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프로젝트 - 15
공연장은 원래 스탠딩이었다. 하지만 한 스태프가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덕분에 편하게 앉아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밖에서 수십 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결국 남아 있던 의자마저 치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그럼 서 있겠다”고 했고, 그렇게 약 10여 분을 서서 공연을 봤다.
그러다 처음에 나를 도와주셨던 그 스태프가 다시 와서 “2층으로 올라가면 앉을 수 있다”며 안내해 주셨다. 덕분에 다시 자리에 앉아 편하게 공연을 볼 수 있었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택시까지 태워주셨다.
나중에 공연장에서 내가 앉았던 곳이 어디였는지 물었더니, 뮤지션들이 대기하는 공간이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공연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것도 출연진들이 쉬던 공간에서 감상한 셈이었다. 공연은 소리만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공연을 보면서 중간중간 궁금한 것들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분위기는 어떤지, 조명이 어떻게 바뀌는지, 뮤지션들의 표정은 어떤지. 작은 부분들이라도 상상하고 싶어진다.
그렇다 보니 나는 공연장에서든, 다른 자리에서든 도움을 받을 때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한다. 감사의 표현도 정중하게,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결국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입장이다. 그러니 아무리 예의를 갖추더라도, 본질적으로는 도와달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예의를 차리는 것도 결국 포장의 한 형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포장이 어떻게 되든, 결국 알맹이는 같다.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고, 그 요청을 최대한 정중한 방식으로 전하는 것. 그것이 맞는 길이긴 하다. "위선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 말에 공감이 가는 순간도 있다. 2층에 올라갔을 때, 스태프가 나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지 크라잉넛의 한경록 님이 직접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경록입니다. 공연 재미있게 즐겨주세요." 순간 놀랐고, 너무 감사해서 나도 인사를 드리고 악수를 청했다. 경록 님이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알고 직접 와서 말을 걸어주셨다는 게 참 인상 깊었다. 좋았다. 공연도, 배려도, 그리고 이런 따뜻한 순간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