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3. 인생에 대안이 있을까

by 유혜

하임이는 행복한 학교에 다닐 때 이곳 저곳 탐방을 많이 다녔지만, 보고 싶은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기 바빴고, 선생님들은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그 곳을 다시 찾으면 엄마가 천천히 말해주는 설명을 들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임이는 궁금한 것이 많고, 그것을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하임이가 과학에 관심을 가졌을 때, 해윤은 근처 과학관에 자주 데리고 갔다. 아이에게 어려울 수 있는 과학의 원리들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애썼고, 잘 모르겠으면 같이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꼭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방학때면 여러 박물관을 찾아 함께 관람했다. 하임이가 디자인에 관심을 보이자 해윤은 미술관을 자주 찾았다. 하임이에게 다양한 예술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잘 모르는 작품이 많을 때는 도슨트를 이용했다.


어떤 사진전을 관람하고 온 날, 하임이가 말했다.


"오늘 본 사진 중에 영정사진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인상적이었어. 사진으로도 의미를 담을 수 있구나. 일부러 뒷면을 찍고, 일부러 흐리게 찍는 것으로도 이야기를 담을 수 있구나.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진을 더 보고 더 창의적으로 생각해야겠다...그런 생각이 들었어."


하임이는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이야기했다. 해윤은 그런 하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하임이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어떤 삶을 살도록 응원해주면 좋을지 고민했다.




그동안 영어실력이 쑥쑥 자란 하임이는 디베이트반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선생님의 권유를 받았다. 그동안 옆에서 디베이트 반의 모습을 보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던 터였다. 그런데 선생님의 권유를 받은 하임이는 얼굴이 굳었다.


"내가... 잘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하임이의 자신없는 모습에 해윤은 당황했다.

"하임아, 넌 원래 읽기, 쓰기보다는 말하기, 듣기를 더 잘했잖아. 디베이트 반에 가면 훨씬 재밌고 좋을 것 같은데?"


하임이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옛날엔 그랬는데... 지금은 말하기를 거의 안하다 보니까 감이 많이 떨어졌어. 내가 쉬운 단어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해? 다른 애들이 나 보고 놀리면 어떡해?"


또 다시 같은 문장이 나타났다. '다른 애들이 날 보고 놀리면 어떡해?'라는.

해윤은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말했다.


"하임아. 지금 선생님이 추천하신 반은 하임이랑 읽기,쓰기 점수가 비슷한 친구들이야. 그런데 하임이는 그 친구들보다 말하기, 듣기는 더 잘할거야. 그리고, 네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셨으면 선생님이 추천하지도 않았을거야. 가서 한 마디도 안해도 괜찮아. 그냥 옆에 앉아 있다가 와도 괜찮아. 한번만 가보고 그 다음에 계속할지 말지 결정하자."


해윤은 하임이를 다그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임이는 경쟁을 무서워했다. 특히, 자신보다 더 잘하는 친구들이 있는 곳을 무서워했다. 사람들을 실망시킬까봐, 그들이 나에게 실망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대체 왜 그렇게 주변사람들 눈을 의식하는지. 이것도 사춘기의 증상인지 해윤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 때, 해윤의 머릿 속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하임이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교육환경의 변화 속에서 어떤 때는 조금 더 용감했고, 어떤 때는 조금 더 위축됐었다. 혹시 그 패턴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를 꺼내어 반복되던 두려움의 문장. '다른 애들이 날 보고 놀리면 어떡해?'라는 문장이 주로 언제 나타났었는지 기록해보았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5개의 교육기관이 모두 장점만 있거나 모두 단점만 있지는 않았다. 하임이는 그 안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고, 해윤이 봤을 때 아이들은 모두 다 착하고 예쁜 친구들이었다. 과제를 수행하거나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하는 경우도 항상 있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하임이가 그 상황을 조금 더 씩씩하게 대하는 시기가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필요 이상으로 위축되고 자신없어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일반 공립기관에 다니는 시기와 겹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샛별초등학교는 제외였다.

엄마의 취업과는 큰 상관이 없어보였다. 워킹맘일 때도, 전업맘일때도, 재택근무 맘일때도, 엄마의 마음이 평안했다면 아이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곡유치원과 반디초등학교에 다니던 시기에 공통점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또래문화였다. 또래 중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아이가 더 많은지,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아이가 더 많은지. 그래서 그 전체문화가 긍정적인 것에 가까워지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것에 가까워지는지.

그것이 하임이 마음의 불안을 좌우하고 있었다. 고학년으로 올라가고 사춘기가 다가오면서 또래문화가 더 감정적으로 변한 탓도 있었다.


세대를 거쳐 대물림 된 경쟁의식, 그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 애쓰던 여성들..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최고의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비교와 자기비하, 겸손을 가장한 정서적 학대...

그 모든 것들이 고학년 아이들의 사춘기와 맞물려 부정적인 또래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고, 그 안에서 하임이는 잘난 척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비난받지 않으려, 실망시키지 않으려, 모두에게 친절해야 했고, 부정적인 문화를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쓸데 없는 곳에 에너지를 써야 하지?'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찾고, 행복한 것을 즐기고, 배움의 기쁨을 느끼면서 성장할 수는 없는 걸까?'

해윤은 이 시대와 하임이가 처한 배경이 안타까웠다.


하임이는 대안학교에서 과학수사대를 꿈꾸었다. 하지만, 과학수사대원이 되기까지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는 몰랐고, 국과수 입사를 기준으로 봤을 때,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임이는 일반학교로 옮긴 후에 디자이너와 작가 등 다양하게 꿈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가 필요하고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조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점점 꿈에 무감각해진다. 장래희망이 없거나, 모르거나,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자라면서 형성된 부정적인 자아상이 스스로를 끌어내린다. 경쟁에 치이면서 자신감이 없고, 남과 비교 당하고, 우울해진다. 일단 시험만 잘 보고, 대학만 가고 나서, 진로는 그 다음에 생각하려고 하지만, 그 떄 가서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문화가 곧 하임이를 덮치려고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해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비교하고 경쟁하지 않고 배움의 기쁨을 느끼며 공부할수 있는곳, 건강한 관계를 배우며 긍정적인 문화가 있는곳. 더 늦기 전에 그런 곳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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