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3. 인생에 대안이 있을까
신도시에서 다녔던 샛별초등학교는 여러가지가 자리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웠는데, 역사가 오래된 반디초등학교는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하임이는 새 친구들도 사귀고 교회에 더 자주 다니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이전 학교에서는 없었던 오케스트라 활동을 즐겼고, 컴퓨터 수업도 듣고, 디자인과 사진에도 관심이 생겼다. 배움의 욕구가 채워지는 만큼, 하임이의 장래희망은 디자이너, 작가 등 다양하게 바뀌었다.
반디초등학교에 처음 등교했을 때, 하임이는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도 학원숙제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중학교 수학 내용이었다. 신도시 샛별초등학교에 다녔을때도 간혹 선행하는 아이는 있었지만 한 반에 두 세명 정도였다. 그리고 그곳은 과밀학급으로 한반에 25명씩 있었다. 서울 반디초등학교는 한 반에 19명이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중등수학 선행을 나가고 있었다.
"이러려면 학교에 왜 다니는 거야?"
하임이는 왜 몇 년씩 앞서서 배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임이는 집 근처 영어학원에 다녔다. 학원에서는 한 반에 5~6명을 모아놓고 선생님이 칠판에서 강의를 하셨다. 영어로 말하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문법문제를 풀고 단어를 외워야 했다.
"너, 단어공부 안 했지?"
단어를 열심히 외운다고 외웠는데도 테스트에서는 항상 많이 틀렸다. 하임이는 영단어를 어떻게 외워야 할지 몰랐고 선생님이 저렇게 말씀하셔서 억울했다. 재시험을 잘 볼 때까지 집에 못 가고 학원에 남아서 공부해야 했다. 아무리 재시험을 봐도 영단어가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점점 영어에 흥미를 잃었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설명도 이해가 가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질문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알아듣는데 자기만 모른다고 질문하는 건 창피하고 미안한 행동이라고 느껴졌다.
해윤은 하임이가 수학학원에 다니길 바랐다. 고학년이 되고 수학이 어려워질수록 아이에게는 엄마가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위험해보였다. 선생님 입장이 되는 것 보다는 엄마로서 있고 싶었다. 그리고 수학만큼은 이제 학원에 가서 문제풀고 경쟁하는 연습이 필요해보였다. 그러나 하임이는 수학학원에 가는 것을 극구 거부했다.
"영어도 맨날 테스트 못 봐서 다 외울 때까지 집에 못 오는데, 수학학원에서도 그럴 거 아냐?
수학 학원 선생님이 해주는 설명 못 알아 들으면 어떡해? 맨날 테스트 볼텐데 다른 애들보다 못 하면 어떡해?
지금 우리 반에 다른 애들도 학원숙제를 나한테 물어보는데, 애들이 내가 수학 못한다고 생각할까봐 싫어.
그냥 엄마랑 계속 공부하면 안 돼?"
하임이는 왜 수학학원에 가기 싫은지 구체적으로 말했다. 이 모습을 보며 해윤이는 예전에 유치원 다닐 때 미술학원 가기를 거부했던 어린 하임이가 생각났다.
"애들이 나 그림 못 그린다고 놀리면 어떡해?"
친구와 비교하고, 친구가 자신을 놀릴까봐 두렵고, 자신이 못할까봐 두려운 모습.
미술이 수학으로 바꼈을 뿐, 똑같은 생각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해윤은 서울로 이사온 뒤에 더이상 교습소는 할 수 없었지만 비대면으로 하던 중고등수학 과외를 더 열심히 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수업을 했다. 태블릿을 너무 오랜 시간 보다보니 눈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노안이 진행되고 있네요. 나이가 젊으신데... 혹시 전자기기를 많이 보시면 악화될 수 있으니 자제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안과의사가 말했다. 하지만 과외를 멈출순 없었다. 서울에서의 생활비와 월세도 비쌌고 경기도 아파트에 대한 대출이자도 계속 갚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수학과외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변에서 몇몇 학생이 대면수업을 신청했고, 이것이 해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교습소에서 초등 아이들을 가르칠 때 느꼈던 것처럼 고등학생 아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했고, 아이들이 변화할 때 해윤도 행복했다.
그 중 고1 남학생 태준이가 있었다. 수학에 전혀 흥미가 없고 수학 학원만 다녀오면 온갖 부정적인 언어를 쏟아내서 엄마가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아이를 보니 수학에 굉장한 적대감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믿고 따랐던 수학선생님이 최근에 학원이 확장되며 아이들이 많아지자 태준이를 맡기 힘들다고 하며 태준이가 수업을 이해못하고 못따라오는 것을 보고 욕을 했다고 했다.
해윤은 먼저 태준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힘들었겠다고 공감했다. 그러자 아이는 천천히 마음을 열고 해윤과의 수업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학을 배우면서 선생님의 짜증과 욕을 듣지 않는다는 것 만으로도 아이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태준이 엄마는 태준이가 해윤과 공부한 이후로 부정적인 말이 사라졌다며 감사했다. 그 후로도 계속 태준이는 해윤과 함께 수학을 공부했다.
해윤은 아이들을 가르칠때 일종의 철학 같은 것이 생겼다. 지식을 주입하려 하지 말고 마음을 얻도록 할 것, 어렸을 때부터 쌓였던 부정적인 사고를 무너뜨릴 수 있도록 수학에 대해 항상 긍정적인 언어만 사용할 것. 이 두 가지 원칙만 지키면 대면수업이든 비대면수업이든 아이들은 해윤을 믿고 따랐고, 수업이 오래 이어졌다.
한편, 하임이는 수학학원에 가지 않고 엄마와 계속 수학을 공부했다. 해윤은 저녁 내내 고등학생들을 가르쳤고, 초등학생 하임이까지 가르쳤다. 그리고나면 항상 녹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