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멈춰야 하는 이유

여성의 날인 오늘만은 고무장갑을 벗으라는 남편의 황당한 배려

by 온 세상이 내 편


유럽의 3월 8일은 거리마다 장미꽃이 만발하다.

발렌타인데이가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이라면, 이곳의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은 조금 더 묵직하고 뜨겁다.

한국에서는 달력 한 귀퉁이에 작게 적힌 기념일일지 모르나, 이곳 스위스나 인근 유럽 국가들에서는 여성을 향한 존중과 연대의 마음을 장미꽃 한 송이에 담아 건네는 아주 특별한 날이다.

마침 오늘, 비상약을 사러 들른 약국에서도 영수증과 함께 하얀 장미 한 송이를 건네받았다. 뜻밖의 선물에 기분이 묘해졌다.


이 날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1908년 뉴욕, 척박한 작업 환경에서 굶주리던 여성 노동자들이 외친 구호와 만난다.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여기서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참정권을 의미한다.

100년도 더 된 이 외침은 오늘날 전 세계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와 행복을 되새기는 뿌리가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세계 여성의 날'하면 장미꽃보다 먼저 떠오르는, 다소 웃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오늘만은 설거지를 금하노니...

애들이 한창 올망졸망했던 때였다.

직장에선 직장에서대로 집에선 집에서대로 일이 끝도 없던 시절, 그 당시 유럽엔 지금처럼 식기세척기가 보편화되지 않았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을 보며 한숨짓는 게 일상이었다.

사실 나는 퇴근하고 들어와서 한숨 돌릴 사이도 없이 식사 준비하고 먹이고 폭풍 노동의 연속이었기에 식사 후에도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보다 차라리 혼자 조용히 거품 칠을 하는 설거지 시간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기에, 대개 남편에게 애들을 맡기고 내가 개수대 앞에 서곤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고무장갑을 끼려는데, 퇴근한 남편이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막아세웠다.


“아니, 오늘 여성의 날인데, 설거지하지 마!”


순간 멈칫했다.


‘맞아. 오늘 여성의 날이었지… 장미꽃 대신(내가 장미꽃 사 오지 말라고 몇 해 연속으로 못 박아 뒀었던 터라 꽃은 생략되었었다) 설거지 릴리프(Relief)를 선물해 주려는구나!’ 싶었다.


“아냐, 괜찮아. 맨날 하던 건데 내가 후다닥 해치우는 게 빨라. 애들이나 좀 봐줘.”


그러자 남편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세상 어디에도 없을 자상한 목소리로 대못을 박았다.


“아니, 내 말은... 오늘 하지 말고 ‘내일’ 하라고.”


푸하하! ….(빵 터지는 바람에 삐지지도 못했다)


내일 한다고 그 접시들이 깨끗해져서 찬장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도 아닐 텐데.

결국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대신해 두 배의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뜻 아닌가.

아무튼 그 황당한 배려(?)에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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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vs 설거지

‘장미’를 선사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오늘 대신해 주는 설거지’가 더 절실할 때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육아전쟁'으로부터 누군가는 끝도 없는 '가사노동'으로부터 - 하루라도 해방되고 싶은 항목이야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 속박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태도,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받을 때가 많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여성의 날이다.

이제는 “오늘 설거지 하지 마(내일 해)”라고 말해 줘도 별 감동이 없는 게, 부엌 한편에 떡하니 독일산 대형 식기세척기가 돌아가고 있고, 그곳에 그릇과 식기를 정리해 넣는 것도 당연한 남편의 일이 된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늘 약국에서 받아온 흰 장미를 긴 유리컵에 꽂아본다.

화사한 장미 너머로 조용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는 식기세척기.

빵의 무게를 나누는 법을 배우기까지, 우리 선조의 여성들에겐 꽤 많은 설거지가 필요했음을… 새삼 기억해 본다.





설거지를 멈추고.

2026년 3월 7일, From Züri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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