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가진 것보다 부족한 것을 먼저 보게 되는 습관에 대하여
"이 정도면 배가 터질 것 같아."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한 뷔페에 가면 반복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시선이 간다.
이미 터질 것 같은 배를 알면서도, 나는 접시에 다시 음식을 담는다.
이런 상태가 과연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까?
머릿속은 충분하지 않지만, 실제 그걸 받아들이는 몸은 충분을 넘어 과하다고 느낀 건 아닐까.
일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종종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충분’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충분(充分)은 모자람 없이 넉넉함을 말한다.
수동적인 상황이나 음식 앞에서는 ‘충분’이란 단어를 습관처럼 떠올린다.
그런데, 왜 직접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상황에 직면할 때면
'충분'이란 단어가 쉽사리 나오지 못할까?
현재 내 나이는 30대 중반을 가리키고 있다. 어린 시절, 30살만 되면
내가 갖고 있던 질문과 의문은 해결되고, '충분'한 어른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30이란 나이가 되어보니, 충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족하고 배울 점이 많은 어른이었다.
내 주변, 결혼에 대한 단어와 '2세'라는 단어를 두고는
‘충분’이란 단어는 더더욱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있어야 할까?
2세를 낳기 위해서는 현재 내 통장 잔고, 자산은 얼마나 있어야 할까?
막상 X를 생각해도, 그 근방에 도달하면, 부족한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듯, '충분'이란 단어는 내 인생에서 쉽사리 가까워지지 않는다.
주변에서 아무리 이 정도면 '충분'하다, 괜찮다고 얘기해도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목격하곤 한다.
점점 타인보다 자신에게 엄격해진다.
그래서 나는 늘 약간의 불안과 결핍을 안은 채, 무언가를 준비하고 채우는 데 급급해진다.
20대 초반, 내 나름 꿈꾸고 목표했던 것들이 있었다. 일명, 버킷리스트라 불리는 것.
버킷리스트에 빼곡하게 적힌 내용 중 일부는 달성하고, 얻어냈을 땐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잠깐의 성취 기쁨은 감기처럼 앓다가 금세 사라졌다.
또 다른 도전할 것과 앞보다는 위를 보며 충분해지려고, 욕심을 내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자신이 싫었다. 계속 나를 혹사하는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그걸 버틸 체력이 됐다면, 조금씩 체력은 줄어드는데
예전만큼 욕심은 줄어들지 않으니 그걸 버티지 못하고 소진되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알량한 자존심이 생기면서부터는 바닥부터 시작하자는 마음보다는
일단 갖춰지고 난 다음, 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행동보다는 생각에만 갇혀 나를 괴롭히곤 했다.
지금도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완벽히 벗어나진 못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려 노력했다.
인정하면서부터는 고민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을 받았다.
지금의 나는 부족하다, 충분하다고 자기 암시를 하는 것보다는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말하는 ‘충분함’은 이미 가진 걸 바라보는 감정이 아닌
아직 부족한 점에 시선을 두는 습관에 가까웠다.
그래서 충분해지려 노력하기보다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고, 꾸준히, 지치지 않고
나만의 삶의 원칙과 방식을 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생각이 달라지니, 행동과 마음가짐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잘해야겠다는 강박보다는, 일단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처음부터 잘하면 그게 신이지, 인간이냐!" 하며 스스로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은 생각과 행동이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