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로는 살을 못 뺀다

왜 우리는 늘 의지 탓을 할까?

by 온 세상이 내 편

의지로는 살을 못 뺀다

오늘은 다시 살려보는 '온 세상' 테마 연재에 건강·다이어트·미용이라는 주제를 새로 더한 첫 글이다.

돌아가던 기존 테마들 사이에 이 주제를 굳이 다시 끼워 넣은 이유는 단순하다.

운동이든 다이어트든, 이제는 방법보다 태도와 구조를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온 세상'의 테마 연재는 ‘건강’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많이 오해받는 주제 하나를 골라봤다. - 의지로는 살을 못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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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는 언제나 너무 쉽게 호출된다

다이어트 이야기를 하면 늘 따라붙는 말이 있다.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

“마음만 먹으면 되지.”

“결국은 본인 문제다.”


이 말들은 너무 쉽게 던져지고, 너무 당연한 결론처럼 소비된다. 그래서 살이 안 빠지면 사람은 자기 몸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된다.


일단, 내가 다이어트 이야기를 하면 다들 밥맛 없다는 듯 째려보지만, 사실 찐 사람은 찐 사람대로, 마른 사람은 마른 사람대로 각자의 추구하는 몸이 있다.

그리고, 사실 엄격한 의미로 ‘다이어트’란 건강을 테마로 한 ‘식이요법’을 말하는 것으로 누구나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이다.


나도 필요에 의해서 가끔 엄격한 다이어트를 한 적도 있고, 실패를 한 적도 있다.

한동안은 정말로 의지가 부족해서 실패한다고 믿었다. 더 참아야 한다고,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조금만 더 버티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지쳤고, 의지를 다질수록 더 자주 무너졌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의지는 생각보다 굉장히 소모적인 자원이다.

잠을 못 자도 줄어들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줄어들고, 하루 종일 선택을 많이 하면 저녁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같은 사람도 어떤 날은 샐러드를 고르고 어떤 날은 과자를 집는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성격이 아니라 상태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이 모든 조건을 지운 채 결과만 놓고 말한다.

“왜 못 참았어?”

“왜 또 실패했어?”


사실 몸은 이미 한참 전에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걸 무시한 채 ‘의지’라는 이름으로 계속 밀어붙이고 있었던 셈이다.


나한테 변화가 생긴 건 의지가 강해졌을 때가 아니라 환경을 바꿨을 때였다.

즉, 운동 시간을 무리하게 잡지 않았고, 굶는 방식 대신 먹는 방식을 바꿨고, ‘이 정도면 괜찮다’는 기준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조정했다.

일례로 나는 평소의 ⟪스트레칭+복근운동+근력운동+유산소 운동⟫ 풀세트 버전에서(이 버전은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근력운과 유산소 운동을 둘 다 하는 대신 둘 중 하나만 격일로 하는 구성으로 바꿨다. 또, 16시간 단식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고, 배 고프면 삶은 달걀이나 껍질째 먹는 생과일로 급한 배고픔은 해갈해 줬다. 대신 최근 급격하게 먹는 양이 늘어났던 간식(단거)’를 끊었다. 식사양은 줄이지 않고 밥으로 주식을 하는 대신 밥 없는 일품요리로 바꿨다.

이렇게만 해도 1주일 만에 1kg는 그냥 빠졌다.- 무엇보다도 체지방이 확 떨어졌다.


야채 샤부샤부(좌)와 샤부샤부 육수(우) : 나중에 육수에 밥 넣어 죽을 만드는 대신 두부면을 넣어 볶은 두부면으로 밥 대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기하게도 그때부터는 버틴다는 느낌이 줄었다.

노력하고 있다는 감각보다 그냥 살고 있다는 느낌이 먼저 왔다. 살은 그다음 문제였다.

이쯤 되면 이건 다이어트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일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고, 우리는 자꾸 의지로 해결하려고 한다. 더 강해지려고 하고, 더 단단해지려고 하고, 더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오래가는 사람들은 의지가 센 사람들이 아니라 의지를 덜 쓰며 사는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지 않는 사람들,

매번 결심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든 사람들인 것이다.



- 단상 : 의지를 아끼는 사람 -


최근 들어 ‘잘 사는 사람’의 기준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애초에 자신을 끝까지 몰아가지 않는 사람.


무언가를 계속 해내는 능력보다 중요한 건,

그 일을 계속해도 자신이 무너지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늘 더 강해지라고 말하지만,

삶에서 진짜 필요한 순간은

강해지는 방향이 아니라

정확해지는 방향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선택이

나를 앞으로 데려가는지,

아니면 잠시 버티게만 만드는지.


그래서 나는

의지를 쓰는 삶보다

의지를 남겨두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모든 순간을 결심으로 채우는 대신,

결심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고,

스스로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지 않는 쪽으로.


결국 오래가는 사람은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마찰을

최소화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이제

그런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



의지는 나를 단련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소모시키지 않기 위한 마지막 안전장치였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증명을 내려놓고, 의지를 비축하는 하루, -Day1

From Züri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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