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장 쓰나미

Part2. 다세대 라이프

by 유혜

1년이 지났다. 이제 분양받은 단지는 준공을 앞두고 있었고, 계획대로 전세를 주면서 잔금을 치르고, 남는 돈으로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전세대출을 갚으면 모든 문제가 계획대로 해결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동산이 폭락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영끌해서 서울에 아파트를 샀던 사람들에게는 자산이 날아가고 빚만 남는 상황이 속출했다. 내가 분양받았던 곳의 주변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집값이 폭락하고 그에 따라 전월세 값도 폭락했다. 분양받은 곳은 2년간 전매제한이 있어서 당장 매도는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입주장이 문제였다. 수원남부와 화성 동탄 쪽에 입주장이 몰리면서 전세가 폭락했다. 분양 당시에 전세가가 7~8억이던 곳이 3~4억대로 반토막났다. 준공을 앞둔 우리 단지에도 입주장 전세매물이 쏟아지면서 동일평수가 전세 3억초반까지 떨어졌다. 3억이라니... 이대로라면 전세임차인을 들이면서 중도금, 잔금도 다 못 채울 상황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빌라의 전세대출 이자도 폭등했다. 변동금리의 무서움을 그때서야 실감했다. 실거주 의무도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실거주하면서 잔금대출을 받는 방법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는 어차피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래문화가 이미 있는 다른 학교에 전학가는 것보다는 신축 단지에 새로 생긴 신축 초등학교를 간다면 친구 사귀기가 더 수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이제 정 붙이기 시작한 교회를 또 옮겨야 하나? 지방으로 이사가면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어렵다던데 아이가 중학교 갈 때는 서울에 있는게 낫지 않을까? 서울의 서북쪽으로 멀어져버린 남편 회사는 어떻게 출퇴근하지?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불안해도 시간은 흘러갔고, 모든 장단점을 아무리 계산해도 우리가 잔금대출 받아 입주하는 것 외에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날 저녁에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쿨하게 대답했다.

"이사 가자. 새 집에 살아보지 뭐." 그렇게 나의 긴 고민은 결론을 맺었다.


혼자 하는 고민이 힘들어서, 단순한 남편의 한마디라도, 그걸 의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불과 얼마 전에 새로 들인 장롱과 안마의자, 작지만 무거운 어항까지. 모두 짐이 되었다. 그리고 살고 있던 전세집은 복비를 물어주면서 다른 임차인을 구해주었다.




새 집의 하자체크와 대출 문제로 일주일에 몇번씩 서울에서 화성까지 다녔다. 막상 가보니 수원 생활권이라서 생활하기는 좋을 것 같았지만 멀기는 정말 멀었다. 이 거리를 남편이 출퇴근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다니던 교회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 끝이 없었다. 이제 결정을 했으니 좋은 점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을 보니 모두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평지이고,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다보니 학교나 학원 갈 때 항상 자전거를 타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우리 아이는 보조바퀴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사 일주일 전, 나는 숨고에서 자전거 선생님을 찾아서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했다. 엄마와 수십번의 시도에도 못 하던 아이는 전문 선생님과 함께 2시간만에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아이는 이사간 후에 자전거도로를 쌩쌩 달리며 내 도움없이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이사간 후에도 서울에 있는 교회에 다니려고 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이 정말 계속 다닐 거냐고 물었다.

"교회까지 옮기면... 내가 서울에 다시 못 돌아올 것 같아."

친정은 서울이었지만 마음이 가깝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더 편했다. 그런데 이사간 곳 근처로 교회를 옮기고 그 곳 생활에 익숙해져 버리면 다시 서울에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아이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되도록 서울에 있고 싶었다.


교회와 병원은 서울까지 다니기로 하고, 우리의 몸만 잠시 옮기는

그런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가져보는 내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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