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내 집 지키기
어느 유투버가 그랬다.
초반에 너무 신축 좋은 집에 세들어 살지 말라고. 눈이 높아져서 내 집을 못 산다고.
그 말을 이제서야 이해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아파트에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신축브랜드 첫 입주, 모든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넓은 공간, 엘리베이터를 호출해주는 인터폰, 어플로 제어할수 있는 조명과 가스...
창밖에 보이는 놀이터에서는 항상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었고, 아이들은 단지입구에 마련된 셔틀대기공간에서 학원셔틀을 탔다. 어디가든 경비아저씨가 지켜주었고, 외부차량 주차금지도 잘 지켜졌다. 주차로 시비붙을 일도 없었다. 음식물쓰레기 봉지도 살 필요없이 세대별 카드로 무게를 측정해서 버렸다.
좋은 점도 많았지만 힘든 점도 있었다.
집에는 끊임없이 하자보수할 일이 있었다. 1년동안 200건은 처리한 것 같다. AS시간을 맞추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주변 편의시설이 많이 없었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단지내 상가시설에는 편의점1개, 부동산 여러개만 입주해있었다. 차츰차츰 카페, 빵집, 태권도장, 피아노학원 등등 생겨났다. 분식집이 처음 오픈하는 날, 1시간을 줄서서 기다리며 떡볶이를 사먹었다. 고작 떡볶이였지만 정말 반가웠기에, 그곳에 함께 줄서있던 이웃들은 모두 그 시간이 행복해보였다.
주변 학원들이 대부분 저학년위주라 4학년 우리아이에게 적당한 학원을 찾기 힘든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아이는 미술, 수영, 줄넘기 등 예체능 위주로 학원에 다녔다. 그곳은 수원삼성이 가까워서 그런지 물가가 높은 편이었고, 아이들 학원비도 비쌌다. 예체능보다 주요과목 위주로 차츰 학원을 옮길 생각을 하면 힘들었다.
나는 한달에 한번 이상 서울 병원에 다녀야했고, 매주일에는 교회에 다녔다. 주중에는 남편이 차로 출퇴근을 했다. 기름값이 만만치 않았다. 남편은 원래부터 밤늦게 퇴근하고 새벽일찍 출근했었는데 차로 멀리 운전할 생각을 하면 불안했다. 장마철이 되면서 내가 먼저 남편에게 제안했다. 장마철 만이라도 회사앞 고시원에서 지내는게 어떻겠느냐고. 고시원비용이나 기름값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그저 남편이 먼길을 오갈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불안했다.
좋은 점보다 불안한 점이 많은 내집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