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 않은 나
아크릴 물감은 똑같은 색을 내지 않는다
백수생활이 지겨워질 때쯤 아크릴화 그리기를 도전했다.
미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으나 평소에도 무언가를 끄적이는 걸 좋아해
고민하지 않고 아크릴화 준비물을 주문했다.
유튜브를 켜서 '초보 아크릴화'를 검색한 후
가장 마음에 와닿는 그림 영상을 골랐다. 물론 나의 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로.
검푸른 바다에 등대 하나, 유채꽃이 핀 제주도 풍경이었다.
유채꽃 특유의 밝음과 홀로 선 등대의 외로움이 함께 느껴졌다.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대상의 어우러짐이 매력적이었다.)
강사님의 말씀을 따라 캔버스에 물감을 붓고 이리저리 붓을 휘저었다.
얼추 그려지는 모습에 나름의 만족감을 안고 1시간, 2시간...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바다 배경은 그렸고, 유채꽃도 이만하면 됐지. 다음으로 풀을 그려볼까?
연푸른색을 내는 풀의 색을 만드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다.
연두색 조금, 초록색 조금, 하늘색 조금.
어, 이 색이 아닌데?
조금은 탁해 보이는 풀 색에 하늘색을 눈곱만큼, 아니 먼지만큼 섞어보았다.
어, 이 색도 아닌데.
그렇게 한참을 섞고, 또 섞었다.
마침내 원하는 색이 나와 신나게 풀을 그리던 중,
물감이 떨어져 또다시 풀 색을 제조했다.
연두색, 초록색, 하늘색.
나 제대로 섞은 거 맞지?
또다시 손톱만큼 하늘색을 섞었다.
여러 번 붓고 또 붓고, 반복하였지만 처음 그 풀 색은 사라지고 없었다.
문득 그림을 그리다 깨달음을 얻는다.
같은 것이 없구나, 무엇 하나.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먼지만큼의 다름이 첨가되어 우리는 또 다른 색이 된다.
아니, 또 다른 색으로 존재한다.
가끔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누군들 나를 알아줄까, 하며
신세한탄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아크릴화를 그리며 깨닫는다.
'나의 색깔도 분명히 존재하는구나.'
어느 누구도 나의 색깔을 흉내 낼 수 없다.
그 여러 번 시도해도, 나의 색깔은 나만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