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인 남편과 본전도 못 건질 말싸움 연대기
나는 어디 가서 말로 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도 어디 가서 말을 못 하는 편이 아닌데도, 유독 말의 논리 전개에서 번번이 내가 지는 상대가 있으니, 다름 아닌 (그쪽 방면으로는 내가 아주 우습게 생각했던) 남편이다.
남편은 누가 봐도 아주 전형적인 엔지니어형이다. 말수도 별로 없고, 다른 사람들을 웃기거나, 유머 있고 너스레를 잘 떨어서 이성에게 인기가 있거나, 재치와 기지가 번득이거나 하는 형이 아니다. 그저 심플하고 때론 고지식하기까지 한… 성실, 우직한 형… 즉, 내가 말로 밀릴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상대였다.
내가 아는 한국 남자들은 대체로 여자를 상대로 말싸움으로 끝장을 보는 일 자체를 안 하더라.
예를 들어 언쟁이 붙어 몇 마디 오가다가도 결국엔 “아, 그래, 그래. 너 잘났어. 네 말이 맞아. 귀엽다, 귀여워” 하고 대체로 접는 편이다 -그들 말로는 ‘봐준다’라고 하나. ‘뭘 여자랑 싸워…’ 이런 마인드?
그런데, 프랑스 남자들은 이런 게 없다. 일단 언쟁이 시작되면 끝까지 마지막 한 마디도 놓지 않는다. (결혼해서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봤을 때도 그랬었다) 그리고 순딩이 남편도 그건 예외 없었다.
결혼 초에 언쟁 끝에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말꼬리 잡고 무는데 너무 약 올라서,
“아 됐어, 관둬. 잘났어, 정말. 여자를 상대로 남자가 어, 그렇게 꼭 마지막 한 마디까지 이겨먹어야겠어?” 했더니
“거기서 남자 여자가 왜 나와?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너 지금 이게 나를 남자로 대하는 거야?” 이러는데… 와 씨, 나 뒤로 꺼~억 넘어가는 줄 알았다.
이런 사람이다 보니, 내가 말로 한 방 먹는 건 다반사이고, 또 한편, 그런 만큼 말로 사람을 잘 띄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두 가지를 함께 쓸 때다. 즉 띄워주며 한 방 먹일 땐 내가 할 말을 잃는다는 거다.
-이 쪽 사람이다 보니, 평소 때 하는 달달한 말들은 접어두더라도, 칭찬할 때, 화날 때, 멋쩍을 때 쓰는 표현들이 다 좀 의외인데, 딱히 받아치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
남편은 규칙이나 연관성이 없는 뭔가를 그냥 달달 외우는 걸 못한단다. 그래서인지, 사물의 명칭, 사물을 두었던 장소, 전화번호 이런 걸 잘 못 외워서 내가 자주 핀잔을 주는 편이다.
“아니, 그 암기력으로 공부는 어떻게 했어?” 했더니
“나, 머리 좋아. 너보다도 더. 너 그거 아직도 몰라? 내가 너보다 더 머리 좋다는 건 이미 입증이 된 건데..” 하길래,
“어머? 언제? 뭘로?... 난 모르는 사실인데..” 했더니.
“야, 각자가 고른 파트너를 한 번 봐봐. 너는 나를 골랐고, 나는 너를 골랐어. 누구 머리가 더 좋아? … 하더니, "대답 잘해라 너....”를 붙이더라.
대답 못 했다. 아니, 안 했다. 이 상황에선 받아치는 사람이 잃는 거다! 아닌가?
반면에 자기가 약 오르면 심술궂은 말도 잘한다.
물론 나는 말로 당한 게 많아서 그렇게 약 올라서 하는 말엔 살짝 통쾌하기까지 하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어디 꼴 보기 싫은 인간이 한 둘이겠는가! 그럴 때 누구 붙잡고 얘기하나? 가족이니까, 젤 가까운 사람이니까, 그냥 거기다 얘기하는 거 아닌가?
앞에선 그냥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면 그뿐인 것을, 남편은 꼭 그럴 때 무슨 자기가 정의의 심판관이라도 된 양, “양쪽 말 다 들어봐야지. 그쪽 생각은 다른 뭔가가 있었겠지…” 하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잠깐 언급한 적 있었지만, 난 반드시 한 번은 되돌려준다. (뒤끝 확실하다)
사람 좋아하고 잘 어울리는 남편도 유난히 안 맞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필 남편 직속 상사였던 시절이 있었으니(그 직속 상사는 나랑도 잘 아는 사람이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맨날 ‘그 자식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쏟아내던 어느 날이었다.
듣다 보니 남편 특유의 고지식함 때문에 오해가 생긴 듯했다. 내가,
“당신이 그 사람 속을 긁었네, 뭐.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했더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 자식이 일부러 그런 거라니까…(어쩌고 저쩌고)” 씩씩 대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일부러 그런 건데 거기에 응수를 하니까 말려드는 거 아냐,…(어쩌고 저쩌고)” 했더니, 남편이
“아, 씨. 관둬!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무슨 …” 하면서 대화를 끊고 돌아서더니 잠시 있다가 갑자기, (분이 덜 풀린 듯) 다시 내게 와서는
“야, 너 가서, 그놈이랑 그냥 같이 살아!” 하는데
“?!?! (내가 왜?)… 뭐야, 정말... 유치하게…” 하면서도 나 뒤돌아서며 픽 웃었다.
'열 좀 받으셨군...ㅋ... 거 봐. 자기도 당해보니 열받지. 아, 통쾌해! 하면서도
‘그래도 그렇지. 가서 같이 살란다. 놔 참…ㅎㅎ.' 하며 좀 귀여운 생각이 드는 건 왜였을까.
이 쪽 사람들은 말할 때 표현이 굉장히 솔직한 편이다. 직진이다. 일부만 감추거나 돌려 말하거나 하질 않는다.
오랜 세월을 이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맞춰 살다 보니 ‘실제의 나’보다 더 쿨하게 넘기려고 애쓰는 편이건만 가끔 ‘이대로 넘어가도 괜찮은가?’ 싶은 때도 간혹 있다. 특히 남편의 간 큰 말에 대해선…
얼마 전에 무슨 말 끝에, (어떤 주제의 어느 말 자락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내가,
“ … 그러다가 나중에 당신 바람나는 거 아냐?…”했더니,
“아, 그건 아직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여러 번 노력했는데, 안 되더라고. 아직은 네가 젤 나아…” 하는데,
“???!!!”
아니, 이 정도면 진짜 간데기가 부은 거 아닌가? 뭘 해? 노력을 해??!!… 여러 번?… 어이가 아니라 어의를 상실했다….
이걸 당당히 내게 대놓고 말하는 이 남자에게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는 건가…
아니, 본인 의도는 그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넌 아직까지 최고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진심인지 농인지 모를 그 여러 번의 시도를 눈 감고 입 다물고 넘어가야 하는 건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반쯤 벌린 입을 하고선 ‘피이~’ 하곤 그냥 넘어가는 나.
쿨한 게 아니라, 거의 ‘물’ 아닌가?…. 이쯤 되면 거의 바보인게지.
이 물탱이 바보는 이렇게 또 매번 진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땅을 치며 말이다.
맨날 본전도 못 건질 그놈의 말싸움. 난 언제 한 번 이겨보나...
정녕 이번 생은 글른 건가?
애고, 애고... 왜 사냐건…웃. 지. 요.
왜 사냐고 묻는 밤 ◡̈⃝,
From Zürich �~
서로 주고받는 말처럼 음들이 부딪히고 밀려나며,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교차하면서 긴장을 만든다.
언쟁이 늘 그렇듯, 한쪽이 팔짱을 끼고 돌아서고 다른 쪽이 궁시렁거려도 결국은 허무하게 “띵—” 하고 끝나 버리는 것.
그 허망하고도 익숙한 결말을 이 곡에 담아보았다.
https://youtu.be/iGx8RGdfujQ?si=ioq-Ej-kg10FUr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