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새미로의 갤러리 ㅡ Christian Dior

크리스챤 디올 - DDP

by 온새미로



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



이번 전시, 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는 파리 오뜨 꾸뛰르의 탁월함과 창의성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15년 이상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여 온 디올 하우스의

특별한 여정을 조명합니다.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



크리스챤 디올의 초상화

기계로 스티칭된 린넨에 유화



황홀한 디올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현장에서 직접 체험해야만 한다.

모든 감각을 통해 온전히

느껴지는 감동이야말로 말로 표현하기는 렵다.

그만큼 황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1947 년 2월 12일, Christilan Dior(크리스챤 디올)이 선보인 첫 번째 오뜨 꾸뛰르 컬렉션은 공개 직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카웰 스노우가 New look(뉴 록)이라 명명한 아방가르드한 의상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행하던 실루엣에 혁명을 불러일으키며 전 세계에

새로운 미학을 제시했습니다.


잘록하게 조인 허리 라인과 풍성하게 퍼지는 스커트는 우아하게 춤을 추는 듯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실루엣으로 여성미와 고전 무용수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첫 패션쇼의 성공에 힘입어 디올은 이듬해 뉴욕에 부티크를 오픈했고,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패션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부티크 및 라이선스 계약이 체결되면서 Christian Dior(크리스찬 디올)은

파리 패션계 최초로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패션 하우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Christian Dior (크리스챤 디올)이 패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Christlan Dior(크리스찬 디올)은 건축가나 작곡가를 꿈꿨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1920년대에 미술 갤러리 관장으로 활동했으며, 후에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1938년에는 로베르 피게, 1941년에는 루시앙 르롱이라는 프랑스의 유명 패션하우스 두 곳에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1946년에는 산업가 마르셀 부삭의 후원을 받아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에 자신만의 꾸뛰르 하우스를 설립했습니다.


10년 후, 최고의 영예의 자리에 오른 그는 1951년 10월 24일, 52세의 나이에 감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산은 이브 생 로랑, 마크 보양, 지안 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

이르기까지 여섯 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통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브통 드 호즈

장 미셀 오토니엘

스테인리스 스틸 금박








창조적 영감은 마치 나무에서 수액이 흐르듯

하우스 전체에 스며듦이 견습생과 재봉사들의

손끝을 스치고, 투왈위를 바쁘게 오가며

바느질을 하거나 솔기 앞에서 머뭇거리는

손끝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바로 그 손끝에서 미래의 스타일이

탄생하는 것이다.


ㅡ크리스챤 디올 ㅡ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온새미로의 갤러리 ㅡ툴루즈 로트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