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폭풍

Part2. 다세대 라이프

by 유혜

다음 이사갈 곳을 구할 때는 더 이상 SH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분양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SH 지원을 해준다는 주택도 없었고, 그동안의 수모도 더 이상 겪기 싫었다. 차라리 전세대출을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집에서 돌려받은 보증금의 일부와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저축들은 전부 분양에 대한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들어갔다. 계약금 10%를 내고, 중도금을 6차에 걸쳐 10%씩 내고, 마지막에 잔금 30%를 내야했다. 중도금 대출이자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그동안 모든 돈과, 대학원 장학금, 학자금 대출까지 쏟아부었다.


새로 이사갈 때는 처음으로 전세대출을 이용해야 했다. 중도금보다는 전세대출의 이자가 쌌기 때문에 거의 최대치로 전세대출을 받아서 보증금을 마련했다. 마침 연말이고 가계대출을 조인다는 정부 발표가 나와서 은행들마다 대출이 막히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으로 전세대출을 받는데, 잔금날 대출이 안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 또한 스트레스였다. 부동산에서 소개받았던 은행 대출 상담사에게 몇번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고, 꼭 좀 잘 부탁드린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 일도 바쁜데 내가 자꾸 조마조마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까. 이 상담사는 어느날 밤에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정부에서 대출 조여서 기 신청자들도 잔금이 못 나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내가 기존 00은행 고객도 아닌데 자기 고객들에게 양해구하면서까지 나에게 먼저 대출을 내주는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계속 불안했다. 이 불안의 원인도, 불안을 다스릴 방법도 몰랐다.

내 불안이 타인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전에 살던 임차인 아주머니는 옷이 너무 많아서 모든 방과 안방화장실에까지 옷을 걸어놓았었다. 집을 볼 때 곳곳에 곰팡이와 청소할 곳이 많이 보였고, 평수가 넓어서 나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이사청소를 예약했다. 이전 임차인이 하루 전날 퇴거가 가능해서 먼저 퇴거해주었고, 깨끗하게 이사청소를 마친 후에, 우리는 다음날 이사를 했다. 이 곳은 3룸에 화장실 2개가 있는 빌라 1층이었다. 구축이었지만 아이 학교와 가까웠고, 교통도 편했다. 이사를 하는 데 이삿짐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2룸 17평에 꽁꽁 들어있던 짐들이 3룸 30평에 들어가자 숨통이 트인다는 듯 편안해 보였다.




이사한 곳은 이전보다 훨씬 생활도 편했고, 마음도 편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전 집에서 겪었던 수모를 이대로 넘어가는 것이 맞는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소송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집에서 누수가 시작되고 진행된 모든 과정도 내 핸드폰에 사진과 동영상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403호 아줌마의 수군거리는 소리도 다 녹음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나에게 소송이라는 거대한 산을 내딛을 에너지가 없었다.


대학원 과정도 망쳤다. 분양받은 곳은 중도금을 돌려막느라 허덕이고 있다. 남편은 분양받은 곳과 더 먼 곳으로 회사가 이사했다. 아이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와서 4년을 살 생각이었는데, 전세대출 이자가 오른다는 조짐이 있다. 아이는 초3이었는데, 다른 이유로 곧 전학을 가야할 상황이 생겼다. 다시 머리가 아파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00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상상이 나를 괴롭혔다.


지인의 추천으로 근처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나에게 위급상황이라고 진단했고, 우울증과 불안장애 약을 처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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