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는 어디쯤에 놓여 있어야 할까

H 프로젝트 - 21

by 시나브로

얼마 전, 아는 방송 작가에게 연락이 왔다.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장애인친화 건강검진기관이 있는데,
그곳을 이용해본 적이 있는지,
혹시 불편했던 점이나 개선할 만한 부분이 있었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건강검진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럼요, 여러 번 받아봤죠.”
그러자 다시 되물었다.
“그게 장애인친화기관에서였나요?”

나는 멈칫했다.
그런 기관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집 앞에도 병원이 있는데 굳이 멀리까지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동네의 작은 병원도 혼자 다녔고,

크고 복잡한 병원도 여러 번 경험해봤다.
처음엔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막상 들어서면 누군가 팔을 잡아주었고,
창구까지 가면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안내해주었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 밖을 나올 때까지, 도움은 끊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장애인친화’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따로 지정하는 것에
솔직히 조금 의문이 들었다.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몸이 불편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는 곳 아닌가.
그런데도 “장애인에게 친화적인 병원”이라는 간판이 따로 필요하다면,
그 말은 곧 지금의 많은 병원들이 기본적인 배려조차 아직 부족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말했다.
“지정은 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기본 장비조차 없는 곳이 많다더라.
그래서 직접 이용해본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누군가 팔만 잡아주면 길을 걷는 데 큰 불편은 없다.
그래서 병원 이용도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휠체어나 보행이 어려운 사람들은
다른 차원의 장비나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만 이용하세요’라는 식의 지정 방식은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장애인의 현실은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장애를 하나로 뭉뚱그리는 시선이다.

시각, 청각, 지체, 발달… 장애는 나열만 해도 다르고, 현장에서 겪는 불편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장애인 전용”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같은 방식으로 취급받는다.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기다릴 때, 나는 한 가지를 기대한다.
누군가가 내게 자연스럽게 다가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조심스레 물어주는 순간. 그 한마디면 된다.

굳이 특별한 설비가 없더라도, 그런 태도 하나만으로도 공간은 충분히 편안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편의란, 어디쯤에 있어야 하는 걸까.
장비나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태도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장애를 분류하고, 구분하고,
그에 맞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당연한 기준으로 여겨지는 날이
언젠가는 올까. 아직은 조금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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