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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형준 변호사 Oct 29. 2018

카오스 이론

전북대학교 행정학과 93학번 새내기로 입학을 하면서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 설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달려왔는데, 목표에 이르고 보니 이제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방향을 몰라,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기대감, 설렘 그리고 답답한 마음 가운데 그럭저럭 대학 1년을 보내고 바로 군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에 복학하면서 학교 도서관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불안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졸업하고 뭐하지?, 뭐 먹고살지?'라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저를 엄습하였고,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는 불안감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 당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잠시나마 떨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도서관이었습니다. 멍하니 도서관 의자에 앉아만 있더라도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 자체로 불안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안감은 여전히 제 주위를 맴돌면서 시시때때로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상기시켜 왔습니다. 벗어나기 위해 생각과 감정들을 메모해 나가기 시작했고, 도서관에서 여러 분야의 책들을 빌려 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벗어나기 위해서 전공, 일반선택과목, 교양수업시간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생각과 감정의 정리, 독서, 경청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오자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의 평안이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어주지는 못했지만 불안감이 꽉 들어찰 자리에 여유라는 공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불안감, 평안과 여유가 공존하는 마음을 품고 초등학교 시절 꿈을 적는 란에 변호사라고 적었던 제 행동에 이끌리어서인지 어느덧 사법시험을 준비할지 말지 결정할 때가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도전을 하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였으나, 누군가 저에게 그 답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답을 얻지 못한 채 "뛰어들겠사오니 이 길이 제 길이 아니라면 제 인생 어디쯤에선가 다른 길로 인도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힘든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년의 휴학을 더 하게 되었고, 2000년도에 졸업을 한 후로도 5년이라는 시간을 제 자신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불확실성과의 긴 싸움에서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었던 저만의 비법은 하루 단위로 사는 거였습니다. 1개월 뒤, 6개월 뒤, 1년 후, 2년 후를 바라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너무 멀리 느껴졌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또 하루를 성실하게 살고, 하루의 끝을 보며 하루 단위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 하루의 끝만 바라보며 치열하게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불확실성과의 긴 싸움에서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저만의 기술은 자신감이었습니다. 자신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입니다. 많이 알고, 능력 많다면 자연스레 자신감이 생길 것입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많이 알기 위해, 능력이 많아지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저에게 자신감이란 "오늘 내가 하는 일이 내 인생 어딘가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이라고 재해석되었습니다. 하루 단위로 하루를 낭비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러한 하루들이 모여 내 인생이 만들어지고 어떤 형태로든 긍정적인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저만의 카오스 이론을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 하루를 맞이하고 보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저의 모든 행동들이 반응을 낳고, 그 반응이 반응으로 이어져,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까닭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 현재 저는 변호사 11년 차에 접어들었고, 어느덧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드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현재의 저에게도 여전히 불확실성은 상존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극복하려 했던 저의 젊은 날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써 나가는 동안 현재 저에게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저만의 답을 다시 찾은 것 같습니다.


 치열하게 살던 젊은 날에 한 달 정도 붕어빵을 굽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안국찬 교수님께서 설익은 붕어빵, 탄 붕어빵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주시던 때가 생각납니다. 신무섭 교수님께서 찍어주신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며 회상에 젖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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