.”


우진의 말을 들은 하나가 고개를 반쯤 숙였다.

선우가 내뱉은 말은 깊은 상심을 느끼게 만드는 말이었다.

잠시 그러고 있던 하나가 고개를 들더니, 다소 자신이 없는 투로 말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큰 일은 처음이기도 하고……. 그런데 신부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리 알고 있잖아요.”

“……?”

“이게 저희가 저희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거 말이에요.”

“그렇죠…….”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번 해봐요, 우리. 진심을 다한다면… 또 모르죠.”


하나의 말을 들은 우진이 그제야 밝은 기운을 차리며 대답했다.


“그래요. 한번 해봐요.”


하나도 그런 우진을 보고 기지개를 펴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어쩌죠. 지선우 씨 인터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네요.”

“네…….”


그런데 그때 우진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인상을 쓰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에 힘을 주고선 하나에게 말했다.


“저기… 이런 말을 하는 게 사제로서 죄스럽지만… 지선우 씨 말고 있을 것 같아요.”

“네? 뭐가 있다는 거예요.”

“인터뷰를 요청할 만한 사람이요. 그날 현장에 있던 또다른 사람……!”


3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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