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필름남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윤 Aug 31. 2016

물안개

아르헨티나 이과수

포즈 두 이과수 Foz do Iguaçu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바로 이과수로 먼저 가 배낭을 유료 사물함에 넣고 구경하기로 했다. 웬만해서는 우산 쓰는 것보단 비 맞는 것을 더 좋아하는 둘이라 우비 입은 사람들을 보며, '폭포 물이 튀어봐야 얼마나 튀겠어.'라는 생각으로 운동화만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비가 멈출 생각을 안 했다. 빗속에서 폭포소리는 선명히 들리지만 보이지는 않는 트래킹 코스를 걷다가 이내 오한이 들었다. 결국 폭포가 보이는 곳에 다다라 우비를 구입해 걸치고 아무도 없는 폭포 위 다리에서 길거리 낙엽마냥 나풀거렸다.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던 브라질 이과수는 1시간 반을 비 내리는 숲을 걷다가 30분 동안 비인지 폭포인지 모를 물을 맞은 물안개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브라질의 이과수가 너무 뿌연 기억으로 남은 탓인가 기대조차 되지 않던 이과수의 둘째날이었다. 6시간씩이나 둘러봐야한다는 말에 눈을 뜬 아침부터 진이 빠졌다. 이과수에 가기 전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밤버스도 예약해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남자친구는 브라질 출국도장과 아르헨티나 입국도장을 얻을 생각에 신이나보였다. 



푸에르토 이과수 Puerto Iguazú

a fairy tail in our universe @Puerto Iguazú, Argentina

  이과수는 보통 이틀 일정으로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고, 숙박은 브라질 쪽인 포즈 두 이과수Foz do Iguaçu에서 해결하는 것이 선호된다. 우리도 전날 빗 속의 브라질을 포즈 두 이과수 마을에서 마무리했기때문에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야 했다. 포즈 두 이과수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니 'Next' 라며 무심하게 가르킨 방향으로 또다시 짐을 들쳐 메고 걷다가 바로 옆 골목이라는 남자친구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골목 입구에는 택시서비스가 있었고, 조금 더 안 쪽을 보니 운행하지 않는 버스가 서있을 뿐이었다. "버스정류장이 없잖아!"라며 두 블록 더 손가락 방향을 향해 걸었지만 아르헨티나로 가는 버스가 정차할만한 정류장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처음 그가 말했던 곳으로 돌아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아르헨티나 국기가 그려진 정류장이 떡하니 있었다. 브라질 국경까지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소심한 놈.


  버스에서 내려 다시 입을 연 것은 남자친구였다. 내 주장을 우긴 것에 토라져있기엔 검문소 앞에 서있던 오토바이 네 대가 너무 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남미여행보다도 유라시아 오토바이 횡단을 하고 싶어 했지만, 내가 오토바이를 혼자 운전하는 것은 걱정이되고, 나를 뒤에 태울만한 오토바이는 가격이 수용불가한 숫자였던 까닭으로 그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재도 바이크 여행자를 보면 "나도 오토바이로 여행하고 싶어."라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남자친구는 바이크 여행자들 틈에서 브라질 출국도장을 받고서는 금새 활짝 핀 꽃같은 표정으로 나왔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버스를 기다리며 그에게 국경다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오빠 우리 이제 다리 지나가는데 반은 브라질 색이고 반은 아르헨티나 색이래!" 단순한 놈.


his accent @Cataratas del Iguazú, Argentina


  다행히도 비는 멈췄지만, 여전히 흐린 이과수였다. 풀밭에 굴러다니는 코아티를 찍겠다고 뷰파인더만 들여다보던 내가 고개를 돌리다 그만 소리없이 내 옆을 지나가던 코아티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조금 활기찬 이과수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남미여행을 준비하며 참여한 메신저 그룹채팅방에서는 여행을 출발하기 전부터 이과수 입장료가 인상되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여행을 마칠 때 쯤 또 한 번 오를 것이라는 정보를 봤다. 실로 가격이 꽤나 센 입장료와 더불어 이과수의 하이라이트인 악마의 목구멍으로 들어가 폭포물을 맞는 보트투어 비용은 여행자들의 지갑사정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남들 하는 것을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욕심에 입장과 함께 보트투어 신청도 놓치지 않았지만, 이과수는 내게 끝까지 짙은 물안개로 남았다.


noname @Cataratas del Iguazú, Argentina


매거진의 이전글 1+1+1, 빗 속의 브라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