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헤맴, 그리고 살아있음

H 프로젝트 - 16

by 시나브로

가끔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모하게 길을 나선다. 그렇게 헤매다 결국 공연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 길을 찾지 못하거나,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막혀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순간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직접 도전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걸어갔다는 것. 거기에서 오는 희열과 자부심이 크다.


지난 일요일, 화성에서 혼자 있게 된 날, 배가 고파 편의점을 향해 길을 나섰다. 익숙하지 않은 길, 눈이 쌓인 길, 낯선 방향감각. 그럼에도 걷는다. 편의점에 도착하니 아주머니가 묻는다.

"같이 오지, 왜 혼자 왔어?"

"같이 올 사람이 없어서 혼자 왔죠."

가는 길은 쉽지 않았지만, 한 번 다녀오면 다음에는 덜 헤매게 된다.

두 번, 세 번 반복하다 보면 길에 대한 단서가 더 보이고, 조금씩 나만의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도움을 받기도 한다. 비장애인 친구인 키퍼에게 내가 어디서 헤맸는지, 곡선 구간에서는 어떤 기준이 사라졌는지를 이야기했더니, 그 친구가 지형을 보고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힌트와 랜드마크를 알려줬다.


이런 교류가 참 중요하다. 길을 보면서 다니는 사람과, 지면의 느낌만으로 걷는 사람 사이에는 인지 방식이 다르다. 점자블록이 없을 때, 발자국의 감각이나 벽의 흐름 같은 미묘한 단서들이 중요해진다. 이 차이를 서로가 이해할 수 있어야, 비장애인도 나에게 힌트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알려줄 수 있다.


보고 다닐 수 있는 사람에겐, 가는 길을 알면 오는 길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다르다. 구분되는 랜드마크와 그렇지 않은 곳이 섞여 있고, 작은 단서 하나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반복해서 몸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렇게 조금씩 더 알아간다. 요즘 함께 지내는 룸메이트는 나와 같이 입단한 K3 리그 골키퍼 출신이다. 센스가 좋고, 성격도 잘 맞는다. 이런 사람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다.


오늘은 화성의 건달산이라는 곳에 다녀왔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무사히 내려왔다. 힘들었지만 기분은 참 좋았다. 길을 나서는 건 늘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직접 걸어 나서고, 어떤 식으로든 도전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언제나 편한 건 아니지만, 그 도움은 내가 걸어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나는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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