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에서 배운 것들

H 프로젝트 - 13

by 시나브로

인도에서 열린 제2회 리그에 참가했다. 인도 각지에서 다섯 개 팀이 출전했고, 우리나라 선수 네 명이 각각 다른 팀에 배정되었다. 멕시코에서도 세 명의 선수가 와서 팀을 섞어 경기를 치렀다. 나는 구자라트 지역 팀에 소속되어 네 경기에 출전했고, 두 골을 기록했다. 최종 성적은 1승 1무 2패,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 대회는 인도 측에서 해외 선수들을 초청해 함께 뛰며 배우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처음 놀란 것은 시간 개념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경기 일정이 아침 9시로 정해져 있었지만, 막상 경기장에 도착해 보니 다른 팀이 대관을 해놓아 경기가 몇 시간 후로 미뤄졌다. 숙소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열악한 숙소를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내일 밤 9시에 데리러 가겠다"고 해놓고 11시가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오늘은 안 되고 내일 이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점점 ‘여기선 원래 이런가 보다’ 하는 체념이 자리 잡았다.

숙소 환경도 충격적이었다. 냉장고, 헤어드라이어, 전기포트, 화장지 같은 기본적인 물품이 없었고, 방 안 곳곳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녔다. 씻을 때는 뜨거운 물과 찬물을 따로 틀어 고무대야에 받아 바가지로 퍼서 사용해야 했다. 방도 너무 좁아 캐리어를 펼치면 더 이상 움직일 공간조차 없었다. 도시의 외형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실제 생활환경은 여전히 불편함이 많았다.

더 황당했던 것은 대회 운영 방식이었다. 기본적인 경기 일정표조차 제공되지 않았고, 선수들은 하루 종일 기다려야 했다. 심판 역시 정해진 명단이 아니라, "그냥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너가 들어가"라고 지시하는 식으로 배정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심판도 초청을 받아 왔지만, 이런 운영 방식에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도 인도는 여자 시각축구팀을 다섯 개나 꾸려 대회에 참가시켰다. 실력은 부족했지만, 투지만큼은 대단했다. 이곳에서는 축구를 배우려는 열정이 확실히 존재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놀라운 경험도 있었다. 구자라트 지역에서 벵갈루루까지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현지 선수에게 물어봤다.
"얼마나 먼 거리야?"
"약 2,000km 정도."

2,000km라면, 비행기로는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다. 그런데 예상과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비행기? 온리 트레인(Only Train)."

비행기는 없고, 기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얼마나 걸렸냐고 다시 묻자 36시간을 기차에서 보냈다고 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기차로 무려 36시간이라니. 서울에서 제주도를 수십 번 왕복할 거리였다.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기차에서 이틀 가까이 시간을 보내고도 경기장에 나오는 체력이라니, 이 나라 선수들은 기본적인 생활환경이 다르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언어의 장벽이었다. 내 팀의 한 선수는 매우 친절했고,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려 했다. 경기 전후로 말을 걸고,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어주려 했지만, 내 영어 실력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경기 흐름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나 개인적인 생각을 나누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라커룸에서 선수들이 웃으며 서로의 플레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그 흐름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더 영어를 잘했더라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이런 혼돈 속에서도, 인도는 끊임없이 새로운 인재를 배출하는 나라다.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천재들이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런 환경이었기에 더 강한 인재들이 탄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갖춰진 환경에서는 쉽게 기대고 안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족한 환경 속에서는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의지가 생기고, 그것이 강한 개개인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경험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의 적응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축구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같지만, 그 축구를 둘러싼 환경은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다는 걸 몸소 느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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