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부모의 아픈 손가락

대문호 빅토르 위고도 끝내 구하지 못한 단 한 사람

by 온 세상이 내 편

백만 명의 인파가 그의 장례식에 모였다. 프랑스 국립묘지 ‘빵테옹(Panthéon)’에 안치된 '국민의 아버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

하지만 그 화려한 영광의 그림자 뒤에는 평생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비참하게 죽어간 한 여자가 있었다.

위고가 그토록 구원하고자 했던 민중(Les Misérables) 속에는, 정작 자신의 막내딸 아델 위고(Adèle Hugo 1830~1915)는 없었다.


세상의 고통을 노래하며 인류를 위로했던 거장이 왜 자신의 가장 가까운 '아픈 손가락'은 잡아주지 못했을까.

이것은 한 천재의 위대한 기록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잔혹한 아이러니다.




빅토르 위고, 국민의 아버지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름 가운데 하나는 빅토르 위고다.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와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을 쓴 그는 단순한 문호가 아니라 시대의 양심이었고, 정치가였으며, 국민의 영웅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파리는 애도의 물결에 잠겼다. 장례식에는 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그리고 위고의 시신은 프랑스 국립묘역인 ‘빵테옹(Panthéon)’에 안치되었다.


‘빵테옹(Panthéon)’은 우리나라의 국립현충원과 비슷하면서도 더 특별한 공간이다. 대통령이나 혁명가 같은 국가적 위인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문학인·사상가까지 포용한다. 나라가 “정말 사랑한 사람”이 잠드는 자리다. 한 소설가가 그곳에 묻혔다는 것은, 위고가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국민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너무 교과서적일 것이다.


‘위대한 아버지’라는 이름 뒤에는 누구도 쉽게 꺼내지 않는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막내딸, 아델 위고(Adèle Hugo)다.


위대한 이름의 그늘, 딸 아델


아델은 위고의 다섯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예술적 재능도 있었고, 외모 또한 빼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한 영국군 장교, 알버트 피니슨을 만나면서 크게 뒤틀리게 된다. 아델은 그와 사랑에 빠졌지만, 피니슨은 진심으로 응답하지 않았다. 결국 관계는 일방적인 집착으로 흘렀다.


아델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오히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 매달리며 끝없는 편지를 보냈고, 피니슨이 어디로 가든 따라다녔다. 급기야 바다를 건너 영국령 캐나다 핼리팩스까지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곳에서도 그녀는 자신을 그의 약혼자라고 소개하며 환상 속에 머물렀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피니슨은 끝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아델은 결국 정신적 불안정과 환청, 망상에 시달리며 평생을 외롭게 살아야 했다.


아델의 이야기는 나중에 영화 《아델 H의 일기》로도 제작되었다. 그러나 영화 속 비극적인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녀의 이름이 늘 “빅토르 위고의 딸”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불렸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아버지의 이름이 그녀에게는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족쇄였을 수도 있다. 아델 개인의 불행과 병은 결국 ‘위대한 이름의 그늘’ 속에서 평생 덮여 있었다.


국민의 아버지로 불렸던 위대한 이름도 자식의 불행은 막아내지 못했다. 세상이 사랑한 아버지는, 딸에게는 끝내 닿지 못한 아버지였다.


‘가족’이라는 아이러니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세상의 고통을 노래하고, 국민을 위로한 위대한 문호가 정작 자기 딸의 절규는 막아내지 못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이건 비단 빅토르 위고의 집안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사회적 관계’는 의외로 단순하다. 조금 거리 두고 지내면 상처도 덜하고, 예의를 지키면 유지되기도 한다. 오히려 진짜 어려운 건 가족이다. 가까울수록 말이 쉽게 상처가 되고, 오래 함께할수록 지워지지 않는 오해가 쌓인다.

다들 드러내놓고 말을 안 할 뿐, 누구에게나 가족 중에 ‘아픈 손가락’이 한 명쯤은 있다. 누군가는 늘 문제를 일으키고, 또 누군가는 늘 상처를 받는다. 가족만큼 다루기 힘든 관계도 드물다.


오죽하면 “신은 인간이 고통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가족을 보냈다”라는 말이 있을까.

아델 위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취를 좇아가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세상에 남기는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남기는 마음 아닐까.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마음이며, 내 곁에 있는 가족은 내 마음을 어떻게 받아내고 있을까?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니, 두 얼굴이 닮았다. 부녀지간 맞는구나… 빅토르 위고가 딸 아델을 바라보는 심경은 무엇이었을까?


【오늘의 단상】

잘 나가는 부모의 아픈 손가락


위대한 이름이 곧 위대한 가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민의 위인으로 남은 아버지조차, 한 집 안의 불행을 끝내 막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바로 인간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부모도 없고, 완벽한 자식도 없으니까.


가족은 늘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성공은 박수로 남지만, 가족의 기억은 눈물과 웃음으로 남는다.

그래서 가족 이야기를 꺼내면 누구든 웃다가도 금세 울컥한다.


누군가는 집안의 아픈 손가락이 되고, 또 누군가는 그 손가락을 감싸 쥔 채 평생을 살아간다.

빅토르 위고의 딸 아델을 떠올리면서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려 애쓰지만,

사실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내 곁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지켜내는 일인지 모른다.

빅토르 위고의 이름이 영원히 빛나도, 아델의 눈물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며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의 위인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누군가의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 아픈 손가락, H의 어린 적 사진을 보며,

From Züri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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