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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Aug 04. 2016

오. 키. 나. 와.

여행기 아님. 어쩌면 여행기.

 여행을 다녀왔다.

 가장 비쌀 때. 가장 사람 많을 때. 더 더운 곳으로.

 

 작년에 아이 학교 방학과 학원 방학, 신랑 휴가를 합쳐 날짜를 따져보니 너무너무 비싸기만 해서 이럴 바에야 그 돈으로 흥청망청 각자 갖고 싶은 걸 사고 맛있는 걸 먹자. 하며 집에 있었었다.

 그랬더니. 영영 여행을 가지 않게 되고. 점차 그 돈으로 다른 걸 하자.. 하게 되어버려 이번에는 꼭 여행을 가자. 하며 맘을 먹었다.

 

 비싸거나 말거나.

 나는 갈 테다.

 그러니 얼른 알아봐라. 했더니 신랑이 이것저것 다 비싸다며 망설이길래.

 비싸도 가자. 걱정 말고 가자. 여행 가려고 돈 벌고 저금하는 거지 사람 인생에 뭐 더 중요하거나 더 비싼 가치는 잘 없다..

 그렇다면 비싸게라도 갔다 오자. 아이가 점점 클수록 여행은 점점 힘들어질 것 같았다.

 이번 여행도 아이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수학학원(빼먹으면 진도 나간 것만큼 숙제에 엊어주셔서 아이가 너무 부담스러워한다) 방학기간에 맞추어 일정을 짰으니 말이다.




 오키나와.

 제주도보다 더 아래에 있어서 엄청 덥고 습하다는데.

 그래도 가자.

 가야 한다.

 

 

 역시. 공항에 도착해보니 뜨겁고 습했다.

 예전에 가본 오사카와 도쿄보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휴양지. 시골. 작고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덥고 뜨겁다가도 우다다다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편의점. 한적함. 바다.

 그리고 그 속에 일상. 일상처럼 돌아다니기.




 일본을 좋아하고 제주도에 살고 싶어 하는 나는

 일본과 제주도를 섞어놓은 것 같은 이 곳이 괜찮을 꺼라 생각했다.

 너무나 뜨거웠던 날씨 때문에 쉽게 지치게 되어 버리긴 했었지만.

 나는 여행 가서 일상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건 크게 상관이 없었다.

 

 

 우선은 책자에 나와있는 유명한 곳들을 신랑이 안내한다.

 나는 책자 들고 안내하고 알아보고 이런 거 안 한다. 귀찮다. 그렇다면 패키지로 가면 편할 텐데 패키지여행 더 싫어한다.

 그러니까 신랑이 여행 가기 전부터 투덜거리며 알아보고 숙소랑 비행기랑 예약한다.

 그날의 일정은 그날그날 아침에 정한다.

 오늘은 여기.

 그럼 거기 간다.

 

 갔다가 사진보다 좋았던 곳은 잘 없었다.

 딱 사진 같거나 달력 같거나 엽서 같은 곳이 대부분.

 유명 식당에 찾아갔는데 맛이 없으면 완전 대실망.

 그런 일이 많았어서 일단 줄이 길면 근처 다른 식당에 간다.

 

 골목 돌아다니다 내공이 딱 있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면 역시나 대체로 감동스럽게 맛있는 집이 많기 때문에 책자에 나와있는 곳을 꼭 찾아갈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왜 사람을 먹지 않나.

                                             


 유명하다는 수족관에 다른 건 별게 없었는데 저 고래상어는 감동적이었다.

 내가 본 어떤 바다생물보다도 큰 생물체였는데 그 큰 몸으로 좁은 공간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세 마리나.

 저 물속에 사람은 설정이었는지, 진짜 유리창 청소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저렇게 큰 생물과 같은 공간에 있는데 무섭지 않은 걸까.

 저 거대한 생물체에 푹 빠져서 한참을 앞에 앉아 뱅뱅 도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큰 생물체를 어떻게 여기까지 데리고 올 수 있었을까..

 

 

 찾아보니 저 고래상어는 엄청난 양의 플랑크톤을 먹는다고 한다.

 니가 아직 사람 맛을 몰라서 그래..


이크~하며 발을 올린다. 부딛히면 어찌되는건데.


수족관을 돌다 나오니 바로 앞에 아주 유명하다는 애메랄드 빛 해변이 나온다길래 시원한 물을 한병 사들고 호기롭게 발걸음을 재촉했으나.

 조오기 앞에 그 맑은 바다가 보이기도 할 정도로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

 너무 뜨겁고 눈이 부셔서 단 1분을 걸어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 유명하다는 해변에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아니 건물 밖으로 나온 사람도 거의 없었다.

 우린 황급히 건물로 돌아왔고 다시 못 볼지도 모를 그 해변을 기꺼이 포기하고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의 여행은 이런 식이다.

 유명한 곳에 연연하지 않는다.

 덥거나 힘들거나 멀거나 안 내키면 바로 포기한다.

 다른 더 좋은 곳이 있다




 이틀째부터는 번개, 뇌우라고 날씨가 나와있었다.

 여전히 습하고 해는 뜨거웠는데. 순간 3초 만에 우와아아아아~ 하는 느낌으로 세찬 소나기가 쏟아지곤 했다.

 우다다다다 하는 느낌으로.

 근데 그게 좋았다. 나는.

 달리는 차속에서 우다다다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만나면.

 하늘은 흐렸지만 마음은 맑아졌다. 

 또 비 온다. 순식간에.

 거리가 다 젖고, 나무가 더 생생한 녹색으로 빛났다.  

 오분도 안 되어 마치 차가 폭풍우 밑을 건너왔다는 듯 비는 뚝 그치고 다시 해가 짱!

 여긴 더워도 살만하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나기가 지나간다.

 

 

 카페가 잘 없다.

 유명 관광지라고 분명 책자에도 쓰여 있는 곳인데도 그 흔한 카페 하나가 없었다.

 차를 타고 지나다 스타벅스가 보이면 손을 흔들었다.

 한국에선 잘 가지도 않는 곳인데.

 아이가 들어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커피를 판다길래 반가운 마음에 주문을 했더니 150엔.

 이거 좀 불안한데.

 역시나 우리나라 고깃집에 설치되어 있을법한 커피자판기 같은 기계로 커피를 뽑아주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ㅇㅋ.

 원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었는데 메뉴에 라떼밖에 없어 라떼를 시켰더니 기계가 고장 나서 아메리카노를 뱉어냈다.

 영어를 잘 못하는(아 물론 저도 못합니다만) 어린 아가씨가 당황하며 다시 뽑아줬지만-아 괜찮은데-역시나 아메리카노가 줄줄 나와서 흔쾌히 받아 들고 인자한 듯 웃으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받아왔다. 기계를 막 고치려고 하길래.




 말하자면 일상의 생활 같은 여행.

 나는 여행자로 이 곳에 왔지만 마치 이 곳에 살고 있었다는 듯이 여유롭고. 한량인 듯 돌아다니는 여행을 좋아한다.

 일본에 왔지만 다른 나라를 여행했다는 여행기를 마침 읽고 있었고 그 작가의 얘기에 공감하며 또 다른 나라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책은 책대로. 책 속의 나라는 그 나라대로 좋았고. 여행지는 여행지대로. 왔다 갔다 하면서 둘 다 좋았다.

 

 

 

 그래도 일본에 왔으니 초밥집은 한 번 가자!

 근데 오키나와에는 초밥집도 잘 없다. 여기 사방이 바다인데 원래 일본이 아녔어서 그런가.

 그래도 가자. 나는 먹어야겠다.

 신랑에게 미리 말해뒀다.

 내가 말이야. 오키나와에서 사람을 하나 구한 거야. 목숨을 구한 거지. 생명.

 근데 하필 오키나와 재벌(같은 개념은 아예 없어 보이는 온통 시골 같은 도시지만) 자재였던 거야.

 너무 고마워하면서 내게 돈으로 사례를 하려고 했으나 내가 쿨하게 밥이나 한 끼 사라고 호탕하게 제의를 한 거지.

 그래서 가게 된 것이 이 초밥집이야!

 그러니까 뭔 말이냐면.

 나는 그릇의 색깔 따위는 완전 무시하고 내키는 대로 주문하고 집어먹으며 배가 터질 때까지 먹겠다는 거지.

 

 그 흔하지 않은 초밥집 중에 맛있다는 곳을 어렵게 조회해서 간 곳이-무슨 이름이 도라에몽.. 과 비슷한 거였는데- 불행하게도. 역시나. 맛이 그저 그랬다.

 네이버. 너어...

 아. 이럴 줄 알았다면 돈으로 받을걸.




 셋째 날은 일요일이었으므로 우리는 대형마트에 갔다.

 주말엔 마트지.

 이 사람들은 주말에 무얼 할까.

 오호 역시나 너무 뜨거워 관광지나 해변가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있었다.

 딱 이마트 같은 분위기의 마트에 가족단위로 사람들이 바글거렸고 식당 앞에는 대기표를 받아 앉아 기다리며 왁자지껄 떠드는 분위기.

 스타벅스가 있고. 저렴한 옷가게. 문구류. 가전제품. 식품매장.

 

 반찬가게에서 파는 음식들은 뭐가 있나..

 주말에 뭘 먹을까.

 여기 여자들 둘셋 모이면 어. 거기 맛있더라.. 하는 음식점이라든지. 그 과자 먹어봤어? 하는 그 과자가 궁금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들어간 중국집.

 역시 주말엔 마트와 중국집이지.  

 

 일본풍 중국음식인데 무척 맛있었다!

 저 볶음밥 위에 계란은 푸딩보다 부드러웠고 안에 밥은 하얀 맨밥처럼 보였는데 막상 먹어보니 살짝 불맛이.

 겉에 소스는 우동국물을 졸여 걸쭉하게 만든 것 같은 맛이 났다.

 나머지 음식은 상상되는 맛인데 깔끔하여서 끝까지 싹 먹어치웠다.

 

 그나저나 이 마트 안에는 관광객은 아예 없어 보였는데

 우리가 카메라에 배낭을 들고 중국집에 앉아있으니 우리를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는 듯했다.

 실제로 신랑은 일본말로 주문을 하겠다고 하더니 자꾸 중국말을 내뱉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즐겨보던 일본 만화는 주로 음식만화들이었다.

 <아빠는 요리사>라는 시리즈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보고 있고-최근에 128권인가가 나왔다. 정말 대단한 작가다! 거의 30년째 같은 시리즈의 만화를 그리고 있다! - 이 밖에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음식 관련 만화는 종류가 꽤 다양한데(나는 그걸 대체로 다 보았다). 나는 그 속에 나오는 음식들의 맛이 너무 궁금했었다.

 일본 학생들이 흔히 먹는다는 멜론빵. 도 먹어보았는데 전혀 멜론맛은 아니었고. (어쨌든 궁금증은 풀렸다)

 각 지방에서 나오는 특색 있는 재료들의 음식들이 궁금하고 또 궁금했기 때문에.

 일본에 오면 대체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어본다.

 어. 저거 봤었어. 저거 먹자. 그러면 맛있는 것도 있고 별로인 것도 있지만.

 어쨌든 내 기억 속에 있는 음식-이름은 다 기억도 못하지만 그 모양은 보면 아니까-들을 하나씩 먹어보는 게 큰 재미다.

 

 신랑은 어차피 여행에 큰 목적을 두고 오는 사람이 아니므로.

 내가 지시하는 대로 먹어준다.

 딸아이야 요즘 먹는 걸 너무 좋아하니 대체로 기꺼이 쫓아오고.

 

 

 호텔 조식이야 역시 매우 훌륭했고.

 기본 양식에 일본식이 섞여있어 매일 조금씩 바뀌는 메뉴만으로도 꽤 여러 가지를 먹어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녁엔 스테이크.

 여긴 스테이크 유명한 집이 많다는데.

 그래서 유명한 거리에 찾아가 먹어본 스테이크는.... 또 역시 뭐 그저 그런. 질긴 고기.

 

 다음다음날 저녁 지친 딸아이가 그래도 저녁은 먹겠다며 스테이크를 또 고집했는데.

 호텔 바로 뒷길에 뜬금없이 있는 스테이크 집에 하필 가자고 했다.

 겉모습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내부를 보니 무슨 백반집처럼 생긴 집이었고 손님도 거의 없어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리고 위치도 좀 생뚱맞은 곳이라.

 하지만 허기진 딸은 위험하다.

 곧 시작될 짜증이 걱정되어 용기 내어 들어가 보았다.


영어 안내따윈 없다
맛있다!


 맛있었다!!!

 감동적으로 맛있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어여쁜 아가씨가 상냥하게 핸드폰으로 메뉴를 하나하나 영어단어로 바꾸어 설명해주었다.

 아가씨가 이뻐서 그 아가씨가 해석해준 메뉴로 하나씩 시켰는데 주방장 아저씨께 달려가 오이시!라고 엄지척 해주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가게 중앙에 있는 테이블엔 밥이며 국, 음료, 심지어 냉커피까지 '서비스'라고 했다.

 밥은 고슬고슬 맛있고 얼음둥둥 냉커피도 맛있고 미소된장국도. 소스까지.

 이건 정말 엊그제 먹은 그 스테이크랑 비교도 안되는데.

 이 동네 백반 스테이크 집을 어떻게 홍보해주지.. 하다가 이내 포기.

 그러나 혹시 모르니. 사진 하나는 더 올려보련다.

 날 감동시킨 스떼이끄집.



 

 

 쓰다 보니 꽤 길어졌다.

 이 외에도 당연히 재밌는 일이 많았지만.

 오늘은 이만.

 저걸 올리니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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