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다세대 라이프
내집마련 카페에서 정보를 얻어 분양공고 보는 법도 배우고, 모델하우스에도 가보고, 직접 청약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줄줄이 낙방이었다. 가점이 부족해서 일반공급은 무리였고, 결혼 7년도 지나서 신혼부부 특공도 무리였고, 다자녀도 아니고... 생애최초 특별공급 밖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쟁률이 너무 셌다. 서울에는 공급이 부족했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분양가가 너무 높았다. 나는 하남, 광주, 용인까지 눈을 넓혔다.
그 즈음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정부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대책을 내놓았지만,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낯선 단어들이 등장했다.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노도강 구축 아파트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용인에 한 분양공고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넣어보고 안되면 노도강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때 우연히 내 이야기를 알게 된 한 친구가 말했다. 그 친구는 용인에 살다가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나서 잠시 일본에 살고 있는 친구였다. 몇 년 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살 집이 필요해서 청약을 넣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의 남편이 나에게 수원삼성이 가까운 다른 단지를 추천해주었다. 자신들도 이 곳에 넣을 거라고, 이웃이 되면 좋겠다면서.
그 당시, 남편의 직장은 수인분당선 서울숲 역 근처에 있었다. 추천받은 단지는 서울에서 조금 멀기는 해도 수인분당선을 가까이 두고 있었다. 지하철 한번만 타고 쭉 회사까지 갈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직접 들어가서 살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남편의 직장 위치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여러 차례 깊이 상의를 했고, 이 곳에 생애최초로 청약신청을 했다.
분양가는 5억초반이었다. 우리 형편에 비하면 여전히 비쌌지만, 서울 집값을 생각하면 신축분양이라서 저렴한 것이라고 봐야했다. 그리고 분양당시 이 곳 주변에 있는 다른 구축 아파트들의 전세 시세는 7억이 넘는 상태였다. 즉, 당첨이 되서 전세를 놓기만 해도 잔금을 다 갚고 돈이 남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청약발표일, 아이를 재우고 잠이 안와서 뒤척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떴더니 새벽 2시였다. 컴퓨터를 켜고 발표를 확인했다.
당첨이었다. 000동 0000호! 동호수가 정확히 떠 있었다. 소리를 지를 뻔한 입을 막고, 살금살금 남편 옆으로 갔다. 잠자지 않고 핸드폰을 하고 있던 남편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됐어." 나는 남편을 놀래켜주고 싶어서 오히려 조용히 말했다.
"됐다고??" 남편은 깜짝 놀랐다.
나는 남편의 반응을 기대했다. '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어!!' 하는 환호가 터져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말 이후에 남편은 돌아누우며 이렇게 말했다.
"아 씨.. 이제 회사 어떻게 가지?"
돌아누운 남편의 핸드폰 화면에는 네이버 지도 앱으로 청약한 단지에서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을 나타내는 화면이 떠 있었다.
분명히 남편과 오랫동안 의논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그 사람은 '내 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덜 세심하고 덜 꼼꼼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 사람 삶의 one & only 가 회사라는 점은 나를 더욱 외롭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집 문제로 힘들때도,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문제로 힘들 때도 항상 본인의 일이 우선이었다.
처음 꽤 오랫동안은, 가족과 생계를 위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주변 남편들이 가정문제에 대해 적어도 하나씩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 누구는 주식, 누구는 부동산, 누구는 아이의 영어교육, 누구는 부모님 건강, 등등... - 우리 남편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오직 회사 뿐이었다.
청약에 관심있는 친구 남편의 추천으로 이 단지에 넣을 때도, 나는 나의 남편과 여러 차례 의논을 했지만, 이 사람은 그저 흘려들었을 뿐이었고. 나는 남편의 직장 문제까지 고려해서 이 단지에 청약을 넣었는데, 1년 뒤 남편의 회사는 신촌으로 이사를 했다.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은 그렇게 내 마음속에만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