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업무’를 구분하게 된 어느 하루
흔히 말하는 일은, 무엇을 이루거나 대가를 받기 위해 시간을 쓰는 활동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걸까? 일이 즐거워서 열심히 하는 건지, 아니면 일을 통해 얻은 성취가 곧 나를 나타낸다고 믿었기 때문인지. 아직도 나는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예전보다 일에 대한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다. 책임과 기대, 역할에 대해 혼자만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때도 있었다. 누가 과한 업무를 지시한 건 아니었지만, 내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다. 이렇게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벌써? 0월이야? 하는 말을 반복적으로 내뱉곤 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됐다. 점심을 먹은 뒤, 이전보다 풀린 날씨에 혼자 산책을 하면서 긴장을 풀려 했다. 매일 가던 산책길 대신, 오늘은 약간의 용기를 내 다른 길로 걸어봤다. 익숙했던 시간에서 다른 감각이 들어가니 시간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일을 잠시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돌아갈 시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느껴지는 공기.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따사롭게 내려오는 햇살이 나의 기분을 풀어줬다. 아무 생각 없이 걸으려 했지만 머릿속 생각이 가득했어도 마음은 가벼웠다. 고민을 풀려고 걷는 게 아니라 걷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긴 했다. 이렇게 걸으면서 가벼워진 마음이, 오후 업무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길 바랐다.
일의 무게를 체중계로 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직급이나 역할에 따라 명확하게 나뉜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보이지 않는 무게 앞에서, 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까지 의미를 과하게 덧붙이곤 했다.
일을 하는 시간은 분명 소중하다. 자유에는 제약이 따르지만, 그 시간 덕분에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를 알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을 하나씩 만들고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금세 대체될 수 있다. 내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내 '업무'일 뿐이다. 지금의 나는, 해당 업무를 맡은 담당자일 뿐이다. 내 일은 내가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지속 가능함이지만 업무는 조직 내 상황과 인사 특성에 따라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업무에 익숙해진다고 해서, 업무가 곧 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업무를 맡고 있는 동안만큼은,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 미래의 ‘내 일’을 위한 준비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