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목욕_김해시 봉황동 <서부탕>
젊은이들 입에 오르내리는 소위 핫플레이스가 '*리단길'로 불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흥망성쇠를 겪은 지 꽤 오래인데도, 아직 지방의 많은 동네들은 *리단길 혹은 가로수길을 따 이름 붙인 곳들이 제법 많다. 공식 명칭은 아니니까 애칭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는지.
아무튼, 김해에도 그런 곳이 있다. 봉황동에 있는 봉리단길이다. 오리지널리티는 '봉'이라는 글자 하나에만 두고 핫플레이스를 상징하는 어미 '리단길'을 붙인 조어법으로 탄생한 명칭이다. 지역 청년들이 토박이 동네에 아기자기한 카페며 상점을 열게 된 게 봉리단길의 시작이었다. 세월이 겹겹이 쌓인 진짜배기 빈티지와 신선한 감각이 만나자 오묘한 매력이 생겼다. 그래서 몇 번이고 들락날락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맞닥뜨렸다. 무심코 지나치던 골목에 제법 큰 목욕탕이 있었다. 차에는 목욕 가방이 있었고, 친구와 밥도 먹고 차도 마셨겠다. 친구를 배웅하고, 곧장 목욕탕으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 다섯 시 반, 짧은 겨울 해가 떨어져 어둑한 무렵에야 목욕탕으로 들어섰다. 카운터에는 편안한 인상의 어르신이 홀로 느긋하게 수건을 개키고 개셨다. 목욕비 5,500원을 내고 수건 두 장을 받았다. 저렴한 편이다. 요금을 지불하고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탈의실 내부는 평범한 동네 목욕탕. 낡았다고 하기엔 깔끔했고 새것이라고 하기엔 손때 묻은 집기들이었다. 평상, 소파, 로커, 텔레비전, 드라이어.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제자리에 있었다.
그에 반해, 탕은 조금 독특한 인상이었다. 멋 부렸다고 할까? 어딘가 리듬감이 넘치는 공간 배열이었다. 왼편으로는 바닥에 거의 납작하게 붙은 듯한 열탕과 온탕이 있고, 가운데를 약간 비껴 오른쪽에 솟아 난 육각기둥 모양의 좌석 자리의 구도가 묘한 긴장감을 준다.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해 마지않는 디테일인 '타일 벽화'까지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인가, 이구아수 폭포일까, 제법 박력 넘치는 폭포가 모자이크 기법으로 그려져 있었다. 큼직하고 차가운 물이 찰랑이는 냉탕 배경 뒤로 쏟아지는 폭포 그림이라니. 그림 속 폭포에서 쏟아진 물이 냉탕을 가득 채운 것처럼 연상되는 그림 배치였다. 그렇게 찬찬히 보고 있으니 허투루 만든 구조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관찰하는 동안 팔이 빠져라 때를 밀고 있었다. 이 목욕탕 이상하게 때도 잘 밀리네. 물이 좋은가? 수상한 사람처럼 혼자서 두리번거리고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보는 재미와 씻는 맛까지 두루 누리며 한 시간 반 남짓의 목욕을 즐겼다.
목욕탕에서 뭉게뭉게 피어난 궁금증을 한 아름 안고 카운터 앞에 다시 섰다. 애매한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다행히 손님이 없어, 사장님께 슬쩍 말을 붙여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 목욕 막 하고 나왔는데요. 좋네요."
"처음이지요?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네, 여기 봉리단길 놀러 왔다가 들러봤어요."
"요새 봉리단길에 사람 많아도 목욕탕에는 없는데. 어째서 목욕탕에 왔어요?"
"아 제가 목욕을 좋아해서요. 온천도 좋아하고요."
"아, 그러면 그렇겠네. 요새 젊은 사람들 잘 안 오니까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사장님 여기는 얼마나 오래됐어요?"
"보자, 이 건물은 20년 전에 새로 올렸고. 원래 이 목욕탕은 67년에 시작했어. 우리 아버지랑, 내가 꼭 손님 나이 만할 때 시작했으니까.. 50년 넘었지."
"헉, 그렇게 오래됐어요? 저는 20년 전으로 개업이 등록되어 있길래 최근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 옛날에 김해 서쪽에 목욕탕 없을 때 그때 거의 처음 세웠어요. 저기 불암동 쪽에 목욕탕이 처음 하나 생겼었고. 우리가 두 번짼가 그랬지. 여기 목욕탕이 원체 없었는데 그쯤부터 80년대까지 쭉 생기다가, 90년대 중반부터 하나씩 문 닫더니 이제 남은 게 이 동네에 세 갠가. 몇 개 없어요. 우리는 계속 할라꼬 20년 전에 건물을 아예 싹 새로 지어 올린 거라."
"그럼 이 동네 역사를 다 보셨겠네요. 대단하세요!"
"그렇지 뭐, 일단 이 자리에서 계속 있었으니까요. 옛날에는 이 동네도 사람 참 많았는데... 아들 델꼬 와서 목욕탕이 바글바글하고 그랬지 뭐. 근데 봉리단길에 오는 젊은 사람들도 카페나 식당 찾아가지 목욕탕에 오나요. 손님 같은 사람들이야 목욕 좋아하니까 온담서도, 당장 우리 딸이랑 손주들도 잘 안 와. 할아버지 집이 목욕탕인데도. 우짜다 한번 올까. 요새 아 키우는 사람들이 아 델꼬 목욕탕에 안 간다데. 그러면 끝난 거지 뭐. 그 아들이 어디 가서 목욕탕을 알겠어. 모르니까 안 오고, 그러면 문 닫는 거지요."
"하긴, 저도 제 친구들이랑 목욕 같이 다니기 힘들어요. 다들 별로 안 좋아해서. 근데 사장님은 어떻게 계속하시고 계신 거예요?"
"내사 아직 건강하니까, 그리고 목욕탕 일이 좋으니까 하지요.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기는 한데 모르겠네요. 여기 젊은이들 오고 가는 거 보니까 이 자리도 목욕탕이 아니라 목욕탕을 다르게 꾸며갖고 뭘 해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요샌 목욕탕 고쳐서 뭐 카페니 식당이니 많이 하더만."
"아... 그대로 목욕탕 하셨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자주 오세요. 그러면 되지요. 허허. 봉리단길 오는 김에 목욕탕 오라고 알려주면 더 좋고."
그 밖에도 사장님과 이런저런 목욕탕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를 짤막하게 나누었다. 그간 목욕 여행하며 보았던 도쿄의 목욕탕 붐 현상 등에 대해서도 얘기를 드렸지만, 그건 젊은 인구가 많은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국한된 사례가 아닐까 하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무엇을 한대도, 사람이 없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지역에 남아 있는 청년 인구는 줄어든 지 오래, 다시 유입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일자리가 없다. 문화가 없다. 그런 문제들을 극복해보고자 젊은 청년 사장님들이 노력하며 봉리단길을 일구었다고 들었지만, 목욕탕의 영업에까지 영향을 줄 일은 아니었던 거다. 그게 젊은이들의 문화가 아니니까.
앞으로 서부탕은 얼마나 골목을 오랫동안 지킬 수 있을까? 다음번 방문에는 목욕탕에서 목욕할 수 있을까? 아니면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게 될까? 사장님 조차 알 수 없다고 하셨으니, 누군들 알까. 다만 목욕탕 애호가로서, 목욕탕을 지켜 온 사람들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의 노고가 기록되고, 이야기 되기를 바란다. 등 떠밀리듯 문닫지 않고, 부디 서부탕 스스로가 목욕탕이고 싶을 때까지 목욕탕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언젠가 사라지더라도, 봉리단길의 터줏대감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
서부탕ㅣ김해시 김해대로2273번길 43
5:00 ~ 21:00, 매주 화요일 휴무 ㅣ 성인 5,500원 ㅣ 수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