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실패와 도전 그리고 함께, 성장

by 시나브로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것들로부터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2012년, 바둑을 소재로 직장인의 삶을 그려내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웹툰 <미생>에 나오는 대사다. 그 해, 나는 큰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5km 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고, 27분 12초에 완주했다. 대회 다음 날,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한 근육통에 시달리며, 도대체 왜 그리 열심히 뛰었는지 자조적인 한탄을 했다. 하지만 마음이 힘든 순간이 올 때면, 온 힘을 다해 5km를 달렸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10km도 해볼 만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10km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후 하프(21.0975km), 풀(42.195km), 그리고 53km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배운 것들을 나눠보고 싶어 글을 썼다.


1. 꾸준함이 가져오는 힘

처음엔 나도 달리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막연히 꿈꾸기만 했던 마라톤 완주를 실제로 실행에 옮겨보자며 5km 마라톤 대회에 신청했다. 그러나 신청만 하고 달리기 연습은 거의 하지 않았다. 대회 당일, 초반엔 호기롭게 전력 질주했지만 예상보다 길게 느껴지는 5km에 점차 속도가 줄었고, 여러 사람에게 추월당하면서 조급해져 오버페이스를 한 끝에 겨우 완주했다. 첫 메달을 받았을 땐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쉬고 싶었다.

다음 날,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파 파스를 붙이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고생을 하나’ 싶었다.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오히려 그때의 승부욕이 되살아났다. 망설임 없이 10km 마라톤을 신청했고, 눈앞에 목표가 보이니 연습할 이유가 생겼다. 물론, 꾸준히 달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가 오거나, 과식을 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달리기를 미루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순간의 유혹을 참으며 부상 없이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떠올리며 연습에 집중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마라톤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10km를 무사히 완주했고, 그 경험은 나를 마라톤 세계로 이끌었다. 이후 여러 대회에 참여하며 평일·주말 가릴 것 없이 연습했고, 연습량이 쌓이자 장거리 기록도 좋아졌으며, 풀코스 완주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4년 전, 첫 풀코스를 3시간 53분에 완주했고, 그 경험은 다음 도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5km로 시작했지만 꾸준한 연습으로 점차 거리를 늘려 결국 풀코스를 완주했다. 마라톤의 시작은 신발을 신고 뛰기만 하면 된다. 남녀노소 누구나 ‘꾸준히’ 연습한다면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2.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마라톤은 남과 경쟁하는 경기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하는 스포츠다. 걷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때론 멈춰야 할 타이밍을 판단하는 멘탈이 중요하다. 나도 수십 번의 대회를 나갔지만, 실패라 여겨지는 경험도 있었다. 대표적인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하프 마라톤에서 2시간 이내 완주를 목표로 한 대회였다. 연습을 많이 했기에 기대도 컸고, 실제로 15km까지 좋은 페이스를 유지했다. 하지만 3km를 남기고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고, 걷고 싶은 유혹에 결국 항복해 걸어서 완주했고,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50km 울트라마라톤 도전이었다. 밤 10시에 출발해 제한 시간 7시간 내 완주해야 했고, 17km까지는 페이스가 좋았다. 하지만 졸음을 이기지 못해 뛰다 걷다 반복하다가 결국 40km 지점에서 포기했다. 이런 실패는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바둑에서 복기를 하듯, 대회 후 구간별 페이스를 분석하며 나를 돌아봤고, 달리기뿐 아니라 코어 운동도 병행했다. 코어 근육의 중요성을 알게 된 후 꾸준히 운동하며 페이스는 더 빨라졌고, 근육 피로도도 줄었다.

이후 전국마라톤협회 주관 대회에서 10km 남성부문 입상을 목표로 훈련했고, 그 결과 2위를 했다. 1등과의 차이는 단 7초. 그래도 3위를 목표로 달렸기에 만족스러웠다. 실패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었기에, 결국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은 직장 생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실패를 디딤돌로 삼으면, 성장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마라톤이 알려줬다.


3. 함께하는 즐거움

마라톤은 흔히 개인적인 싸움이라 생각하지만, 여러 대회를 경험하면서 나는 ‘함께’의 가치를 배우게 되었다. 2017년, 한 대회에서 두 사람이 주황색 조끼를 입고 끈으로 서로 연결된 채 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신기해서 대회 후 조심스레 다가가 물어보니, 그들은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그를 돕는 ‘빛나눔 동반주자’였다. 시각장애인도 마라톤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들의 밝은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이후 특별한 일정이 없는 토요일마다 VMK 동반주자로서 13km씩 훈련을 돕고 있다.

빛나눔 동반주자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에게는 ‘눈’이 되어주고,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의 ‘눈’을 열어주는 존재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2019년 3월 1일, 3·1운동 100주년 기념 마라톤에서 생애 처음 풀코스를 빛나눔 동반주자로 완주했다. 혼자 뛸 때는 기록 단축에 집중했지만, 동반주자로 뛸 땐 ‘안전’만을 생각했다. 참가자들과 시민들의 응원과 배려 덕분에 4시간 23분 41초에 완주했다. 이후 ‘함께 달리는 즐거움’의 의미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고, 함께할 때 우리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4. 목표 달성을 통한 성장

20대 초반 작성했던 버킷리스트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 중 하나가 ‘마라톤 풀코스 완주하기’였고, 이미 달성한 항목이었다. 이후 더 높은 목표에 관심이 생겼고, 그중 하나가 울트라마라톤이었다. 42.195km를 넘는 거리의 경기를 말하는데, 급수와 간식 제공 빈도도 낮아 참가자가 스스로 보충제 등을 챙겨야 하는 고난도의 레이스다. 첫 울트라마라톤은 7월 밤에 열린 50km 대회였다. 충분히 준비했지만 폭우와 더위, 추위가 반복되는 날씨 탓에 40km 지점에서 무리하지 않기 위해 포기했다. 그 후 2019년 8월 3일, 서울 혹서기 울트라마라톤 53km에 도전했다. 당일 기온은 35℃, 체감온도는 43℃였다.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6시간 40분 43초 만에 완주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서로를 응원하며 달리는 주자들의 모습 속에서 포기 대신 ‘믿음’으로 달리면 끝이 보인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 5km를 뛸 때는 울트라마라톤까지 도전하리라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며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가다 보니 어느새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한 자신이 있었다. 앞으로는 TNF Korea 100K 울트라마라톤, 호놀룰루 마라톤 풀코스 완주라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할 것이다.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시 성장할 것이다.


내가 마라톤을 통해 배운 것은 4가지다.

5km에서 53km까지 완주하게 한 꾸준함,
실패를 통해 얻은 성장,
혼자보다 함께의 소중함,
그리고 목표를 이루며 성장하는 자신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저 체력을 길러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마라톤에 함께 참여해 완주의 기쁨, 성장의 즐거움을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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