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UND SEESAW
비 오는 날에는 건물밖 풍광조차 아름다운
그라운드 시소 센트럴
GROUND SEESAW
요시고(YOSIGO)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사진작가
호세 하비에르 세라노(Donostia, 1981). 산 세바스티안 기반의 이 젊은 예술가는 평범한 풍경과 장소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피사체에 따라 빛을 다루는 방식을
달리하며, 개성 있는 사진 언어를 발전시켰다.
그의 감각적인 색감과 구도를 활용한 작품들은 점차 주목을 받았고, 2021년 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열린 요시고 사진전 : 따뜻한 휴일의 기록을 통해 한국 관람객에게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 40만 명 이상이 방문한 전시는 팬데믹 탓에 여행이 어려웠던 시기,
많은 이들에게 여행의 갈증을 해소하는 기회가 되었고,
한국에 요시고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YOSIGO라는 이름은 사진을 찍겠다고 선언한 요시고에게 아버지가 선물한 시한 편에서 인용한 것이다.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것,
즉'YO SIGO(계속 나아가다)'를
실천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시였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조차 몰랐던 시절,
디자인이나 사진 칠영에 전혀 재능이 없다고 느꼈을 때 아버지의 시가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어떤 일의 결과가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본능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활동명'YOSIGO'에는 아들을 항한 아버지의 응원과 그 응원에 보답하려는 아들의 신념이 담겨있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해안 마을 출신인 요시고는
어린 시절 카메라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살던 곳
근처인 라 콘차 해변에서 사진을 찍곤 했다.
같은 장소를 몇십 년째 찍고 있지만 작가에게
이 해변은 매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곳이다.
아마 그 이유는 작가가 해변 자체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장면에 더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보다 어떤 일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특정 장소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요소를 생략하고 인물이나 상황에 집중한다.
관광과 레저에 관심이 많은 작가에게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는 크루즈 여행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지중해를 여행하는 크루즈에 탑승한 요시고는
매일 12km씩 걸으며 크루즈의 모든 장소를 관찰했다.
선베드로 즐비한 수영장과 워터파크, 수평선과 나란한 갑판과 호텔의 객실까지. 요시고가 포착한 크루즈 관광객들의 모습 속엔 작가 특유의 유머코드가 숨겨져 있다. 바다 위에서, 바다와는 거리가 먼 레저처만을 즐기는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 때문은 아닐지. 유난히 즉흥적이고 계획에 없는 변수가 많았던 크루즈 촬영에서는
어떤 장면이 포착되었을까?
쉼 없이 흘러가는 도쿄, 누군가는 반쯤 감긴 눈으로
지하철 손잡이를 붙들고, 어둑한 골목에선 한숨과도
같은 담배연기가 피어오른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무심한 듯 반복되지만,
그 안에는 하루를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와 감정이 쌓여 있다.
익숙하기만 한 서울의 풍경도 천천히 걸어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거대한 빌딩 숲을 지나 좁다란 골목길로
들어서면, 문득 정겨운 시장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거리 하나를 두고 상반된 장면이 교차하는 이곳,
자세히 볼수록 더욱 아름답다.
2021년 서울 전시를 계기로 지구 반대편의 한국 사람들과 뜻밖의 공감을 나누었던 요시고에게 한국 여행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평생 접점이 없던 낯선 나라 한국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작가는 보이는 것보다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감정이 많이 작용했던 이유는 아마 작가의 시선에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향한 감사와 애정이 담겨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을 여행하며 때로는 활기찬 분위기를, 때로는 환상처럼 매우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는 작가는 유명 관광지보다 일상적인 풍경을 유심히 관찰했다.
요시고가 이방인의 시선으로 경험한 서울의 정물과 풍경은 어떤 색과 빛으로 표현되었을까?
전시의 제목 'MILES TO GO'는 직역하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유적으로는 '달성해야 할 목표나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요시고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때때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꿈꾸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다음에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까?
막연했던 팬데믹 시절, 무명의 사진작가 요시고는
조용히 우리 곁을 찾아와 따스한 위로와 희망을 건넸다.
그의 사진은 멀리 떨어진 어딘가의 풍경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빛과 색, 그리고 여유로운 순간들은 마치 선물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상실의 시간을 지나
우리는 변화와 성장을 경험했고, 요시고 또한 그러했다.
요시고 사진전 : MILES TO G0)는 요시고가 2021년부터 최근까지 스페인에서 미국, 일본을 거쳐 서울까지. 작가는
낯선 도시들에 머물며 자신의 아카이브를 확장해 나갔다.
특히 이번 전시는 그가 새롭게 시도한 이미지 변화에 주목한다. 여전히 따뜻한 빛과 지중해의 색감을 간직하면서도 보다 회화적인 표현과 역동성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안주하지
않는 성장에 대한 열망을 한층 더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시간과 감성이 스며든 기억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확장된 그의 여정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예고하는 이정표가 된다.
어쩌면, 그의 사진 속에서 우리도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