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3. 인생에 대안이 있을까
해윤은 이런 상황에 대한 배경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임이 친구의 엄마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아닌 할머니 또는 기관에 맡겨져서 자랐다. 엄마들은 유치원, 학교, 학원에만 맡기면 아이들이 시기에 맞는 공부를 하며 잘 자라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 엄마와의 유대였다. 아이가 어떨때 행복한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어떤 상황에서 마음이 힘들어 하는지 엄마들은 잘 모른다.
이렇게 자라다가 고학년 사춘기 때가 되면, 아이들은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을 나누는 방법을 몰라 힘들어 하고, 엄마들은 아이들의 대화법을 몰라 답답해한다. 학원을 그렇게 보냈는데 공부를 왜 못하느냐며 옆집 아이와 비교하고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다. 그 감정은 고스란히 아이의 마음에 닿아 원망이 된다. 그리고 대화에 서툰 아이들은 이것을 짜증과 화로 표현한다. 거기에 사춘기 호르몬의 영향까지 더해지면 아이들은 스스로의 감정폭풍에 겉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실, 해윤의 세대도 비슷했다. 해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IMF 사태가 한국을 덮쳤다. 사회는 험난했고, 경제는 힘들었다. 밖으로 내몰린 해윤의 엄마들은 모질게 일하면서 아이들의 학원비를 대었다. 유년, 청소년 시절에 부모와 대화를 편하게 할 수 있었던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바쁘거나 불편하거나, 자주 보지 못했다. 청소년 시절에 방황하는 친구들도 여럿이었다.
해윤과 그 친구들은 부모의 희생을 먹으며 악착같이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취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렵게 쌓아놓은 커리어와 꿈을 포기하면서 점차 엄마가 되었다. 자신의 엄마처럼 무관심한 엄마가 되지 않기를 바랐건만, 자신도 엄마처럼 바쁘게 살아야했고,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은 부족했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순간 아이에게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내 자식을 자랑하는 것을 겸손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문화가 있다. 아마도 일본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자신을 낮추고 다른사람을 존중하는 겸손은 미덕이다. 그러나 나를 심하게 깎아 내리면서 다른 사람을 우러러 보는 것은 아첨이자 자기학대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자기 아이의 장점을 깎아 내리고 다른 아이를 칭찬하는 식의 대화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 말을 하는 엄마 자신은 그것이 겸손의 연장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말로 내뱉는 순간 자신조차 속이게 된다. '나의 아이는 부족하다'라고.
끊임없이 내 아이의 부족한 면만 보이고, 남의 아이의 잘난 점만 보인다. 비교하고 지적한다. 그것은 엄마 자신과 아이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다. 아이는 그런 엄마의 말이 진심인지 겸손인지 판단할 수 없다. 엄마의 부정적인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 아이의 자존감은 점점 낮아진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부정적인 언어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또래문화 안에서도 그것을 드러낸다. 그러한 아이들이 적고, 긍정적인 아이들이 많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긍정이 부정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부정적인 아이들이 다수가 된다면 모두가 그 영향을 받게 된다.
해윤은 이것이 지금 하임이가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하임이가 행복한 학교에 다녔을 때, 그 안에서도 부정적인 언행이나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인원이 소수였고, 공통의 선한 문화(예를 들면, 갈등을 대화로 푸는 모임 등)가 있었기 때문에, 긍정이 부정을 이길 수 있었다. 경기도 샛별 초등학교는 일반 공립초등학교였지만, 많은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학원에 다니기보다는 모여서 함께 놀았다. 놀이터에 가면 이웃 아이들과 엄마들이 항상 북적였다. 아이들이 학업 스트레스보다는 놀면서 대화할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서울 반디초등학교에서는 달랐다. 아마도 고학년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 차이점이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샛별초등학교에서도 중,고등학생은 항상 셔틀버스를 타고 멀리 학원에 다녀서 볼 기회가 많이 없었다. 반디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었다. 맞벌이 부모님도 많고 학교 돌봄교실도 잘 되어 있고 주변에 도보로 가능한 학원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끼리 모여서 함께 놀 시간은 부족했다. 만나서도 함께 학원숙제를 하느라 바빴고, 대화하거나 함께 놀려면 따로 시간을 맞추어야 했다. 부모님은 항상 바빠서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어쩌다가 대화할 때는 성적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집 친구와 비교하는 이야기, 또는 집정리해라, 숙제해라, 잔소리 뿐이었다. 부모님과 대화하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불편함은 원망과 낮은 자존감, 그리고 자기비하로 이어져 점점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이 다수가 되면서 학교문화는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