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양파를 보며 서로 다른 안심을 쇼핑하는 우리
우리 집의 토요일 오후 일정은 보통 '국경 넘기'다.
스위스의 사악한 물가를 피해 차로 40분 거리 남짓의 국경을 넘어 프랑스에서 장을 보는 것.
장을 보러 나가기 전에 창고부터 열었다.
재고 확인 안 하고 나왔다가, 있던 걸 또 사질 않나, 정작 필요한 건 못 사 오는 일은 다반사다.
감자, 양파 등 실온에 보관하는 채소 박스 맨 아래에서 물러 터진 양파 하나가 손에 잡혔다. 눌러보자마자 푹 꺼지는 그 느낌.
옆에는 싹이 난 감자도 몇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면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싸면 뭐 해. 결국 버리잖아.”
문제는 늘 같은 장면에서 시작된다.
시장에 가면 꼭 등장하는 그 거대한 감자 포대와 양파 자루.
5킬로짜리 양파 한 자루가 3유로 (대략 한화 5천 원).
옆에는 1킬로 작은 망이 2.8유로.
조금의 망설임 없이 1킬로짜리 양파 망을 집어드는 나를 남편은 도무지 이해를 못 한다.
남편은 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그게 거의 4배가 비싸, 왜 그걸 집어?”
나 역시 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니, 둘이서 5킬로를 언제 다 먹어? 결국 1/3은 맨날 썩어서 버리잖아. 양파 무르면서 냄새나고… 싸면 뭐 해, 다 못 먹는데…”
그러면 남편도 또 한마디를 덧붙인다.
“버려도 이게 낫지. 이건 개 당 몇십 센트 하는 건데, 결국 못 먹어서 버려도 그만이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이 잠깐 멈춘다.
‘뭔 소리야… 버릴 걸 알면서 사는 게 이게 과연 싸다고 할 수 있는 건가?’
내 머릿속은 계산기보다도 쓰레기통을 먼저 떠올린다. 멀쩡한 걸 사서, 껍질도 못 까보고 버리는 장면을…
(그리고 개당 가격이 비싼 양파가 싼 양파랑 똑같은 질은 아니다. 조금 더 양질의 것이기도 하다)
물론 남편은 정반대다.
'눈으로 봐도 계산이 딱 나오는데, 왜 몇 배나 더 주고 사지?'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매번 그런 사소한 문제로 장 보면서 '옳네, 그르네' 따지기가 싫어서 남편이 사자는 대로 큰 포대를 사 올 때가 종종 있지만 늘 맘 한편이 개운하진 않다.
그래서 시장은 늘 작은 토론장이 된다.
같은 양파 앞에서도 가격을 보는 사람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고르는 사람이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
그런데, 양파 앞에서는 그렇게 부딪히던 우리가, 품목만 달라지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서로가 어떤 건 끝까지 따져가며 작은 걸 사고, 어떤 건 오히려 종류별로 잔뜩 쟁여둔다.
대표적인 게 약이다.
식재료 앞에서는
“둘이서 이걸 언제 다 먹어?” 하며 망설이는 내가, 비상약 코너에만 서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위장약, 진통제, 감기약…
종류별로 하나씩은 꼭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그래야 ‘혹시’라는 순간이 와도 당황하지 않으니까.
남편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필요도 없는데 왜 이렇게 사둬?”
그는 약은 최소한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아프면 그때 사면 되고, 약도 유효기간이 다 있는데, 당장 쓰지 않을 약을 미리 쌓아두는 건 오히려 낭비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웃기기도 하다.
양파 앞에서는 그렇게 ‘싸니까’ 큰걸 사자던 사람이, 약 앞에서는 갑자기 가장 신중한 소비자가 되니까.
결국, 우리는 소비 성향이 다른 게 아니라 어디에서 불안을 느끼느냐가 다른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나는 몸이 아플 때 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황이 불안하고, 남편은 쓸데없이 쌓여 있는 물건이 더 불안한 사람.
어쩌면 소비라는 건 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어디에서 마음이 놓이는지를 선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장을 보며 생각한 건 단순했다.
돈을 어디에 쓰는지 보면, 그 사람이 어디에서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지가 보인다는 것.
누군가는 숫자가 줄어드는 순간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남지 않는 선택을 고른다.
누군가는 공간이 비어 있을 때 안심하고, 누군가는 대비가 되어 있을 때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씀씀이란 절약의 기술이라기보다, 각자가 어디에서 마음을 내려놓는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작은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양파 앞에서도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돈 때문이 아니라, 각자가 사랑하는 ‘안심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일 테니까.
아마 우리는 돈을 다르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하루의 평화를 지키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같은 장바구니에서 다른 평화를 채우는 하루
From Züri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