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존재의 이유가 되는 감정

by 온새미로

사랑을 해본 적은 없다.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걸었던 기억도,

늦은 밤 귓가에 울리는 다정한 목소리도,

서로의 온기를 믿고 기대어 잠든 경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내게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사랑을,

너무 오래, 너무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며 살아왔다.


친구의 눈빛 사이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침묵 속에서,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연인의 손짓 속에서,

나는 늘 사랑을 느껴왔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감정이지만,

어쩌면 그 어떤 감정보다 깊이

내 안에서 자라난 감정이다.


나는 아직 사랑을 해본 적이 없기에,

사랑이 더 신비롭고,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간절하다.


사랑은 늘 가까이 있는 것 같다가도

손에 닿을 듯 말 듯,

어딘가 조금 멀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투명한 감정처럼 느껴진다.


나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삶을 대하는 태도이며,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고,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같이 웃고 울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니까.


사랑은 언제 나에게도 올까.

그런 상상을 하면 가슴이 조금 아릿해진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내게 아직은 낯선 감정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오래, 깊이,

마음에 품고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사랑을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세상의 수많은 장면 곳에서 지켜봐 왔으니까.

버스 안에서 서로 기대어 잠든 연인,

거리에서 우산을 함께 쓰는 사람들,

편의점 앞 벤치에서 조용히 손을 잡고 앉아 있는 노부부.

나는 그런 장면들을 오랫동안 눈에 담았고,

그 따뜻함이 마음 한편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어쩌면 사랑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자리에 없어도,

그 장면이 내 것이 아니어도,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일.


나는 사랑을 상상하면서 자랐다.

소설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노랫말 속에서,

누군가의 입술에 담긴 고백과,

누군가의 눈빛에 담긴 그리움을 따라

사랑을 배웠다.


그래서 가끔은 무섭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은

모두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이기에.

과연 내가 상상해 온 사랑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 간절히 그리워했던 감정이

현실이 되었을 때도,

그 온도와 모양이

내가 꿈꿔왔던 것과 같을까?


그 질문들은 종종 나를 조용히 아프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물음 속에서 나는

아직도 사랑을 믿고 있다는 걸 느낀다.


사랑은 아직 내게 오지 않았지만,

나는 언젠가 올 그 감정을 위해

마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준비는

조금씩 나를 바꾸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결국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나를 잘 안아주고 있는가.

나는 내가 아픈 날에도, 초라한 날에도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줄 수 있는가.

사랑은 타인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은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열고 걸어가는 일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그 길을 나는 아직 걷지 않았지만,

그 길의 풍경을 상상하며

수없이 마음속으로 발걸음을 떼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사랑은 언젠가.

아주 자연스럽게,

햇살이 내리듯 조용히 내게 올 것이라는 걸.


그날이 오면,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서툰 마음을 꺼내어 보여줄 것이다.


그 마음은 완벽하지 않겠지만,

그 어떤 마음보다 진심일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별을 겪고 있으며,

누군가는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모습들이

사랑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풍경을 만든다.


나는 그 풍경 한 귀퉁이에

나만의 작은 이야기 하나를 남기고 싶다.


그 이야기는 아직 쓰이지 않았고,

그 주인공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을 위해 지금을 살고 있다.


사랑은 존재의 이유가 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 감정을,

그 따뜻한 이유 하나를

언젠가 꼭 만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마음을 닦는다.


사랑이 스며들 수 있도록,

그 감정이 머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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