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2. 다른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
하임이는 낯선 유치원 생활을 들뜬 마음으로 시작했다. 이사를 간 것도 아니고, 정든 어린이집 친구들은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덜 무서웠다.
유치원에 들어가자마자 하임이는 아린이를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아린이는 하임이를 붙잡고 깡총깡총 뛰며 반가워했다. 그리고 유치원 여기저기를 구경시켜주었다.
"여기는 우리 바다반이고, 옆에는 하늘반이야. 여기는 화장실이고, 목마를 땐 여기서 물 마시는거야"
하임이는 아린이가 있어서 좋았다. 아린이는 낯선 친구들에게도 하임이를 소개시켜 주며 함께 놀았다. 밥먹을 때도 손잡고, 화장실 갈때도 손잡고. 둘은 단짝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3일을 가지 못했다.
어느날 하임이가 크게 상심한 얼굴로 하원했다. 해윤은 하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린이가 나랑 안 놀아줘. 같이 놀자고 하면 맨날 '내일 놀자'하면서 다음날도 또 안 놀아줘."
결국 하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해윤은 하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리고 마침 담임선생님께 학기초 상담할 기회가 주어졌다. 해윤은 담임선생님을 만나 하임이가 유치원에 적응을 잘 하는지 물었다.
"하임이가 아린이랑만 놀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린이한테 그랬어요. 하임이가 다른 친구를 사귈 수 있게, 하임이랑 같이 놀지 말라고요."
해윤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좋은 의도였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다르고 '어'다른 것인데... 선생님의 그 말을 들은 아린이 입장에서는 선생님 말에 따르느라 일부러 하임이를 멀리 했을 것이고, 하임이는 영문도 모른채 아린이가 자기와 안 놀아주는 것에 대해 속상했을 것이다. 아린이도 미안한 마음에 "내일 놀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어머님, 수업 후에 다른 친구들, 어머님들과 같이 키즈카페도 같이 가고 학원도 같이 다니고 해보세요. 그럼 하임이가 좀 더 친구들과 잘 놀수 있지 않을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린이집에서는 하원 후에 마당에서 뛰어놀며 친구들과 엄마들과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는 하교 후에 다같이 학원으로 향하는 분위기였다.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한글, 수학 공부방에 다같이 보내고 엄마들은 옆에서 기다리며 이야기한단다.
해윤의 생각에는 이건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더 배우기 위해 유치원에 왔는데, 유치원에서 생활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게 돕지는 못할지언정 유치원 끝나고 나서 학원에 같이 다니며 어울리라고 하다니... 이게 공립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선생님이 하실 말씀인가.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선생님 앞에서 학부모는 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갑질하는 학부모가 되거나, 우리 아이가 선생님 눈 밖에 날텐데, 그게 좋을 리는 없었다. 해윤은 생각했다. 선생님 말대로 저 학부모들 무리와 함께 의미없는 학원에 보내는 것이 하임이를 위해서 좋은 일일까.
유치원 학부모들 중에는 대표가 있었다. 그 아이도 반장이었고, 그 아이의 언니는 같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즉, 그 엄마는 또래 학부모들 중에서 이미 몇년 전 아이를 키워본 선배엄마인 셈이었다. 그 엄마의 입김이 가장 셌다.
"유치원때 예체능을 다 떼야 해요.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국영수에 집중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엄마들은 그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 미술학원에 우르르 등록해서 함께 다녔다.
그런데, '예체능을 다 뗀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해윤은 동의할 수 없었다.
음악과 미술은 인생을 통틀어 향유하는,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예술이다. 체육도 마찬가지로 건강을 위해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엄마는 예체능을 마치 수행평가에만 필요한, 국영수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미리 정복해야 하는, 성적과 상관없는 활동으로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그 엄마의 아이, 반장친구는 5살때부터 3년째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그림을 잘 그렸다. 담임선생님은 그 아이의 미술실력을 칭찬했고, 하임이는 자신의 미술실력을 비교당하며 좌절했다.
해윤은 결론을 내렸다. 하임이를 오후반에서 빼내기로 말이다.
하임이는 유치원에서 오전만 시간을 보냈고, 점심식사를 한 후 하원했다. 그리고 하임이 본인이 원하는 학원을 선택하기로 했다. 하임이는 근처 태권도장에서 하는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1일 체험학습을 가 보았다. 마침 그 시간에는 예전에 다니던 어린이집 친구들이 수업을 듣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임이가 낯선 도장에 혼자 앉아 있는데, 어린이집 친구들이 들어오며 하임이를 발견했다.
"하임이다! 하임아!!"
아이들은 한달여만에 만난 하임이를 둘러싸고 껴안고 바닥에 굴렀다. 한 달 동안 외로운 유치원 생활을 계속해오던 하임이는 자신을 반겨주는 친구들을 보고 감격했다. 그 기쁨의 무게는 그동안의 속상함을 날려보내기에 충분했다. 그 날 이후로 하임이는 태권도장에 다니며 어린이집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임이가 친구의 미술실력과 자신을 비교하며 속상해 하는 모습에 미술학원을 보내려 했지만 하임이는 거부했다.
"선생님이 또 나 그림 못 그린다고 하면 어떡해? 다른 친구들이 나보다 더 잘할텐데 내 그림 보고 놀릴까봐 싫어."
그래서 해윤은 방문미술을 생각했다. 전문적인 미술을 배우기 보다는 흥미위주로 하고, 자신감을 세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대생 선생님이 오시는 아이돌봄 서비스를 신청했다. 언니, 이모같은 대학생 언니와 미술놀이 하면서 노는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좋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해윤의 예상은 적중했다. 예쁘게 생긴 미대 선생님은 하임이와 그림을 그리고 만들고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미술활동으로 하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셨다. 하임이는 그 미술시간을 정말 즐거워했다.
해윤이 놀이치료와 상담을 통해서 변하게 된 점이 있다면, 자신의 상황보다 아이를 먼저 관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의 성향을 관찰하다보면 무조건 윽박지르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다.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내 생각대로 따라오지 않는다고 재촉해봤자 아이는 두렵고 불안할 뿐이었다. 엄마와 아이는 다른 인격체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다보면 아이는 어느순간 스스로 불안을 이겨내고 한층 성장해 있었다.
하임이가 유치원에서 일찍 돌아오게 되면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 시간에 해윤은 하임이와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놀거나 여러가지 체험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에는 함께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즈음 해윤은 예전에 육아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났다.
'부모가 네이티브가 아니라면, 아이의 영어교육은 모국어가 완성된 이후에 시작할 것'
지금 하임이는 모국어로 읽기, 쓰기가 모두 가능했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대화도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은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영어를 시작하기에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윤은 본격적으로 엄마표 영어에 대한 자료를 읽고 수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