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목욕_창원시 마산합포구 <앵화탕>
주말마다 목욕을 가는 나로선, 언제나 새로운 목욕탕이 간절하다. 그래서 가끔 낯선 동네의 목욕탕이며 온천을 찾아보며 다음 방문지를 정한다. 지도에서 낯선 동네에 좌표를 두고 목욕탕을 검색하면 의외로 가고 싶은 곳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대개 아무 정보가 없지만 그럼에도 끌리는 곳들이 있달까. 대표적으로는 이름이 멋진 곳들이 좋다. 이름은 많은 걸 말해주니까. 작명 센스야 말로 인생의 센스라고 믿는 내게, 이름은 만나보지 못한 목욕탕의 강렬한 첫인상과도 같다.
오늘 소개할 앵화탕도 그런 멋진 이름 중 하나였다. 그냥 벚꽃이 아니라 고전적인 분위기 팍팍 나는 앵화(櫻花). 얼마 만에 들어보는 표현인지. 그래서 추가 조사에 들어가기로 한다. 별 거 없다. 그냥 녹색창에 한번 쳐보면 된다. 의외로 몇몇 블로그 글에 신문 기사까지 있었다! 오호! 읽은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앵화탕의 전신인 앵탕은 1914년 첫 등기가 확인된다. 당시 두월동은 신마산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동네였다. 첫 주인은 일본 효고현 출신 가지하라 겐지로다. 1928년 마코토 요우라는 사람이 인수했는데, 마코토는 1925년 설립한 (주)마산무진 이사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앵화탕은 1층에 남탕과 여탕을 뒀다. 목욕탕 앞 우물과 무학산 관음사 주변에서 물을 끌어다 썼다. 이후 1945년 해방 직전 한국인 설천섭 씨 등이 목욕탕을 사들였고, 1983년 소유권 이전, 1985년 개축 등의 과정을 거쳤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 2018년 3월 9일 기사, [가만보기] (6) 마산의 목욕탕
이 한 문단을 읽고 소리 지를 뻔했다. 근방에 백 년 넘은 목욕탕이 있었단 말이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소득이었다. 블로그 글들에서는 앵화탕이 있는 두월동이 일본인 동네였다는 역사적 사실들을 일러주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목욕도 하고 근대 역사도 배워볼까.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마저 읽기로 하고 급히 차에 시동을 걸어 목욕탕으로 길을 나섰다.
목욕탕 앞에는 조그마한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제법 수령이 되어 보이는 벚나무들이 주르륵 서있었다. '이름의 이유가 여기 있었네'라고 생각했다. 겨울이라 좀 아쉬운 풍경이었지만, 벚꽃철에는 볼만한 풍경일 것 같았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사이로 보이는 목욕탕이라니. 목욕탕에서 벚꽃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목욕 요금은 5,500원. 수건 2장을 챙겨서 안으로 들어갔다.
동네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온탕에 모여 계셨다. 할머니들은 낯선 얼굴을 흘낏 보더니 이내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 왁자지껄 수다를 떤다. 나는 나대로 무심한 척 자리를 잡고 앉아선 괜히 귀를 쫑긋 세웠다. 입에서 입으로 시시콜콜한 동네 사정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런데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언제 탕에 들어가야 하나, 타이밍을 재느라 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다섯을 비집고 들어갈 용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씻다 못해 안 되겠다 싶어 슬쩍 근처로 다가가니 웬걸. 할머니들이 갑자기 흩어졌다. 은근히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할머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탕에 몸을 담그니 그제야 목욕탕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어깨까지 찰랑이는 물을 느끼며 사지에 힘을 뺀다. 무념무상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 보니 십 분이 금방이었다. 한 번 입수에 오 분을 넘기는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드문 일. 할머니들이 한참 수다를 떨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물 때문이지 싶었다. 촉촉한 화장수 같은 촉감에, 은근히 적당한 온도. 나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몸을 맡겼다.
목욕을 마치고, 역시 카운터 앞에 섰다. 서글서글 웃는 인상인 중년의 사장님, 꼭 우리 엄마 연배 같아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장님, 여기 목욕탕 물이 좋던데요."
"하모, 물이 좋지요. 어데서 왔는교?"
"아, 여기가 백 년 넘었다고 들어서 일부러 찾아왔어요."
"안 그래도 한 번씩 그런 손님들 와요. 여기 오래된 거 알고 오더라고."
"사장님은 얼마나 계셨어요?"
"5년? 얼마 안 됐어요. 인수한 지."
"아, 그러면 그 전에는 잘 모르시겠네요."
"잘 모르긴 해도 대충 얘기는 좀 들었어요. 백 년 넘었다고. 여기 옛날에 일본 사람들이 했다고. 시에서도 와서 책에 싣고 그랬으니까. 근데 뭐 그것보다 확실한 건 물이 좋다는 거지요."
"그러니까요. 온천은 아닌 거 같은데 물이 참 촉촉하니 좋던데요."
"호호, 뭘 쫌 아네. 지하수인데 좋지요? 사람들이 일부러도 찾아와요. 단골 많아요."
뭔가 목욕탕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그런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아쉽긴 했다. 백 년 목욕탕으로 알고 왔는데, 그 세월을 기억하는 이가 없다는 게. 그래도 물에 대한 자부심 넘치는 얘기를 들으니, 내가 착각한 게 아니구나 싶어 내심 뿌듯했다.
목욕 후에는 백 년 전 교마치라 불렸던, 지금의 통술 거리를 거닐었다. 지금은 평범한 동네 골목이지만, 개항 초기 사람들로 북적였던 메인 스트리트였다고 한다. 과연 군데군데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 있어 머릿속으로 그 무렵의 풍경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오 분 정도 걷다 보니 커다란 냉면 집이 나타났다. 출출한 김에 스윽 들어가 냉면 한 그릇을 들이켰다. 목욕탕에서 뜨끈해진 속에 살얼음 낀 냉면 육수를 밀어 넣는다. 목 뒤가 찌릿찌릿 해질 만큼 강렬한 온도차. 기껏 데운 몸을 단숨에 식혀버리는 것만큼 중독적인 일도 없다. 이건,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감각이다.
벚꽃 없는 벚꽃길을 걸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목욕은 남아있을 거라고. 삶의 필수 요소로 꼽는 의식주에도 '욕(浴)'이 드러나있지는 않지만, 의와 식과 주 사이에 어딘가에 분명히 목욕은 있다. 그게 어떤 형태일지 모를 뿐. 내가 백 년 전 시간의 흔적을 찾아 이곳에 왔듯, 백 년 뒤에도 누군가는 목욕을 위해 이곳에 오겠지. 그렇다면, 내 기록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백 년 전 아무개는 앵화탕에 갔다가 냉면을 먹었다고 합니다. 물은 그때도 좋았다고 하는군요. 백 년 후의 앵화탕을 가만히 상상해본다. 그때도 목욕이 행복과 같은 의미였으면 좋겠다.
앵화탕 ㅣ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화남1길 5
4:30 ~ 21:00, 매주 수요일 휴무 ㅣ 성인 5,500원 ㅣ 수건 제공
*지도 미등록으로 첨부하지 않습니다.
함흥집 ㅣ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화북1길 42
10:00 ~ 22:00, 매월 넷째주 월요일 휴무 ㅣ 냉면(평양, 함흥)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