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 “키 커?”

외모가 스펙이 된 사회에서 우리가 사람을 '견적'내는 방식

by 온 세상이 내 편

연초 계획 단골손님

연초다.

이 시기만 되면 대부분의 계획표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항목이 있다.

운동, 그리고 다이어트.


겉으로는 건강을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시작하는 진짜 이유는 ‘건강’보다는 ‘외모’에 더 가깝다.

살을 빼고, 조금 더 보기 좋아지고, 거울 앞의 나를 지금보다는 덜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서.


오늘 '온 세상의 테마 연재'로 원래는 ‘건강 & 운동 이야기’를 하려다 이 주제로 넘어오게 된 것도 그래서다.

건강과 미용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외모라는 주제를 피해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됐을까.

특히 다른 나라보다도 유독 한국에서는 외모가 너무 앞자리에 놓여 있는 이유가 뭘까.


만남의 조건

한국에서 사람을 소개받을 때,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묻는다.

여자를 소개받을 땐 “예뻐?”가 먼저 나오고, 남자를 소개받을 땐 “키가 몇이야?”라는 질문이 자연스럽다.

능력이나 성격은 그다음이다.


외국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질문은 너무 뜨악한데 반해 우리 나리에서 이 질문이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한 절차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이 구조가 꽤나 유연하다는 점이다.

남자의 경우, 부자라면 키는 어느 정도 상쇄된다.

그런데 여자는 다르다.

아무리 똑똑해도, 아무리 잘 살아도 일단 얼굴이 ‘받쳐줘야’ 한다는 전제가 따라붙는다.

외모는 조건이 아니라 통과 기준처럼 작동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아직 만나보기도 전에 이미 스스로를 평가하고, 낮추고, 방어한다.


“나 별로예요.”

“기대하지 마세요.”


이 말들은 겸손이 아니라, 미리 던지는 방패다.

미리 낮춰놓지 않으면 평가의 화살이 너무 정확하게 날아온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유독 얼굴 노출이나 사진에 부담을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여지는 순간, 평가가 시작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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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보다 내면’이라는 말의 함정

흔히들 말한다.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지.”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과는 어긋난 말이라고 느낀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아무 정보 없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시간이 필요하고, 관계가 필요한 부분이다.

결국 외모는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첫 관문이 된다.

그래서일까.

이 나라는 성형외과가 잘 되는 나라로 자주 언급된다.

나는 성형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선택을 문제 삼고 싶지도 않다.

다만 질문은 하고 싶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고치고 싶은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왜 능력보다, 성취보다 외모가 먼저 통과해야 할 조건이 되었을까.


외모가 중요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외모 말고 다른 걸 말할 줄 모르게 된다. 대신 숫자와 기준만 남는다.

키, 몸무게, 나이, 얼굴 점수.

그리고 그 기준 앞에서 사람들은 점점 작아진다.


연초의 운동과 다이어트 계획이 가끔은 조금 슬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건강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탈락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다.


외모가 사라지는 순간들

흥미로운 경험들이 있다.

외모를 보기 전에 먼저 교류가 생긴 경우다.

업무상 메일로, 글로, 댓글로 어떤 사람의 생각과 말투를 먼저 알게 된 상태에서 나중에 얼굴을 보게 되면 이상하게도 외모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든다.

심지어 외모를 보긴 봤을 텐데, 평가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이미 그 사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사람이네.” 혹은 “의외다.”라는 말은 나왔지만, 그게 좋고 나쁨의 판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미 ‘사람’으로 인식이 끝난 뒤였기 때문이다.


SNS에서도 비슷하다.

글로, 댓글로, 오랜 시간 교류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면 그때의 외모는 더 이상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이미 그 사람의 결, 생각의 방향, 온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외모는 플러스가 되면 되었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나는 확실히 알게 됐다.

외모를 먼저 보지 않게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외모 이전에 사람이 먼저 와닿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외모가 중요한 시대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이 사람으로 먼저 도착할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 만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를 먼저 탈락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외모가 아닌 다른 언어로 나를 먼저 건네는 쪽을 선택해 보려 한다.


외모로 줄 세워지는 사회 한가운데서, 끝까지 사람으로 남는 방식.

지금의 나는, 그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애매한(?) 내 외모보다는 좀 더 확실한(?) 내 내면의 깊이에 자신 있다. ㅍㅎㅎ…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

개인적으로 나는 남자의 키나 외모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편이다.

철이 들어서가 아니라, 젊어서부터 전혀 다르게 생긴 외국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다 보니 외모에 대한 판단 기준이 흐려진 탓도 있는 것 같다.

(의외로 프랑스 남자들은 크지 않다. 흔히 170cm로 유럽 사람치곤 작은 키다.-내 눈도 그저 ‘크다’, ‘보통이다’만 판단할 뿐 몇 cm를 구분할 만큼 그쪽에 예민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은 전혀 다른 지점에서 마음이 닫히는 순간들이 있다. 그건 외모보다도 오히려 목소리와 톤이다.

업무상 주고받은 글이나 말의 내용은 진중하고 괜찮았는데, 막상 목소리를 듣는 순간 톤이 여성처럼 가늘고 지나치게 높고 빠르거나, 말의 리듬이 경박스러운 경우.

그 속도감 하나로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진 적이 있었다.


여자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외모를 떠나, 말을 시작하자마자 억척스럽고 우악스러운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사람. 주위를 고려하지 않는 큰 목소리… 의 여성을 만나면서 나는 본능적으로,


‘아… 저렇게 나이 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보고 있던 건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결'과 attitude였다는 걸.


그건 미의 기준이 아니라 삶의 방향에 대한 감각에 더 가깝다.

외모보다 훨씬 오래 남는 것, 그리고 결국 사람을 판단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외모 안 봐요.”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

“다 예뻐요”라는 유치한 말도 하고 싶지 않다.(듣는 본인도 안 예쁜지 안다.)


다만, 외모가 너무 앞에 서 있는 사회일수록 우리는 외모 말고 다른 걸 보여줄 기회를 잃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외모보다 더 큰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그건 글일 수도 있고, 말일 수도 있고, 생각의 깊이나 태도, 어떤 사람은 유머 감각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몸을 쓰는 능력일 수도 있다.

요즘은 다행히 그런 것들이 먼저 닿을 수 있는 통로도 많다.


나는 이제 사람을 만날 때 얼굴보다 바로 그 ‘사람’을 먼저 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사람은 결국, 외모마저 낯설지 않게 만든다.






외모보다 더 큰 ‘나’를 만드는 하루의 끝

From Zürich �~






� 오늘의 음악 : 〈Belle〉 – 뮤지컬 Notre-Dame de Paris

이 곡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모티프로 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등장한다.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두고, 전혀 다른 세 남자가 같은 사랑을 노래한다.

추악한 외모로 세상에서 배제된 꼽추 콰지모도, 신을 섬기지만 욕망에 흔들리는 프롤로, 그리고 잘생긴 군인 페뷔스.

이 노래에서 ‘아름다움(Belle)’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각자가 품은 욕망과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다.

가장 순수한 사랑은 가장 추한 얼굴에서 나오고, 가장 잘생긴 얼굴은 가장 가벼운 마음을 품는다.

외모가 먼저 평가되는 세상에서, 이 노래는 묻는다 —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사랑하고 있는가.

https://youtu.be/ytD2FfzosDY?si=7avoEK3G7AW-O1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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