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이과수
장장 29시간의 이동으로 현지시간 오전 열 시쯤 과룰류스 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고작 세 달 여행에 우리는 각자 65L와 50L의 배낭과 귀중품이 들은 보조배낭을 각각 가득히 채워왔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공항에 앞뒤로 그 배낭들을 메고 섰다. 예약해놓은 호스텔까지는, 공항에서 버스터미널까지 공항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에서 호스텔 주변 역까지 지하철로 11개 정거장을 지나, 호스텔 주변 역에 내려 비를 맞으며 1km를 걸어야 했다.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 유난히 브라질 친구들이랑 사이가 좋아 포르투갈어를 조금 배워놓은 덕인지 표를 사거나 길을 찾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장거리 비행에,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에, 아무리 좋다지만 17kg는 족히 될 것 같은 배낭의 무게가 내 정신을 짓눌렀다.
우리 드디어 왔어! 진짜 남미야!
사실 내가 지구 반대편에 와있다는 사실을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번지수를 착각해 주변을 한참 헤매며 비까지 흠뻑 맞고 오들오들 떨며 도착한 호스텔은 핫샤워가 불가능했다. 배가 너무 고픈데 도저히 씻지 않고서는 한 발 딛기도 싫은 찝찝함에 '에라 모르겠다.' 졸졸 떨어지는 찬물로 샤워를 마치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 큰 배낭 가득에 수건 한 장을 안 넣어왔다. 그나마 덜 젖은 티셔츠로 물기를 대충 닦고 나왔더니 수건 달라고 내미는 남자친구의 손에 아예 젖어버린 티셔츠를 쥐여줬다.
호스텔 옆집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방으로 돌아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오후 5시쯤 눈을 떴는데 오기 전부터 꼭 봐야겠다고 다짐한 성당이 생각났다. 브라질은 다른 남미 국가들에 비해 치안이 좋지 않은 편으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대도시인 상파울루가 제일이었다. 그래서 역시나 1차 요청은 거절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당장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는 버스가 예약되어있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여행 첫날인데 실망을 안겨주기 싫어서였을까 두 번째 부탁에 우리는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아빠와 약속한 단 한 가지. "만나는 모든 성당을 그려올게!" 그림과 함께 사진을 선물하고 싶어 비가 오는 중에도 필름카메라를 들이밀었지만 50mm 렌즈 화각의 한계를 알아버린 여행 첫날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보이는 모든 성당을 첨탑만 나올지라도 모조리 찍어온 효녀다.
빗속에서도 아름다운 상파울루 Sé 대성당, 부랑자가 유난히 많았던 Sao Bento 성당을 차례로 보고 깔리는 어둠에 다시 지하철을 탔다. 호스텔 주변 큰 도로엔 금융계 회사들이 보이고 골목엔 간간이 호텔과 아틀리에, 꽤나 치안이 괜찮아 보이는 동네였지만 혹시 모르는 마음에 남자친구는 내 손을 잡고 걸음을 빨리했다. 어찌 됐든 남미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를 축하하기 위해 동네 슈퍼에 들러 브라질 맥주 '브라흐마(Brahma)와 우리나라의 사이다와 비슷한 과라나(Guaraná)를 샀다. 과자도 몇 봉지 사와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나는 과라나 한 캔을 다 마시지도 못하고 골아떨어졌다.
탕! 탕탕! 아아아아아악!
자정쯤이었다. 벌떡 일어났지만 소리는 내지도 못하고 입을 막았다. 분명 총소리였다. 그리고 사람 비명이 이어 들렸다. 서로 눈을 마주쳤고, 웃었다. 남미로구나, 브라질이로구나! 깨진 창문 틈새로 우리의 존재 사실이 새어나가기라도 할까 소리 없이 수다를 떨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제야 우리는, 아니 나는, 이상하게도 여유를 느꼈다. 내가 여행을 시작했구나 기쁜 밤이었다.
아침 버스를 타고 도착한 리우데자네이루는 비가 퍼붓고 있었다. 남미라면 보통 페루의 마추픽추, 볼리비아의 우유니와 함께 브라질 하면 당연히 예수상을 떠올리지 않는가. 예수상은커녕 나를 향해 오는 차도 안 보일 지경이었다. 이 동네의 분위기를 느낄 겨를도 없이 내게 주어진 반나절을 대자연에 헌납하고 생각했다. 무슨 배짱으로 남미에 오기 전부터 국내선 비행을 예약해놓았는지, 나 스스로가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아직까지도 아쉬운 일이, 버스를 타기 전 SNS에 호스텔 체크인을 했는데, 버스에서 잠시 잡힌 와이파이로 나를 무척이나 그리워 한 친구에게서 "믿기지가 않아!"라며 나를 안타깝게 했다. 그녀는 내가 묵는 호스텔과 자신의 집이 겨우 700m 거리밖에 되지 않으며, 내가 브라흐마와 과라냐를 산 슈퍼는 그녀가 매일 들리는 곳이고, 바로 앞에 맛 좋은 커피집이 있으니 만나자고 했다. 나는 고속도로 위에서 SNS에 충실하지 않았던 나를 책망했다. 나를 딸처럼 예뻐라 하는 그녀의 엄마조차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녀들은 '우리는 언젠가 만날 사람들'이라며 언제나처럼 나를 뜨뜻하게 만들었다. 지구 반대편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조리가 불가능한 호스텔을 나와 식당을 찾는데, 바지는 이미 벌써 무릎 위까지 젖어오고, 남자친구의 우유부단-좋게 말해 양보가 습관인 듯-한 성격이 고픈 속을 더욱 쓰리게 했다. 우산이 하나라 저 멀리 떨어지지도 못하고 괜스레 터벅터벅 거리며 짜증을 부렸다. 코너에 있는 식당은 왠지 모르게 올드해 보였고, 맞은편 코너에 있는 식당은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또 두세 블록을 돌다가 결국 올드해 보이던 식당에 우산을 접고 들어갔다. 남미에 오기 전 다짐했던 것이 레스토랑은 가지 않는 것이었는데, 여행 초반부터 자꾸만 내 생각과 다르게 진행돼 심기가 불편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이, 인터넷에 보면 여자친구가 화나면 고기를 사주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추천 메뉴에 있는, 게다가 내가 유일하게 알고, 또 좋아하는, 피카냐(Picanha)를 주문했다. 말도 않고 치익치익 고기를 구워 배불리 먹고 나니 레스토랑 안의 꽉 막혀 보이던 할아버지들이 중년 신사로 보이질 않나, "오빠 이 동네 셀렙들이 많대."라며 마냥 웃어 보였다. 고기가 해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