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내가 공부를 놓지 않는 이유
공부(工夫)의 사전적 의미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공부에 대해 내 나름의 콤플렉스가 있었다. 어디선가 만들어놓은 울타리에 순서가 매겨졌고, 이를 통해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미묘한 '차이'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릴 때는 지금보다 절실하게 공부에 매달리진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해야 하니까, 남들이 하니까, 점수와 등수에 따라 보상이 정해지는 방식의, 부모님이 무엇을 줄지 정해놓는 식의 계약관계처럼 수동적인 공부로 접근했다.
남들이 시켜서 하는 건 싫어하는 기질이 있었던 탓일까. 공부로는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진 못했었다. 아니, 노력과 시간 투입이 부족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공부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지냈던 내가 조금씩 공부라는 녀석과 가까워진 건 '책' 덕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는 좋아했다. 특히,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좋아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정해진 정답이 없음을 느끼곤 했다. 이런 생각이 강해서였는지, 지금 돌아보면, 청소년기에 공부라는 한 영역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 경험은 삶에서 중요한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 한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만의 길은 뭔데? 하면 명확히 답을 내리진 못했다.
방황하는 시간 속에서, 책은 나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동안 읽어보지 않던 분야의 책을 다시 읽어보거나,
책을 읽다 보면, 좋은 인용구를 발견하면, 그 책을 읽어보고자 메모를 남기다 보면
읽을 책 리스트는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책을 읽으면서
흐리멍덩하던 내 눈빛은 조금씩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인생의 답이 그려진 건 아니지만,
일단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는 그 마음과 행동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한 권씩 읽어 나간 책만큼, 나의 나이도, 나의 상황도 변해갔다.
이제는 사회인으로 살면서, 아직 미생이지만 그동안 목표했던 별들을 따보기도 하는 순간도 만끽했고,
꾸준히 공부하며, 이전의 나와는 다른 결과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처음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을 때는, 이거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간사했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진 사람을 질투하게 됐고, 둘을 가지면
셋 이상을 보유한 사람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러한 부러움과 결핍은
지금의 나로 거듭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공부하고 독서하고,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던 이유가 '확신'을 받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처음 생각과는 달리 시간을 다해 노력했어도, 그걸 얻어냈음에도 인생에서 확신은 없었다.
그렇지만, 어떤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왔던 순간들과 과정은
지나고 나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는 주요한 재료였다.
특히, 당시에는 힘들다고 느꼈던 시간도 지나고 나면 미화되는 건 무엇일까.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시련과 실패는 가슴 아팠지만, 그것들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일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의 경험과 기회도 마주하게 됐다.
공부를 계속해도 확신이 생길까? 이건 아직 모르겠다. 내 공부량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해서 아직 판단할 수 없는 시기일 수도 있고, 애초에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인데, 그걸 판단하려 하니 애매모호해진 것일 수 있다.
공부의 끝에는 어떤 결말이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럼에도 공부를 통한 ‘결과’만큼 ‘과정’ 역시 소중하니까.
그렇지만 ‘불안’하다 해서 공부하는 것만은 아니다.
불안을 넘어,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작지만 가장 강한 힘이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