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오늘만 잘 하면 장난감 사줄께!

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2. 다른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

by 유혜

해윤은 몇군데 대안학교를 알아봤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기독교학교이면서 정치적으로 다투거나, 이단에 가까울만큼 종교색이 다르거나, 학교분위기가 엄하거나... 한 가지씩은 마음에 안들었다. 그런데 이 친구엄마가 해주는 말은 달랐다.


"우리 남편이 아는 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 아이들은 참 행복해보인다고 느껴진대요."


그 엄마가 추천해준 곳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행복한 학교'였다. 곧바로 학교에 연락하여 상담예약을 잡았다. 규모는 작았지만 학교선생님들의 열정이 느껴졌고, 초1부터 고3까지 12개학년이 친언니동생처럼 지내는 것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학생들 간에 갈등이 생겼을때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해윤은 하임이를 이 학교에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전세계약 만료에 맞추어 학교 근처로 이사를 계획했다.


이 학교에서는 입학 전에 '체험평가'라는 행사가 있었다. 듣기로는 입학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이 체험평가에서 잘 하지 못하면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해윤은 긴장했다. 혹시라도 체험평가에 떨어지면 어느 학교를 보내야 할지, 이사하려고 맞춰놓은 모든 계획들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막막했다. 전세집도 어렵게 구해놓은 상태였다. 꼭 이 학교에 다니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체험펑가 당일, 낯선 곳에서 하임이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해윤이 아무리 알아듣게 여러번 설명했지만 하임이의 불안을 낮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머님, 수업을 먼저 시작할테니까 하임이 마음이 진정되면 들여보내주세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결국, 다른 친구들이 모두 교실로 들어갔고, 하임이와 엄마만 남았다. 해윤은 하임이를 혼내지 않고 천천히 달래면서 교실 앞까지 도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교실 안을 들여다 본 하임이는 낯선 공간에서 또다시 불안해 했고, 엄마에게 안겨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하임아, 오늘 하루 잘 하면 장난감 사줄께!!"

해윤이는 그동안 한 번도 써먹지 않았던 필살기를 꺼내 들고 말았다. 어떤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장난감을 사준다든지 하는 보상을 제시하는 것은 절대 좋지 못하다고 육아책에서 읽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장난감...?"

하임이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선생님이 내 옆에 앉게 해줘."

하임이가 제시한 조건이었다. 하임이 나름대로는 자신의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었다. 알겠다고 하고는 하임이를 교실로 들여보내며 선생님께 꼭 옆에 앉아달라고, 하임이에게 들으란 듯이 크게 말했다. 사실 이 공간에 익숙해지기까지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이 꼭 옆에 계속 있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장난감이 아니었어도 하임이는 오늘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낯선 공간에서 엄마와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그 두려움을 하임이는 아직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도구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난감을 사용했다.


차라리 장난감이 나은 선택이었다. 그 순간에 하임이를 다그쳤거나, 하임이가 스스로 결심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억지로 끌어갔다면 분명 더 큰 불안을 유발했을 것이다. 1년간 놀이치료를 받고, 2년간 부모상담을 받으면서 해윤이 깨우친 인내심의 결과였다.


이 날, 하임이는 학교에서 점심도 먹고 오후수업까지 다 마치고 웃으면서 나왔다. 집에 오는 길에 약속한 대로 장난감도 사주었다.


"근데, 엄마도 집 나가고 싶을 때 있어?" 자기 전에 하임이가 물었다.


무슨 말인가 하고 물어보니, 오늘 체험수업에서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함께 읽고 활동했다고 한다. 책의 내용처럼 엄마가 집안일을 하다가 도망가면 어떡하나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엄마 소원 들어주기 쿠폰 3장을 꺼냈다. 거기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빨래 도와드리기', '설거지 도와드리기', '집청소'라고 씌여 있었다. 엄마가 힘들때마다 한 장씩 사용하라고 했다.


그동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독서시간이 있었다. 구연동화 선생님이 오셔서 책을 읽어주기도 했고, 유치원 내 도서관에서 매주 책을 빌려보는 활동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책을 읽고 그 내용이나 느낌을 엄마에게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다. 그만큼 오늘 했던 '돼지책' 독후활동이 아이에게 유익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았다.


체험평가를 잘 마친 하임이는 합격통지를 받았다. 사실 그날 함께 체험수업을 한 목적은 학생들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1학년 선생님이 사전에 아이들의 수준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준비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 시간에 하임이는 선생님,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가올 1학년 입학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 해 2월 말, 갑자기 코로나라는 것이 등장했다. 전세계를 혼돈에 빠뜨릴 전염병의 시작이었다. 하임이가 들어가게 될 학교에서는 2월에 입학식을 했다. 여러 사람이 모였지만, 마스크만 쓴 채로 큰 무리없이 입학식이 진행되었다. 부모님들은 아이의 입학을 축하하는 영상을 보냈고, 의미를 담은 선물을 준비했다. 다른 아이들은 보통 운동화, 책가방, 시계 등을 선물로 받았다. 하임이는 제 몸집만큼 커다란 상자를 선물받았다. 그 크기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대체 저게 뭐야? 무슨 선물이야?" 사람들이 웅성댔고, 다른 아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하임이를 바라봤다.


하임이에게 건네진 선물은 커다란 '지구본'이었다. 해윤은 하임이가 세계를 품는, 세계를 향한 꿈을 키워나가길 바라는 의미에서 선물을 준비했다. 이것은 해윤 자신의 인생에서 바라온 것이기도 했다. 해윤은 진심으로 하임이가 한국이라는 좁은 곳 안에서 갇혀 살지 말고 세계를 향해 꿈을 펼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좋은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일괄적이지 않은 다른 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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