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들도 우리처럼 집이 있대

Part2. 다세대 라이프

by 유혜

청약에 당첨되었고, 완공까지 2년을 기다려야 했다.

당시 살고 있던 다세대 5층에서는 계약기간이 1년 남아 있는 상태였다. 입주를 하려면 추가로 1년만 재계약을 해도 되었지만, 입주를 안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남은 계약기간만 채우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옥상 방수 상태에 따라 집에도 누수가 있었고, 가장 윗집이라서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추웠다.


두번째 여름을 시작하면서 왠지 지금 이사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너무 더워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는 나의 미세한 예지력이 불길한 미래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 해 여름부터, 빌라 공동계단 대리석이 젖은 색깔로 변하기 시작했다. 모서리에서 시작해서 점점 안쪽으로 그 반경이 넓어졌다. 빌라에서는 공동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그 계단 바로 옆이 우리집 화장실이라는 점을 들어, 우리집 화장실에서 누수가 된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웃들은 나에게 무슨 일이 없었느냐고 캐물었다.


"아니요, 특별한 건 없었어요. 예전에 집주인이 사시던 때는 세탁기 호스가 하수구에 안 들어가서 화장실 바닥에 물을 다 흐르게 하셨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하수구 트랩을 빼서 저희 집 세탁기 호스는 하수구에 잘 들어갔어요. 그게 전부에요."


사실이었다. 세탁기 이야기는 이웃들이 하도 자꾸 캐묻는데 할 말이 없어서 나온 말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화근이 되었다. 403호 오지라퍼 아줌마를 중심으로, 내가 하수구에 무슨 문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누수가 된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늦여름 장마가 시작되면서 비가 더 많이 왔고, 누수되는 곳은 점점 넓어져갔다. 사람들은 벽 타일을 깨부수었다. 벽에는 금이 가 있었고, 그 금 주변으로 물기가 있었다.


소식을 들은 집주인이 달려와서 살펴보았지만, 우리집에서 문제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집주인과 나는 원만한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자기 딸이 여기 살았는데, 지금은 집을 마련해서 나갔다는 등... 그 말에 나도 내 소식을 나누었다. 얼마 전에 청약에 당첨되었다고. 집주인은 잘 됐다면서 나를 축하해주었다.


사람들은 전문가를 불러서 누수탐지를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집주인은 나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한번만 테스트 해 보겠다고 했다. 세탁기에 물감을 풀어서 물을 내려보고 벽에 초록색 물이 나타나는지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 모든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겠다고 했다. 나는 협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403호 아줌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점점 더 이상한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내가 지나가는데 뒤에 대 놓고 "대체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그러는건지 알아야겠어!"라고 하질 않나, 자기 집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내가 비오는 날 계단 창문이라도 닫으면 "이럴 줄 알았어!"라면서 시비를 걸었다.


마침 코로나였고, 집에서 줌으로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했던 나는, 바로 집 앞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그대로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이성이 마비된 것 같았다. 이미 나를 범인으로 점 찍어두고 끼워맞추려는 행동만 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에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라는 나의 절규는

"시끄러! 가릴 건 가려봐야 될 거 아냐!"라는 402호 반장 아저씨 부인의 째지는 듯한 큰 소리에 묻혔다.

403호 아줌마는 모든 상황을 자기 상상대로 만들어놓고, 사람들의 소란 뒤에 숨어 있었다.


소리 지르는 사람들 앞에서 집주인 아줌마는 이렇게 한 마디를 했다.

"쟤들도 집이 있대. 이번에 아파트 당첨됐대. 우리랑 다를게 없대."


우리랑 다를 게 없다니... 그동안 나는 이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이 빌라는 자기 재산의 거의 전부였다. 그리고 다른 아파트를 매수해서 곧 이사갈 사람들도 있었다. 작은 빌라라도 가진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그냥 무주택 전세난민, Sh에 구걸하는 거지로 보일 뿐이었나보다.


집주인의 저 한마디가, 나를 향한 그들의 무자비한 태도에 타당성을 뒷받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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