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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semiro Oct 12. 2024

온새미로의 갤러리 14 ㅡ툴루즈 로트렉

토요 갤러리ㅡ툴루즈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별

몽마르트르의 별

인상적인 이유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예술로 승화시킨

툴루즈 로트렉

외로움과 자격지심으로 인해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화폭에 자신의 이미지대로 그려내지 않았을까요?


37세에 사망한 툴루즈 로트렉

짧지만 수많은 작품을 남겨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몽마르트르의 별이 되었네요

그 무엇이라도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들을 남기고 싶다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어 감사합니다.


Q.  전화 위복이 되었던 사건이 있나요?


마이아트뮤지엄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미술의 거장,

암리트불루츠로트렉의 탄생 160주년을 기념하여 툴루주-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별전시를 2024년 9월 14일부터 2025년 3월 3일까지 개최한다.

로트렉은 프랑스 귀족 가문의 출산 미술가로, 벨에포크' 시대 파리 밤 문화를 특유의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필체로 표현한 석판화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대 그래픽 포스터의 선구자이자 세계 미술사의

위대한 예술가 중한 명으로 손꼽힌다. 화가, 판화가, 삽화가로 활동한 그는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고 당대예술의 중심지였던 몽마르트르에서 새로운 예술의 다양성을 흡수하며 독창적인 양식을 개척했다.

이번 전시는 로트랙의 심리적 결핍과 비운의 생애를 강조해 온 이전의 경향을 벗어나 그의 예을 새로운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신체적 장애에도 개의치 않고 사람들과 교류를 즐긴 그의 호방함 어떠한 유파에도 속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새로운 예술을 받아들인 그의 실험정신, 특히 화려함과 저급함 이면의 인간미를 관찰했던 그의 휴머니즘을 강조하고자 한다.

세기말 역동성과 휴머니즘이 맞물려 빚어낸 로트렉 예술의 비범함을 탐구하는 본 전시는 그가 몽마르트르에서 탄생시킨 불후의 작품들과 함께 동시대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의 황금기를 이끈  쥘 세례, 조르주 드피르, 앙리 가브리엘 이 벨스, 테오필-알렉상드르 슈타인렌, 알폰스 무하를 포함한 13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망라하여 156점의 석판화 명작을 선보인다.


쾌락의 여왕

앙리 드 룰루주-로트렉

1864-1901

유전적 결함과 유년 시절도 번의 사고로 다리가

위축되는 장애를 가졌던 로트렉은 사냥이나 승마와

같은 역동적인 귀족 문화에 조화될 수 없었고 대신

그림을 그리며 외로운 시간을 달했다. 그는 로

영향력과 후원으로 당대 저명한 화가인 레용 보나!

그리고 페르낭 코르몽에게 미술을 배웠다.

1880년대 중반 로트렉은 스승의 울타리와 이젤

페인팅에서 벗어나 몽마르트르에 정작하고 작업실을

마련하여 카바레 유명 인사와 파리의 보헤미안들을

자유롭게 그렸다. 

그는 첫 번째 석판화 포스터 작품

(클랑 루주:라 글튀>(1891)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 후 아리스티드 브뤼앙, 제인 아브릴, 이베트 길베르

로이 플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타들의 개성을

간결하게 표현한 독창적인 화풍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유명 인사뿐만 아니라 매춘부의 평범한 일상에

애착을 가지며 인간에 대한 비범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로트렉은 동시대 다양한 총위의 문화와 예술에

직접 뛰어들어 세기말 회화의 다양성을 흡수하고

몽마르트르의 쾌락과자극을 받아들이며 즐겼다.

그러나 1891년부터 1901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31점의 포스터를 제작하며 창작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중독과 찾은

매춘으로 1897년부터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다.

결국 그는 1901년 9월 9일 지종드에서 자신의 영원한

지지자인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36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737점의 유화, 275점의 수채화,

369점의 판화 및 포스터. 그리고 4,784점의 드로잉을

남긴 그의 예술과 정신은 어머니의 뜻과 함께 세워진

알비미술관을 주축으로 보전되고 있다. 로트렉은 현대

판화의 태동 속에서 석판화 광고 포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고급 미술과 저급 미슬의 경계를

허물고 전위적인 구성과 실험적인 필치로 현대 회화의

도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예슬은 귀중한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1부   Chapter 1

(19세기말 프랑스는 정치경제, 과학기술, 문화예술의 융성으로 화려한 시기를 맞이했다. 미술계에서는 일본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자포니즘이 유행하고 새로운 예술 양식을 지향하는 아르누보 운동이 성행하였으며, 산업회와 석판 인쇄술의 발전으로 포스터 미술이

부흥하였다. 이 시기 수많은 예술가들이 파리

몽마르트르에 모여들어 그 풍요로운 시대의 신기술과 예술 경향을 자유롭게 실험하였다.

이 근대 미술의 흐름 가운데 귀족의 신분으로 특유의 전위적이며 매혹적인 양식을 개척한 앙리 드틀루즈

-로트렉이 있다.

1880년대 중반 로트렉은 몽마르트르에 정착하고 작업실을 마련하였다.

유홍 문화가 성행한 이곳에서 로트렉이 자연스럽게 이끌린 대상은 무용수, 연예인, 카바레 가수 등 몽마르트르의 유명 인사들이었다. 당대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던 카바레 '물랑 루주'의 홍보 포스터 제작을 의뢰받은 로트렉은 대담하고 파격적인 구도와 인물 표현이 특징적인(물랑 루주: 라굴뤼)(1891)를 선보였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사진가 폴 세스코

Le Photographe Sescau

1894

사진가 폴 세스코)는 로트렉의 친구이자

사진작가였던 폴 세스코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촬영하는 모습을 표현한 품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세스코는 여성을 밝히는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었는데, 보통 사진 촬영을 목적으로 여성

모델들을 자신의 스튜디오로 부른 다음 성적으로

유혹하곤 했다. 로트렉은 그러한 세스코의 면모를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가면을 쓰고 붉은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모델은 그의 음흉한 시선을 피해

카메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로트렉은 그녀의

모자와 하반신을 의도적으로 잘라내는 방식으로

화면 바깥에 튀어나을 듯하게 묘사함으로써 서둘러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강조하였다. 작품에 쓰인

'9. Place Pigolle'은 세스코의 스튜디오가 위치한

피갈 광장 지역을 의미한다.


                       2부 휴머니스트

에로틱한 장면 속 매춘부가 아닌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영위하는 한 여인으로서 그들을 묘사한 로트렉은 신분과 계급의 굴레를 벗어난 온전한 인간다움을 화폭에 담았다.

로트렉은 1895년까지 지속적으로 여성 배우나 가수를 묘사하는데 관심을 보였다. 특히, 그는 유명 가수 메이 벨포르와 무용수 메이 밀턴의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그들의 통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보다는 개인의 매력과 재능을 강조할 수 있는 필체와 컬러를 선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본 장에서는 로트렉의 기법이

한층 더 원숙하게 표현된 작품들과 함께 그의 휴머니즘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나보자.


목욕중인 여인
요트에서 우연히 만난 54호 선실의 여행객

요트에서 우연히 만난 54호 선실의 여행객)은

어머니가 있는 보르도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 탑승한

증기선 '실리호'에서 54호 선실의 여인을 만

그린 작품이다. 식민지 관료의 부인이었던 그녀는

세네갈에 있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여정 중이었다.

로트렉은 여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보르도를

세네갈까지 따라갈 작정까지 하였지만,

유럽의 마지막 항구였던 리스본까지 동행한 후

하선하였다. 그는 배의 난간에서 몰래 찍은 그녀의

사진과 당시에 그린 드로잉을 토대로 석판화를

제작하였다. 본 작품은 이후 1896년에는 문구가

추가되어 국제 포스터 전시회의 포스터로

사용되기도 했다.

       제3부 몽마르트르의 별  1898-1900


화려한 몽마르트르의 별들이 지닌 슬픔과 유머를

세상에 직접 뛰어들며 표현하였던 그는 이제 근현대

미술사의 별이 되어 오늘날을 조용히 비춘다. 특정한

이념과 유행을 좋은 것이 아닌 자신만의 철학으로

인간사의 두 뒤안길을 관찰한 로트렉은 그 어떠한 지적

피력 없이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순간을 그리는 데

전념했다. 본 장에서는 로트렉의 원대한 실험정신과

인본주의적 통찰력이 빚어낸 그의 창작 생애 후반기

판화 작품과 다양한 삽화 작품들을 만나보자.

제인 아브릴



             제4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트리아농 콩세르

프랑스 석판화 삽화가인 앙리 가브리엘 이 벨스의 작품

제인 드베리 가수의 공연

미화되지 않은 인물표현이다.

https://youtu.be/SOxniqD2K1M?si=vKRFIVxHV2WpOZ9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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