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Part2. 다른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
해윤은 매일 직장에 나가 열심히 일했다. 연말에 주최하기로 한 국제행사는 코로나 때문에 대안을 찾아야했고, 해외 관계자들과 이메일로 소통하는 일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 후에 갑자기 속보가 떴다.
"실종된 서울 시장, 종로구에서 숨진 채 발견"
해윤이가 속한 팀의 모든 최종 결정권은 시장에게 있었다. 팀의 발촉부터 인원을 채용하고 사업을 진행하고 국제행사를 개최하고 후속사업을 기획하는 모든 권한이. 그런데 그 최종 결정권자가 하루 아침에 사망했다. 이 소식은 해윤과 회사에게는 당연한 비보였다. 사업이 엎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해윤은 새 직장에서 불과 1년 만에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리는 법이었다.
그 즈음, 해윤이 졸업한 대학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대학원에서 지도해주신 교수님께서 은퇴를 앞두고 계시는데 해윤을 한 번 보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었다.
해윤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남편과 함께 유학을 전제로 결혼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유학을 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지도교수님이 매우 안타까워 하셨다. 그 이후로 해윤은 교수님을 뵙기가 어려웠다. 더 공부를 이어가지 못한 민망함과, 잘 되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컸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은퇴할 때가 되어 옛 제자를 찾으신다고 하니.. 해윤은 망설였지만, 찾아가보기로 했다.
교수님을 오랜만에 뵈니 많이 나이가 드셨지만, 여전히 기품이 있으셨다. 교수님을 오랜만에 뵈니 미래를 꿈꾸던 옛 생각이 나서 해윤은 마음에 눈물이 맺혔다.
그 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네, 내 밑에서 박사과정 할 생각 없나?"
해윤의 머릿 속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교수님께 정중히 힘들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쿵. 쿵. 쿵.
해윤은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교수님께서는 은퇴 전 마지막으로 박사 제자 한 명 더 키우고 싶다고 하셨다. 장학금도 제안하셨다. 부족한 모습으로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고 있던 제자가 안타까우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늦깎이 박사과정 생활을 감당할 수 있을지 해윤은 현실적인 문제가 걱정되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해윤의 모습은 10여년 전 총명하고 미래를 꿈꾸던 반짝반짝한 눈빛을 가진 학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를 돌보고 시간제 직장을 겨우 다니는 그냥 아줌마일 뿐이었다. 교수님 눈에 이런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 해윤은 두려웠다.
아이가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해윤이 돌봐주어야 할 부분이 많고, 지금 시간제 직장을 다니면서 저녁밥을 차려주고 수학을 봐주는 이 단순한 일상도 겨우 버티고 있는데, 과연 박사과정 공부를 해낼 수 있을까, 괜히 교수님께 실망만 안겨드리는 것은 아닐까, 수백번 고민했다. 머릿 속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가슴속은 자꾸만 쿵쾅거렸다.
머릿 속의 말을 따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옳은데, 그러려니 자꾸만 눈물이 났다. 유학을 꿈꾸던 시절이 떠올랐고, 아이를 키우느라 꿈을 접고 멀리 떠나보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자꾸만 가슴에서 없어진 줄 알았던 욕심이 꿈틀거렸다. 결국 메일을 썼다.
"교수님, 저 사실 공부하고 싶습니다."
해윤은 졸업한 지 10년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풀타임 박사과정 학생으로 연구실 생활을 해야 했지만, 교수님의 배려로 예전과 똑같이 4시 정도에 퇴근할 수 있었다. 수업을 듣고 연구를 보조하면서 해윤은 이전에 꿈꾸던 일들이 이어지는 것 같아 행복했다. 연구실에는 해야할 일들이 넘쳐났다. 아직 퇴근 전인 동료 학생들을 뒤로 하고 4시에 퇴근을 했다.
운전하면서 아이 학교로 향하는 길에 핸드폰으로 반찬을 주문하고, 아이 학교 공지사항을 확인하고, 옷과 생필품을 주문하느라 바빴다. 마치 자율주행 차에서 핸드폰으로 업무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루종일 연구과제를 고민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아이 저녁을 챙겨주고 줌으로 저녁 수업을 들었다. 낮에 못다한 연구과제에 대한 생각도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아이 수학공부를 봐주었다. 말 그대로 '풀타임'으로 에너지를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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