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사무실 안.
차의 온기가 둘의 몸을 녹여주었다.
우진은 하나에게 받은 『주간시사』를 말없이 살펴보았다.
“신부님… 뭔가 좀 달라지신 것 같아요.”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요? 글쎄요… 딱히 변한 건 없는데…….”
“그런가요?”
“네…….”
짧은 대화가 끝나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하나는 차를 홀짝 마시며 본론을 꺼냈다.
“그나저나 수호타워 지선우 씨 인터뷰요. 그때 어떻게 됐어요? 제가 요 며칠 기사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못 썼네요.”
‘지선우’라는 이름이 나오자, 우진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차마 하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찻잔만 내려다보았다.
“…….”
“신부님… 잘 안 됐어요?”
우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며칠 전,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네?”
“아이들 생각에… 이성을 잃었던 것 같아요. 기자님과의 약속도 잊고, 떠나려는 지선우 씨를 잡고 물었습니다. 혹시… 수호그룹에 복수심을 품고 있느냐고요.”
하나의 눈이 커졌다.
“지선우 씨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돌아가서 기도나 하라더군요. 그리고 그날 밤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글이요?”
“네.”
우진은 다음 날 박지은 팀장이 찾아와 보여주었던 인터넷 커뮤니티의 저격 글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놀란 눈으로 그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우진과 성당에 대한 비난 일색인 댓글들까지도…….
“아니… 이게 대체…….”
“수호 쪽으로 항의 민원이 빗발쳤다고 합니다. 여론이 너무 안 좋아서… 그날로 상담소는 바로 철수했습니다. 이젠 타워에 들어갈 명분도 없어져 버렸어요.”
우진은 모든 것을 털어놓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기자님. 제가 모든 걸 망쳤습니다. 신중하게 다가가자고 하셨는데, 제가… 제가 다 망쳤어요.”
하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신부님이 왜 사과를 하세요…….”
“…….”
“그 인터넷 글… 괜찮으세요? 상처 많이 받으셨죠.”
“그건… 괜찮습니다. 다만…….”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깊은 자책감과 함께, 어떤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기자님, 부탁이 있습니다. 허락을… 구하고 싶어요.”
“허락이요?”
“지선우 씨를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하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설득해 보고 싶습니다. 그가 정말 그런 끔찍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묻고, 만약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하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쉽게 막을 수 있을까……? 설령 우리의 추측대로 그 사람한테 그런 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데다, 설득한다고 해도 쉽게 마음을 바꿀 리 없을 텐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걸린 일.
하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
다음 날 아침, 『주간시사』 편집국.
하나는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출근했다.
기사가 나간 지 이틀째.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녀의 마음은 자꾸만 묘하게 두근거렸다.
하나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상당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몇몇 동료들이 한데 모여 불안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편집국 안쪽, 경영기획실과 한정혁 대표의 사무실 주위에 특히나 사람이 많았다.
하나가 상황 파악을 위해 다가갔다.
그곳엔 낯선 정장 차림의 남녀 10여 명이 서 있었다.
한정혁 대표와 오정환 국장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고, 김정수 실장은 사색이 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떨고 있었다.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한 대표를 향해 말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서 나왔습니다. 한정혁 대표님 맞으십니까?”
“맞습니다만,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남자가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귀사에 대한 구체적인 ‘탈세 혐의’ 제보가 접수되어, 법에 의거한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합니다.”
한 대표가 옆에 있던 김정수 실장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탈세라니…….”
오 국장이 격앙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갑자기 무슨 탈세며 세무조사예요? 지금 언론 탄압하는 겁니까!”
김정수 실장도 거들었다.
“아니, 탈세라뇨! 저희가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런 제보가 들어왔으면 저희 쪽에 서류 요청하고 확인 절차를 밟으면 되는 일이지,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치는 게 말이 됩니까!”
국세청 직원은 그들의 항의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금 즉시 관련 회계 자료 및 서버 자료 일체에 대한 접근 및 복사를 요구합니다. 특별한 사유 없이 협조하지 않으시거나 자료를 은닉하실 경우 검찰에 고발 조치될 수 있다는 점 미리 안내해 드립니다.”
말이 통하지 않자 김정수 실장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주저앉았다.
“하아…….”
이내 정장 차림의 국세청 직원들이 직원들을 통제하며 온갖 서류들을 복사하고 촬영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회계팀 직원들의 컴퓨터를 통해 서버에 접속한 뒤 데이터를 수집했다.
회사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김정수 실장이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아까 그 남자에게 다가가 따졌다.
“아니! 아무리 제보가 들어왔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 제보가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저희가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은 해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자 그 남자가 귀찮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보에 따르면, 귀사는 ‘특별취재비’라는 항목으로 경비를 불분명하게 처리했더군요.”
“뭐, 뭐요? 특… 특별 취재비요?”
김정수 실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대표님께 전달해 드린 공문에 관련 내용 나와 있습니다. 저희가 다른 직원들한테까지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김정수는 더 항의를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이 모든 광경을, 태수와 하나가 지켜보고 있었다.
태수가 하나에게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 봐둬, 이하나.”
“……네?”
“이게 우리가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야. 그리고…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일 거다. 똑똑히 지켜봐. 그리고 그만큼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네.”
하나는 결연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36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