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2. 다른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
아이에게 가장 행복한 일은 엄마의 마음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은, 해윤은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엄마의 박사학위도, 엄마의 안정된 직업도, 아이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해윤은 하임이와 어떻게 즐거운 매일을 보낼지 생각했다. 하임이와 함께 근처 구립 도서관에서 함께 책도 찾아보고, 도시락을 싸서 공원에 가서 함께 놀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하임이의 속도에 맞추어 나갔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5~6세 아이에게 추천하는 전집들이 눈에 띄었다. 새 전집을 사는 것은 비싸서 이전에도 중고 전집을 2~3번 들인 적이 있었다. 하임이는 책을 좋아했고, 엄마와 책 읽는 시간을 좋아했다. 집에 있는 책들은 영유아기를 위한 책들, 이미 시기가 지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 바빠서 신경을 못 쓴 티가 나는 것 같았다. 해윤은 하임이 연령대에 맞는 골라서 중고로 구매했다. 몇시간 후, 전집 판매자가 전화가 왔다.
"저는 중고전집 전문 판매업자인데요, 집 주소가 가까우셔서요. 괜찮으시면 집을 직접 방문해서 책을 배송해도 될까요? 집에 있는 책들을 둘러보고 아이한테 맞는 다른 책도 추천해 드릴 수도 있고요."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히는 게 좋은지, 인터넷 맘카페 말고는 주변에서 아무런 조언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믿을만한 중고책 업자를 하나쯤 알아두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오셨다. 영사(영업사원)는 아니셨고, 이 지역 중고책방 체인점을 운영하시는 개인사업자셨다. 해윤이 인터넷으로 구매한 책들을 건네주셨고, 집에 있는 책들을 쭉 둘러보셨다. 그리고 하임이의 성향도 물어보셨다.
"근데요, 어머니... 진짜 반성하셔야 되요. 아이가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 분은 말을 아꼈다. 하지만, 말의 서두에서부터 어떤 뒷말이 이어질 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중고책 판매업자는 엄마들의 불안과 죄책감을 이용하고 있었다. 최근에 여러 사건들로 인해 아이에게 많이 신경쓰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시기에 맞는 적절한 책을 알아보지 못하고 바꿔주지 못한 것도 해윤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 점은 해윤도 이미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해윤을 처음 만난 이 아주머니는, 자신이 자녀를 키운 경험과, 자신에게 책을 사간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해졌는지를 들먹이며 해윤의 자책을 부추기고 있었다. 영업전략인 것을 쉽게 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은 해윤의 가슴에 박혔다. '반성하셔야 되요.'
그 때부터 해윤은 그녀에게서 많은 책을 샀고, 팔고 또 샀다. 하임이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매일 밤마다 10권씩 들고와서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졸랐다. 하임이가 그 책들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전해들은 아주머니는 더욱 신이 나서 또 다른 책을 팔았고, 사갔고 또 팔았다.
하임이의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과의 교류도 생겼다. 제 시간에 맞춰서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분들은 대부분 할머니거나, 아니면 아이가 2명, 혹은 3명이라서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엄마들 뿐이었다. 해윤은 나이가 비슷한 그 엄마들과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하임이의 친구들은 유명 학습지를 통해 한글과 영어를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해윤은 얼마 전에 육아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지나치게 빠른 문자학습은 그림을 보고 상상하는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라고. 그리고' 부모가 네이티브가 아니라면, 영어는 모국어 학습이 완성된 이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라고. 해윤은 이 책의 의견에 동의했고 하임이에게 학습적인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임이는 밤마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좋아했다. 책을 읽어주면서 하임이의 반응을 관찰하면 하임이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글자는 하나도 몰랐지만, 그림을 보고 내용을 유추하고 이야기하고 다음 내용을 기대하고 있는 모습에 해윤은 호기심을 느꼈다. 선생님으로써 아이들을 지도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정한 커리큘럼에 따라 진행하는 수업이 아니라, 아이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상상의 나래를 펴는 시간. 하임이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하임이를 보는 해윤의 마음도 행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임이는 친구가 자기 이름을 스스로 쓰는 것을 보고 샘을 내기 시작하면서 글자를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마침 놀이치료를 받고 있었던 터라 치료사 선생님께 고민을 이야기했다.
"아이가 호기심을 보이면 가르치셔도 좋아요. 그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그리고 하임이처럼 예민한 아이일수록 글자를 빨리 익혀서 주변에 간판도 읽고,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 불안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육아책의 가르침은 참고만 할 뿐, 모든 것은 아이마다 다른 성향과 아이 각자의 시간에 맞추어 진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해윤은 연필과 수첩을 가지고 하임이와 동네를 산책하면서 간판을 읽고 적으면서 놀았다.
"하임아, 여기 봐봐. 두리수퍼. 자, 이렇게 같이 써 보자. 두.리.수.퍼."
그리고 집에 와서는 그날 알게 된 글자들을 크게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 놓았다.
하임이는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온 얼굴에 핀 함박웃음으로 보여주었다.
엄마 해윤도 하임이와 이렇게 매일 함께 자라가고 있었다.
하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오전과 낮 시간에 해윤은 여전히 가만있지를 못했다. 경력은 또 다시 단절되었지만, 언젠가 하임이가 더 자라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이라도 다시 하고 싶었다. 큰 뜻은 그러했지만, 사실 해윤의 다른 마음이 있었다. 남편의 직장은 여전히 불안했고, 월급은 몇달간 잘 나오다가도 갑자기 끊어지기 일쑤였다. 그 점이 해윤을 가장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해윤은 여러가지 자격증을 따고, 하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먼저,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직업교육을 받기로 했다. 해외구매대행 셀러가 되는 것이었다. 집에서 할 수 있었고, 물건의 재고부담이 없었다. 실습을 통해 해윤은 미국에서 파는 유명 브랜드 티셔츠를 한국 구매자에게 판매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용노동부에서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했다며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알고 보니 구매대행 중개사이트에서 해윤의 판매수당을 입금하면서 전자세금계산서를 발급했는데 그것이 고용노동부에 신고가 되어 실업급여 수급자가 부당하게 이윤을 벌어들인 것이 된 것이었다. 해윤은 고용노동부에 직업교육 중에 일어난 일인 것을 증명하여 다행히 큰 처벌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 실업급여는 중단되었다.
세금계산서로 신고된 해윤의 수익은 고작 5만원이었고, 실업급여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을 해보았지만, 구매대행 일은 해윤의 상황에 맞지 않았다. 사실 그 일은 사실 하임이가 어린이집 가 있는 시간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주문은 수시로 들어왔고, 바로 배송지를 입력해야 하는데 오타가 나지 않도록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으며, 시장조사를 해서 새로운 상품을 찾아내고 상품페이지를 만들고 배송대행지를 관리하는 등... 사실상 하나의 기업으로 움직여야 할 일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만 일하고 제대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웠다.
해윤은 틈틈이 상담과 코칭수련을 받아 KAC코치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코칭센터에 프리랜서로 등록하여 중학생 진로코치로 활동했다. 집에서 전화로 하는 일이었지만, 학생이 원하는 시간은 주로 밤 늦게 혹은 주말이었다. 하임이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집안에서는 상담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되도록 늦은 시간으로 상담을 잡았고, 상담이 있는 날에만 남편에게 일찍 들어오도록 부탁을 했다. 하임이는 엄마가 곁에 없으면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런 하임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엄마는 집 앞 차에 가서 전화상담을 했다. 봄, 가을에는 그럭저럭 할 만 했다. 그러나 여름에는 차 안은 숨이 턱턱 막혔고, 겨울에는 손이 얼어서 글씨가 써지지 않았다. 시동소리가 상담에 방해가 될까봐 여름에는 땀을 흘리고, 겨울에는 핫팩으로 손과 볼을 녹여가며 일했다. 열심히 했지만, 시간적 제약이 있다보니 많은 학생들 받지 못했고, 수익은 크지 않았다.
해윤은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이용해 전화 중국어 업체에 강사로 취업을 했다. 중국어권 학습자들에게 인터넷 전화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중국어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 또한 학습자들이 새벽이나 저녁 수업을 많이 원했다. 어쩔 수 없이 오전이나 낮시간에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만 받았다. 그러다보니 많은 수익을 낼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사회복지사, 주택관리사 등 강의를 들었으나 하임이의 시간에 맞추느라 실습을 하지 못해서 자격증까지 취득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해윤은 수익이 크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시도해보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그것이 해윤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현재를 살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하임이가 6살이 되었다. 어린이집 엄마들 사이에서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최소한 1년은 유치원에 다녀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 너무나 만족했지만, 6,7세가 통합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6세동안 다녀보니 7세 때는 다른 환경에 있어야 좀 더 다양하게 배우고 초등학교 준비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설유치원은 비용이 비싸서, 근처 초등 병설 유치원으로 알아봤다. 3지망까지 쓸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해윤은 남편의 회사 근처로 1,2지망을 썼다. 예전에 첫 어린이집에서 경험한 것처럼, 남편의 회사가 가까우면 혹 도움을 주기 쉬울 거라는 기대가 아직도 남아있었을까. 그러나 막상 당첨되고 보니 해윤이 직접 픽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되었고, 결국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곡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마침 그 유치원에는 하임이와 어린이집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1년 먼저 옮겨서 다니고 있었다.
"하임아, 우리 7살이 되면 여기 유치원에 다닐 거야. 여기는 아린이가 다니고 있대."
"아린이?"
하임이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하임이의 기억 속에는 늦은 시간에 함께 시간연장반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그 때에 항상 자기과 함께 했던 그 친구 아린이가 떠올랐다. 하임이는 낯선 유치원에 가더라도 아린이가 있다면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임이의 새로운 유치원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