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대안교육이 빚어준 아이의 유년기

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2. 다른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

by 유혜

학교가 끝나면 한쪽 벤치에서 아이를 데리러 온 엄마들이 모여서 잠시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임이는 그 시간에 처음 본 친구엄마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했었다. 그런데 매주 수요일이 될수록 하임이의 모습이 달라졌다. 근처 냇가에 다녀온 어느 수요일에는 하교 후에 만난 다른 엄마들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전에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과감함, 자신감이었다. 성격과 태도 말고도, 나날이 체력도 좋아져서, 초반에는 집에도 걸어 가기 힘들정도였는데 이제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2시간을 더 놀만큼 튼튼해졌다. 살도 빠지고 키도 더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하임이가 물었다.


"엄마, 다른 사람을 돕는 직업에는 뭐가 있어?"


해윤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로코칭 강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장래희망에 대한 생각이 없는지. 자신이 잘 하는 것, 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에 대한 파악이 안 되어 있고, 주로 안정적이고 돈 많이 버는 직업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점에서 고작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이런 질문을 을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라고 해윤이 물었다.

"응, 언니들이 나를 많이 도와줘서, 나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직업을 하고 싶어졌어."라고 하임이가 대답했다.


해윤은 놀랍고 감사했다. 그리고 지금이 하임이에게 중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윤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임아, 사람들을 돕는 직업은 따로 있는게 아니야."

하임이는 엄마의 말에 집중하며 눈을 반짝였다


"경찰관이나 소방관도 다 사람들을 돕는 좋은 직업이고, 머리를 잘라주는 미용실 언니도, 거리를 치우는 환경미화원도 다 사람들을 돕는 직업이야. 그 일을 하면서 스스로가 행복하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행동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


해윤은 나름 정답을 말했지만, 하임이의 표정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엄마가 한 가지 직업으로 정답을 말해주었다면 자신은 그 직업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해윤의 이런 긴 설명은 하임이로 하여금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었다.


"지금 하임이는 1학년이잖아. 언니 오빠들이랑 잘 지내면서, 하임이가 어떨 때 스스로 행복한지, 어떨 때 힘든지, 힘들다면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그런 과정들을 배우는 중이야. 지금부터 어떤 직업이 되겠다고 빨리 정할 필요는 없어. 세상에는 직업이 정말 많으니까 천천히 찾아보면 돼."

해윤은 자신의 설명이 혹시 하임이에게 어려웠을까봐 되도록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하려고 애썼다.




행복한 학교는 캠프를 많이 다니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마침 하임이가 1학년일 때, 코로나 때문에 캠프를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질 늦가을 무렵, 교장선생님은 첫 캠프를 기획하셨다. 1인 1침낭을 가지고 야외 텐트에서 자는 1박 캠프였다. 하임이는 이제 문화활동이 두렵지 않았다. 학교에서 처음 가보는 곳이어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와 떨어져서 자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코로나는 하임이를 위한 거였네요. 하임이가 적응할 시간을 벌어준 것 같아요. 안 그랬으면 3월달부터 캠프 갔을텐데 11월에 첫 캠프를 가다니..." 교장 선생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해윤은 하임이와 함께 첫 캠프 짐을 쌌다. 이제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 스스로 씻어야 하니 말이다. 매일 입을 옷을 지퍼백에 나눠서 넣어주고, 샴푸, 린스, 로션은 작은 용기에 담아 겉에 이름을 적어주었다.


"이건 속옷이고, 이건 잘 때 입어. 이건 다음날 갈아 입고. 씻을 때 어려우면 언니들한테 물어봐."


하임이는 씩씩하게 캐리어를 끌고 첫 캠프를 떠났다. 해윤은 하임이가 탄 버스에 손을 흔들었다. 갑자기 울컥했다. 엄마가 평안한 마음으로 잘 돌봐줬다면 - 어린이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 씩씩하게 컸을 아이가, 괜한 엄마의 욕심으로 불안감을 갖게 되어서 놀이치료를 받으면서 그 시간을 이겨냈다. 그리고 세상이 무서워 엄마 곁을 떨어지지 못하고 힘들었는데, 이제 이 대안학교의 활동 덕분에 날마다 씩씩해지고 있다. 오늘 드디어 엄마를 떠나 잠까지 밖에서 자고 온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눈물을 들키지 않도록 해윤은 서둘러 버스 뒤로 몸을 숨겼다.


다음날, 캠프에서 돌아온 하임이는 활짝 웃는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집에 가는 내내, 저녁 삭사 중에, 씻는 중에 계속 캠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종알거렸다. 그 작은 소음이 집안에 있던 허전한 공기를 가득 채웠다. 언니들과 일대일로 짝꿍이 되어 언니들이 하임이를 챙겨주었단다. 씻을때도 언니들과 함께 씻고, 잘 때도 함께 잤는데, 자다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면서 나왔더니 선생님 한 분이 같이 재워주셨단다. 외동이라서 항상 혼자였던 하임이, 엄마 외에는 누군가 자기 몸을 씻겨줄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아이에게 그 모든 사소한 활동은 완전히 색다르고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렇게 하임이는 한 뼘 더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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