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과 웃음 한 그릇

H 프로젝트 - 17

by 시나브로

지난 일요일, 식당에 다녀왔다. 따끈한 실내 공기 속에서 은은하게 밥 짓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비빔밥을 시켰다. 잠시 후, 스테인리스 쟁반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비빔밥이 나왔다. 젓가락을 내려두고 숟가락을 들었다. 손끝으로 그릇의 둥근 가장자리를 짚으며 가운데쯤을 더듬어 들어갔다. 그리고 아주 열심히, 팔에 힘이 들어갈 만큼 비볐다.


"이 정도면 됐겠지" 싶어 한 숟갈을 떠 넣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나물만 씹혔다. 비비긴 비볐는데, 밥 맛이 나질 않았다. 뭔가 빠졌다는 감각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다시 그릇 안을 더듬고, 숟가락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느낌은 그대로였다. 그때, 왼손 옆으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뭔가 싶어 조심스레 테이블 위를 더듬었다.


그리고— 웃음이 터졌다. 뚜껑도 열지 않은 공기밥 한 그릇. 그대로 멀쩡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밥도 넣지 않고 열심히 나물만 비비고 있었던 것이다. 황당해서, 웃겨서,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고 밥 뚜껑을 열었다. 김이 아직도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밥을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하지만 팔은 이미 절반쯤 지쳐 있었다. 숟가락이 나물과 밥을 가르며 느끼게 해준 저항감이 비로소 이게 비빔밥이라는 걸 실감나게 해줬다.


식탁 위의 모든 걸 하나하나 손끝으로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일이다. 지나치게 더듬는다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많은 순간을 그냥 참고 넘기게 된다. 그날도 그랬다. 하지만 어이가 없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테이블 위를 조금 더 더듬어보았다. 조금 위쪽, 작고 묵직한 사기그릇의 테두리가 손끝에 닿았다. 국이었다. 생각도 못 한 따뜻한 존재가 그 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마치 숨은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날 식탁에는 시각장애인 세 명이 함께 앉아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시간이 꽤 지난 뒤에도, 그 상황이 자꾸 떠올라 속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공기밥도, 국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보다는 그날의 어이없고도 유쾌했던 순간이 더 오래 남는다. 어떤 이에게는 조금 웃기고, 조금 짠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이 이야기를 가볍게, 함께 웃으며 나누고 싶다.


비빔밥 한 그릇, 그리고 웃음 한 스푼.
그날의 점심은 지금까지도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미소를 머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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