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다세대 라이프
사람들은 우리집 화장실과 맞닿아 있는 계단 한 쪽의 거의 모든 타일을 깨부수었고, 사람들의 등쌀에 밀려서 402호 반장아저씨가 우리 집에 들어와 화장실 하수구에 물감을 풀었다. 소름돋는 시뻘건색 물감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집주인이 말했다. "우린 세탁기 호스가 안 들어가서 여기가 다 물바다였는데..."
반장 아저씨가 말했다. "이걸 당연히 이렇게 쓰셔야죠, 어떻게 다 물바다로 만들고 사셨어요."
저 말 한마디 때문에, 그걸 확대 재생산한 403호 아줌마 때문에,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수모를 저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계단에 모여서 벽을 쳐다보며 빨간 물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지켜보았다. 마치 괴기스러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결국 벽에서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허탈하게 돌아갔다.
사람들은 반장아저씨 집에 모여 회의를 했다.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는 소리, 모든 임대인들에게 비용을 1/n 해야 하는데 어떻게 연락을 하느냐는 소리가 현관문을 뚫고 들렸다.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알고 보니 대부분의 빌라에서는 이런 보수할 일에 대비해서 장기수선충당금을 별도로 모아놓고 있었어야 하는데, 이 빌라에서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세대에 주인이 거주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비용을 해결할 방법이 애매했던 것이다. 결국, 모든 잘못이 '나'에게 돌려져야만, 내가 책임지고 고쳐야지만, 저들의 재산에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벽에서 빨간 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집에 하자가 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게 되었다. 벽타일은 여전히 뜯어진채로 콘크리트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외출하면서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지고 금이 간 내 모습 같아서 수치스러웠다.
다음 날, 큰 비가 내렸다. 계단에 내려가 밖으로 드러난 콘크리트를 만져보았다. 축축했다. 이건 분명 옥상 또는 외벽에서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사이 금 간 곳으로 눈에 보일만큼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두었다.
며칠 후, 집주인에게서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이 왔다. 계단에서 빨간 물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우리집 화장실에 빨간 물감을 풀었던 그날 이후로 403호 아줌마는 수시로 계단에 올라와서 어디 희미한 빨간구석이라도 없는지 샅샅이 찾고 있었는데, 계단 아랫쪽에 빨간색이 나타났고, 그 사진을 찍어서 집주인에게 전송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들이 말한 곳을 찾아보았다. 약간의 붉은 기가 보이긴 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그건 일반적인 대리석에서 나타나는 붉은 녹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아야 할만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임차인으로서 지금까지 모든 협조를 다했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니. 너무 힘들었다.
비오던 날 찍어둔 동영상을 집주인에게 보내며 말했다. 제발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집주인을 통해서 이 동영상이 사람들에게 공유되었고, 그 날 이후로 나를 향한 괴롭힘은 일단락되었다.
며칠 후, 반장아저씨가 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지나간 일들에 대해 사과했다. 정말 미안했다고. 돈을 좀 많이 들여서 옥상에 물을 가득채워서 누수체크를 했는데, 바로 위 외벽에서 물이 새는 것을 확인했다고. 그리고 방수공사를 다시 하기로 결론지었다고.
반장아저씨 외에는 아무도, 그 누구도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옥상 방수공사를 하던 날,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반장 부인 아줌마가 나에게 웃으면서 인사하며 지나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 집에 사는 모두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 옆에 있던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채로 옥상에 올라가서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붙잡으며 말렸다. 혹시 아이가 실수해서 방수공사를 망쳤다는 누명을 또 쓰게 될까 두려웠다. 아무것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분양받은 집의 완공은 딱 1년이 남았지만, 나는 이 집에서 절대 재계약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사가는 날, 잔금을 돌려받기 직전에 집주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니, 부동산에서 보니까 벽에 무슨 못 자국을 많이 내놨다고 하네?? 내가 지금 못 가보는데, 남의 집을 이렇게 쓰면 어떡해? 이거 물어내요!"
잔금을 받기 전이기도 했고, 더 이상 말도 섞기 싫었던 나는, 부동산에 전화해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안방 벽에 벽걸이 에어컨을 떼고 보니 못자국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건 원래 집주인 따님이 사실때도 있었던 자국이에요. 저희가 다른 곳에 안 달고 똑같은 곳에 똑같이 달았어요."
집주인은 지방에 살고 있었다. 직접 확인도 하지 않고, 부동산을 통해서 못자국에 대한 말만 듣고 나서 나에게 전화로 화를 낸 것이었다. 그동안 누수 때문에 겪었던 일도 마찬가지였다. 앞뒤 맥락을 따지지 않고 403호 이상한 아줌마의 말만 듣고 나를 궁지로 몰았다.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후, 집주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잔금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나의 세번째 집에서의 2년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