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엄마표영어, 그리고 공교육의 현실

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2. 다른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

by 유혜

해윤은 적극적으로 '엄마표 영어'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한 출판사에서 열린 엄마표 영어 세미나를 들으면서, 그곳에서 추천하는 전집도 구매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엄마표영어 선배맘들의 경험담 책도 많이 구매해서 읽었다. 맘카페를 활용해서 영어원서들을 공구(공동구매)했고, 매일매일 하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었다. 세미나에서 얻은 지식을 기반해서, 처음 1번만 한글로 내용을 알려주고, 그 다음부터는 영어로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주었다.


영어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흥미로웠던 건 엄마의 눈으로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은 반응이 별로였고, 재미없을 것 같았던 책은 오히려 반응이 좋은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하임이는 책을 한권 정해서 읽어주면 며칠 지나지 않아 책에 나오는 모든 대사를 다 외우고, 역할극(인형극)으로 혼자 대사하며 놀고, 노래가사를 다 외워서 부르고, 심지어 피아노로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엄마표 영어에서는 이것을 '아웃풋'이라고 불렀다. 아웃풋이 나오면 다른 책으로 진도를 넘어갔다.


아이들마다 성향이 다르고 효율적인 학습법이 다른데, 그걸 파악하는게 엄마의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았다. 하임이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와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야기 중에서도 공주,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고, 노래 중에서도 잔잔하고 밝고 평온한 멜로디를 좋아했다. 그래서 잘때도 계속 듣고, 피아노로 치고, 엄마를 지휘하며 계속 불러댔다.


하임이 나이 때에는 무조건 인풋의 양이 중요했다. 책의 조언을 따라 하임이에게도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자 아웃풋이 나타나서, 입에서 영어단어가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6개월쯤 지나자 영어노출시간이 아닌 평소 놀이시간에도 영어가 툭툭 튀어 나왔다. 하임이가 혼자 인형놀이를 하면서 영어로 놀았다. 그 중에는 문법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말도 있었지만 해윤은 개입하지 않고 즐기도록 그냥 두면서 관찰했다. 하임이의 영어실력은 엄마를 번뜩번뜩 놀라게 하기도, 더욱 잘 해주어야겠구나 의욕을 주기도, 이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하는 들뜸을 선사하기도 했다.


해윤은 짧지만 영어유치원 강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었다. 영어유치원과 비교한다면 하임이에게 영어인풋을 시킨 것은 매우 적은 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표영어에 대한 여러 선배맘들의 경험, 책, 강의 등을 듣고 해윤은 많은 것을 얻었고, 그 깨달음을 하임이에게 실천했다. 그 결과 몇 가지 원칙을 깨달았다. 그동안 영어를 서둘지 않고 모국어 독서력을 탄탄히 쌓았던 것이 잘한 것이라는 점, 만6세부터 시작해도 절대 늦은게 아니라는 점, 수퍼맘들 따라하지 말고 엄마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점, 아이와 함께 즐기자는 점.


하임이는 유치원을 졸업하기 전에 영어로 엄마와 간단한 의사소통이 되었다. 이제 처음 읽어주는 영어책이라도 아이가 알만한 문장은 그냥 지나가고 모를만한 문장만 번역해 주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평상시에 엄마와 단둘이 대화할때는 할수 있는 표현은 거의 영어로 말했다. 대화하다가 영어로 안되면 한국말이 나오는데 해윤은 지적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어표현으로 유도했다.


한편으로 해윤은 슬슬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임이는 어려서인지 확실히 엄마보다 발음도 좋고, 한번 input되면 놓치지도 않았다. 해윤은 하임이의 영어실력이 곧 엄마를 뛰어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엄마와 행복하게 영어놀이를 하는 한편, 유치원에서는 지루한 매일이 이어졌다. 7살 친구들 사이에서는 또래문화(끼리끼리 모여노는)가 있었고, 하임이는 아린이의 도움이 강제로 사라진 이후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을 어려워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임이는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양보했고 누구와도 다 친했다. 하지만, 그 '무리'에 들지 못했다. 유치원에서 심심하게 오전시간을 보낸 후에 오후에는 태권도장에서 어린이집 친구들과 놀았다.


해윤은 하임이의 모습을 보며 고민하다가 어린이집 선생님께 상담을 했고, 원한다면 다시 어린이집으로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심 그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을 했고, 하임이에게 물었다.


"하임아, 만약에 하임이가 원하면 유치원 안 다니고 다시 00어린이집으로 다닐 수 있대. 하임이 생각은 어때?"


그랬더니 하임이는 의외의 답을 했다.

"아니야, 여기서 힘들어도 조금 더 있어볼래."


해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유치원에는 친구가 없어서 힘들잖아. 어린이집에는 친한 친구들이 많잖아."


하임이가 대답했다.

"그래도 조금 더 노력해보고 싶어."


이 말에 해윤은 하임이를 다시 보았다. 몇개월 더 자란 하임이는 그만큼 내면도 강해져 있었다. 나약한 자신과는 다르게, 새로운 환경에서 도피하려 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보고 싶다는 7살 아이의 말. 해윤이는 그런 하임이를 계속 지지해주고 싶어졌다.




그러나 어른의 눈에 보이는 공립 병설유치원의 단점이 분명히 있었다.


한 번은 일이 있어서 하원시간을 맞추지 못해 5분만 늦는다고 죄송하다는 연락을 드렸다. 도착해보니 하임이는 교실이 아닌 교무실 행정선생님 자리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해당 학생이 교실에 있어야 할 시각이 아닌데 교실에서 활동하다가 안전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치원에서 교문까지 나오는 도중에는 운동장에 미끄럼틀이 있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유치원 아이들도 하교시간에 타고 싶어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유치원 원장선생님은 강력히 이용금지를 말씀하셨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위한 규격에 맞추어져 있는 미끄럼틀을 타다가 안전사고가 생기면 누구 책임이냐고 하셨다. 이번에 새로 오신 원장선생님이 퇴직을 앞두고 있는 분이라서 더 예민하신거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조직문화에 따른 책임회피, 아이들의 입장보다는 사고에 대한 면피부터 생각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해윤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교사들의 문화와, 선배맘들의 이야기에 우르르 휩쓸려가는 엄마들의 문화가 그대로 초등학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해윤은 공립 초등학교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안학교나 홈스쿨링도 알아봤다.


해윤은 하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오전시간동안 재택으로 할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코칭수련, 한국어강의, 구매대행... 하지만 고작 하루에 4시간남짓. 수익은 만족할수 없을 정도였다.

앞으로 아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도 더 든다는데... 해윤은 유학과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한 자신의 선택이 - 어쩔수 없었다는걸 인정했지만 - 혹시 나중에 아이에게 흠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제대로 된 직업이 없는 그냥 아줌마인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엄마가 시간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홈스쿨링은 자신이 없었다. 대안학교는 대부분 서울 외곽에 있어 해윤이 아이를 챙기면서 새로운 일을 찾기도 어려워보였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유치원 친구 맘으로부터 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남편이 알고 있는 대안학교가 있는데, 거기 정말 좋다던데요?"


해윤은 솔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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