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Part2. 다른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
하임이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학교까지는 마을버스로 3정거장쯤 되었다. 걸어가기에는 먼 거리라서 아침마다 해윤이 태워다 주고, 끝난 후에도 태워와야 했다. 그런데 1학년을 마칠 즈음 어느 날, 하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버스타고 혼자 집에 가보고 싶어."
해윤은 정말 놀랐다. 아무리 길이 눈에 익었다고 해도 혼자 버스를 타는 것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해보고 싶다고 할 때 응원하는 것도 성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엄마랑 둘이 몇 번 연습해보고 나서 그 다음에 혼자 해보자."
해윤은 일부러 퇴근 후에 집에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하임이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버스를 타면서 길을 알려주었다. 어디서 타면 되는지, 교통카드는 어떻게 찍는지, 몇 정거장 후에 어디서 내리면 되는지. 그동안 언니, 오빠들과 함께 버스타고 이동해 본 기억이 많아서인지 하임이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렇게 3번쯤 연습하고, 드디어 혼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기로 한 날이 되었다.
해윤은 하임이가 내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렸다. 눈 앞에 하임이가 탔을 것 같은 버스가 다가왔다. 그런데 아무도 내리지 않고 버스가 지나쳐 버렸다. 한 20m쯤 지나서 버스가 갑자기 정차했다. 그리고 한 아주머니와 함께 하임이가 내렸다. 내리고서 엄마를 보더니 안기면서 울었다.
"내가 내리려고 서 있었는데, 아저씨가 문을 열었다가 너무 빨리 닫고 그냥 지나갔어. 옆에 아줌마가 '아저씨, 여기 애기 못 내렸어요' 해서 아저씨가 멈춰서 아줌마랑 같이 내렸어."
해윤은 놀랐을 아이를 안고 진정시켜 주었다. 그리고 너무 대단하다고, 용감하다고 칭찬해주었다. 하임이는 그 곳에서 못 내린 순간 영원히 엄마를 못 만나고 계속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야 되는 건 줄 알았다고 했다. 남편은 하임이가 혼자 버스를 탄 소식을 듣고는 첫 걸음마를 했을 때보다 더 감격적이라고 했다. 그만큼 하임이의 내면이 하루가 다르게 씩씩하게 성장하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
하임이는 즐겁게 1학년 생활을 마쳤다. 1학년은 한 반에 7명, 총 두 반이라 14명이었다. 하임이는 영어를 잘 잘한다고 외국인이라는 별명을 들었고, 수학을 잘한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려고 보낸 학교는 아니었기 때문에 해윤은 하임이의 공부자랑을 그냥 흘려 들었다.
하임이는 이제 2학년을 앞두고 있었다. 얼마 전에 대형서점에 갔을 때 한 학습지 회사에서 무료체험을 권하면서 샘플 문제집 한권을 준 적이 있었다. 방학을 맞아 문제집을 꺼냈다. 그런데 하임이는 생각보다 잘 풀지 못했다. 아니,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분명 1학년 국어와 수학 내용, 학교에서 배웠을텐데 왜 못 풀까 해윤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1년 동안 학교에서 했다는 교과서와 노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 풀지 못해 빈칸이거나 낙서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공부에 중점을 두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기초가 되어 있지 않다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그 날부터 태블릿 학습지를 알아봤고, 수학만큼은 해윤이 직접 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저녁마다 수학문제집을 2장씩 풀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자 하임이는 반항하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은 다 안하는데, 왜 나만 이걸 해야 돼!!"
하임이를 달래가며 2장을 푸는데 2시간씩 걸렸다.
해윤은 답답했고 화가 났다. 하임이의 반응에 놀랐고, 학교의 교육내용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등 모든 과목은 일반학교와 동일하게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임이는 쉬운 영단어도 읽거나 쓰지 못했으며, 수학도 1학년때 배운 교과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행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같은 학년 친구들이 배우는 내용만큼은 제대로 소화하길 바랐다.
분명히 좋은 학교이고, 하임이가 내면적으로 많이 성장한 것은 맞다. 해윤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교육수준이 최상위까지는 아니어도 중간정도만 해도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학교의 교육내용은 그 이하였다. 공립학교나 대안학교나 부모가 교육기관에 맡기고 손을 놓고 있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2학년이 봄 어느날, 해윤은 하임이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두 자릿수 뺄셈에 대해 가르쳤다. 하임이는 투덜거리면서도 직접 몇 문제를 풀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간 하임이는 쉬는 시간에 자신이 새로 배운 내용에 대해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설명했다. 친구들은 모르고 자기만 아는 사실, 두 자릿 수끼리 뺄때는 십의 자리에서 10을 가져와서 뺀다는 새로운 사실을 말이다. 그러자, 그 중에 하임이와 가장 친했던 은수가 말했다.
"나, 그거 작년에 1학년 때 엄마한테 배운건데."
하임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방과후 공부는 자기만 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난 지금 3학년 수학 풀고 있어."
은수의 이 발언은 하임이에게 큰 충격이었다. 하임이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나 이제부터 수학공부 많이 시켜줘. 은수는 이거 작년에 배웠대. 그리고 지금 3학년거 풀고 있대."
이 말에, 해윤은 하임이를 다독이며 말했다. 하임이는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엄마 말대로 계속 열심히 하면 된다고. 그 말에 하임이는 세상이 무너지는 말투로 소리질렀다.
"내가 열심히 해서 3학년 거 하면 은수는 4학년 거 할거잖아. 내가 어떻게 은수를 이길 수 있겠어!"
그 날부터 하임이는 수학공부 시간에 전혀 투정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해윤은 하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하임이에게 이 학교는 '행복한 우물'이었던 셈이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선행을 하고 경쟁 속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하임이는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이 학교, 이 작은 교실 인원이 전부인 줄 알고 본인이 최고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친구가 자신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세상이 무너지듯 좌절하고 있었다. 하임이는 잘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아이였다.
해윤은 하임이의 성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학교에서 계속 행복하게 자라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학업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