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다른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
새롭고 낯선 곳으로 온 가족이 이사를 왔다. 남편의 직장까지의 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해윤은 재택근무 일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사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입이 크지 않아 힘들었지만, 이렇게 아이의 교육을 중심으로 거주지를 옮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다. 직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으로 인해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하임이의 등교 첫 날, 하임이는 엄마를 떨어질 수 없었다. 새로운 적응의 시작이었다. 결국 선생님들의 배려로 엄마가 2층 교실 앞까지 하임이와 함께 갔다. 그러나 교실 앞에서도 또 하임이는 엄마를 떨어지지 못했다. 30분간 엄마 목을 안고 울었다. 그 모습을 100여명의 전교생이 지나가면서 다 보았지만, 그 누구도 놀리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임이에게 다가와 같이 들어가자고 한 친구도 있었고, 다들 응원하는 눈빛을 보여주었다.
"이게 누구지? 아~ 하임이구나. 충분히 안아주고 들여보내주세요."
교장선생님이 교실 입구에서 엄마 목을 붙잡고 울고 있는 하임이를 보며 말씀하셨다.
순간, 해윤은 유치원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학부모는 절대로 현관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곳, 하원할 때 1분이라도 늦으면 아이가 방치되었던 곳. 이 곳은 그 곳과 다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등교하는 일주일 동안 매일 하임이는 30분 동안 교실 앞에서 엄마를 붙들고 울었다. 그러고 나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교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하루 수업이 끝나고 데리러 갔을 때는 항상 밝은 표정으로 엄마를 만났다. 그리고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종알종알 이야기하기 바빴다. 이 모습을 보면서 해윤은 매일 아침 인내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잘 지냈구나, 내일도 잘 지내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 비상상황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특히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에 적응하는 어린 아이들한테는 그 시간이 낯설고 무섭고 힘들었다. 교문 앞에서 마스크를 쓰고 첫 등교 사진을 찍은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해윤은 이런 상황에 하임이가 이 작은 대안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하임이가 일반학교에 진학했다면 교문에서 우느라고 제대로 등교도 하지 못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임이는 일주일동안 2층 교실 앞에서 30분 동안 울고 들어갔다. 두 번째 주에 해윤은 하임이에게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하임아, 오늘은 새로운 월요일이잖아. 오늘부터 엄마랑 여기 계단 한 칸씩 아래에서 헤어져볼까?"
하임이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고, 하임이의 마음이 준비되는 만큼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었다.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되었구나' 하고 해윤은 또 한번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기로 다짐했다.
하임이가 학교에 어느정도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해윤은 구직사이트를 살펴보았다. 해윤은 9시반부터 3시반까지 매일 5시간씩 일하는 서울시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지원했다. 아침에 하임이를 등교시키고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하교시키면 딱 맞는 스케줄이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생긴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해외관계자들과 이메일로 소통하고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연말에 있을 국제행사를 보조하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많이 써야 했는데, 그동안 하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면서 해윤 스스로의 영어실력도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 덕분에 영어면접에서도 무리없이 통과했고, 업무에서도 영어를 많이 사용할 수 있었다. 엄마표 영어가 엄마를 도왔다.
학교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문화활동'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근처 공원을 비롯해서 박물관, 미술관, 유적지 등을 직접 방문하고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엄마와도 가본적 없고 걷기에도 다소 무리가 될만큼의 거리였다. 하지만 하임이는 언니, 오빠들과 함께 몇시간을 걷고 뛰고 떠들면서 그저 행복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다음주에는 00공원에 간대. 거기가 어떤 곳인지 보고 싶어. 사진 찾아줘봐."
하임이는 태블릿으로 그 공원의 사진들을 스스로 찾아보고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미리 사진을 찾아보는 것은 모르는 곳에 대한 자신의 불안을 다스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시간을 기대하면서 기다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한주 한주 시간이 갈수록 하임이는 점점 변화했다.
매일 하교할 때는 학교가 재밌었다고 말하면서도 아침에 눈뜰 때마다 학교가기 무섭다고 했었다. 그런데 둘째주 문화활동으로 00공원까지 다녀온 뒤에는 아침에 습관처럼 하던 부정적인 말들이 싹 사라졌다. 셋째 주 수요일이 되어 근처 유적지에 다녀왔다. 그 다음날 아침, 하임이는 엄마에게 먼저 제안했다.
"엄마, 오늘부터는 계단 한 칸 아래에서 엄마랑 헤어져 볼래."
하임이가 마음이 씩씩해져서 준비가 된 것이었다. 그 때부터 매일 계단 한 칸씩 내려가면서 헤어졌다. 수요일에 한칸, 목요일에 또 한 칸, 금요일에 또 한 칸 아래에서... 그런데 그 다음주에 마침 코로나가 심해져서 부모님은 1층 현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하임이에게 이야기했다.
"하임아, 엄마는 안으로 들어가서 안아주고 싶은데, 오늘부터는 여기 1층에서 헤어져야 한대. 하임이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괜찮아?"
하임이는 전혀 걱정없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한번 안아주고는 씩씩하게 안으로 걸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