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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Aug 26. 2016

일을 시작하고 이틀 만에 관둠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상황


 이번 주 월요일은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로 한 날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인력 관리하는 회사(이 회사는 이번이 처음이다)에 가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왔었다.

 8월 22일부터 11월 30일까지라는 날짜를 확인하고 다른 내용도 꼼꼼히 읽어봤다.

 시간에 대한 명시가 없어 나를 담당하는 상무님께 다섯 번째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또 여쭤봐서 죄송한데.. 오전 9시부터 6시까지가 맞는 거죠?"

 똑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하고 또 확인하는 이유는.

 나는 아이 때문에 그 이상의 시간엔 일을 할 수 없고.

 야근수당을 준다 해도 야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월요일은 아이의 개학이자 내 첫 출근일.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일어나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나는 출근 준비를 했는데.

 전날 늦게까지 숙제를 했건만 밀린 일기를 채 다 쓰지 못한 딸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더니 급기야 집에 일기장을 놓고 가겠단다. 깜빡하고 안 가져온 걸로 하고 시간을 벌겠다나.

 아이 아침을 챙겨주고 7시쯤 나섰다. 1시간 10분쯤이 걸릴 예정이었고 첫날이니 좀 빨리 가자 싶은 마음에서.

 8시 30분에 집을 나서는 신랑이 아이를 데리고 같이 나가면 될 일이니 그건 다행이었고.

 

 

 날씨는 여전히 찌는 듯이 덥고.

 간만에 일찍 일어나 전철을 탔지만 좀 긴장한 탓인지 피곤한 줄은 몰랐다.

 첫날이라 단정히 보이려 빳빳이 다려 입은 남방이 흠뻑 젖을 지경이었으나 시원한 전철 에어컨 바람에 땀도 좀 식혔다.

 정말 간만에 가보는 여의도는 높은 빌딩 숲에 예전과 달리 무척 깨끗하고 넓어 보였다.

 일찍 도착한 덕에 잠깐 커피를 마실 시간도 있어 다행이었으나 전철역과 회사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어 15분 이상을 또 걸어야 했다.

 도착한 시간을 계산해보니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아.. 그렇다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7시 반 정도 될 터이고. 아이는 그때까지. 날 기다리며 배고파하고 무서워할 시간이 좀 더 길어질 터였다.

 시간을 잘못 계산했네.. 아이랑 다시 잘 얘기를 해봐야겠다..

 

 

 같이 일하기로 한 또 다른 두 명의 멤버와 나란히 회사에 들어가 인사를 드리고.

 세팅된 자리에 앉아 좀 기다리니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하신다는 이사님이 오셨다.

 해보던 일이니 별다른 건 없을 테지.. 역시나 별다른 말은 없으셨는데.

 

 "출근은 8시 45분, 퇴근은 6시 반입니다. 프로젝트는 내년 1월 말까지 입니다. "

 

 "예?

 저는 11월 30일까지 계약을 하고 왔는데요.. "

 이사님은 의아하다는 듯이 다시 확인을 해보겠다고 하셨으나 어쨌든 일은 1월 말까지라는 얘기였다.

 게다가. 퇴근이 6시 반이라니. 아니 왜. 나는 알바생이고, 당연 9시부터 6시까지 인 거 아닌가. 왜 맘대로 노동시간을 늘리겠다고 쐐기를 박는 거지.. 그러나 그 얘기를 그 자리에서 하진 못했다.

 

 

 컴퓨터를 세팅하고 또 다른 담당자에게 업무에 대한 연수를 잠깐씩 받았다.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는지 테스트도 하고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깔며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길에 같이 일하게 될 동료 두 명에게 시간 얘기를 물어봤다.

 내가 물론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생각보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난 것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퇴근시간이 6시가 아닌 6시 반이라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8시가 넘어간다. 나에겐 이게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고.

 셋다 계약기간을 11월 30일까지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늘어난 기간에 대해서도 조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두 분은 퇴근시간이 6시 반인 건 좀 불만스러우나 어쩔 도리가 없지 않으냐.. 하는. 어느 정도는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이었고.

 기간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야근까지.

 




 이를 어찌해야 하나...

 점심을 먹고 암만 생각해봐도 나에겐 무리였다.

 아이 방학을 피해서 일부러 계약기간이 짧은 일을 맡은 거였다.(기간이 긴 것 중에 더 좋은 조건의 일도 있었다)

 아이의 방학이 겹치는 기간에는 일을 할 수가 없을뿐더러.

 퇴근시간도 찜찜하고. 야근도 거의 불가능했다.

 

 

 나를 담당하는 인력회사 상무님께 전화를 드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인력회사와 프로젝트 진행하는 회사가 분리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까)

 담담히 듣던 이 분의 말씀은. 공손히 직접 얘기해보라고.

 본인도 을의 입장이니 얘기하기가 껄끄러운 모양이긴 하나 이건 또 무슨 상황.

 아니. 내가 9시부터 6시가 맞냐고 다섯 번이나 똑같은 질문은 해댔을 때는 '맞다'며 대답하신 분이 이 분이 맞나...

 

 

 무거운 마음으로 퇴근을 하는데 무슨 놈의 날씨가 이리 더운지..

 전철까지 걸어가는데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났고. 다시 그 지옥철을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아이가 배고파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맘이 급해졌다.

 집에 오니 8시가 넘어있었고. 아이는 배가 고팠고. 무서웠으며.

 집은 엉망이고.

 음식물쓰레기에선 벌써 냄새가 나고 날파리가 웽웽.

 빨래는 그새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우선 아이의 밥부터 챙겨주고 일찍 들어온 신랑에게 오늘의 사소한(?) 스토리들을 털어냈다.

 

 

 

 어쩔 것인가.

 이 찜찜한 기분으로 3개월을 버티자니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고.

 우선 퇴근시간 얘기라도 해보자 싶었다. 그것만 조절해주면 꾹 참고 다녀보자. 야근도 어쩌다 이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혹시 내가 이 얘기를 함으로 인해서 내 옆에 같이 일하게 될 두 명의 동료에게 해를 입히는 건 안될 일이니. 이건 분명히 내 입장이다.라는 것도 밝혀야겠다 싶었다.




두 번째 출근날.

 출근하자마자 프로젝트 총괄 이사님이라는 분께 조근조근 좋게 말씀을 드렸다.

 

1. 제가 계약서를 쓸 때 제 담당 상무님(인력회사)께 출퇴근 시간을 다섯 번 정도 확인했었다.. 나는 아이 때문에 6시에는 꼭 나가야 하는데 퇴근 시간을 조금만 조절해주시면 안 되겠느냐.. (사실 6시가 당연하다고!!!!)

2. 따라서 혹시 야근을 해야 한다고 해도 나는 야근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이 부분은. 야근을 하면 야근수당을 준다 던 지 해서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보통)

3. 프로젝트 기간이 11월 30일까지라고 알고 왔었다. 나머지 두 분은 1월 말까지 가능하다고 하시나 나는 11월 30일까지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중간에 인원이 교체되어야 한다는 얘기인데(그것도 2개월 남겨놓고 교체되면 옆에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민폐이고. 교육도 다시 시켜야 하고. 여기 분들에게도 민폐라는 건 뻔한 상황이니) 그것도 맘에 걸린다..

 

 

 얼굴이 처음부터 좋지는 않았지만.

 1번, 2번. 급기야 3번에 이르러서는 이 분도 좀 화가 난 듯했다.

 처음 듣는 얘기라며 인력회사 담당자와 통화를 해보시겠다고 하는데.

 나는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몸이 뻣뻣해져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그분들이 통화를 하고. 한 분은 화를 내며 따지는 듯했고.

 옆 동료들에게도 괜히 뻘쭘한 상황이 되면서.

 나는 일하고자 하는 맘이 훨훨 날아가버렸다.

 

 퇴근시간이고 뭐고 나는 이 상황이 짜증이 나면서.

 더운 날씨도 원망스럽고.

 더운 날씨에 땀 흘려 쩍쩍 갈라지는 화장도.

 땀이 흘러 들러붙는 바지자락도.

 깔아지지 않고 에러만 벵벵 도는 컴퓨터도.

 괜한 소리 해서 퇴근시간 조절은커녕 하루 업무 할당식으로 바뀌면 어쩌냐는 옆 동료도.

 숙제를 아직도 못해다며 어제 징징거리며 새벽까지 숙제를 하던 딸내미도.

 (입을 바지를 못 찾겠다며 아침 출근시간에 전화기를 붙들고 짜증내던 그 딸내미..)

 그 바지조차 찾아주지 못하고 딸이랑 실랑이를 벌였다는 신랑도.

 모두 모두 짜증이 났다.

 

 

 

 마음을 가다듬고 인력회사 상무님께 전화를 드렸다.

 저 인자하신 이사님께서 퇴근시간 조정은 해주시겠다고 했으나. 야근 또한 거의 없을 거라고 했으나.

 중간에 관두고 인력이 교체될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운 것 같으시니.

 어서 저를 자르시고 새 사람을 찾아보시라..

 상무님께서는. 자기가 갑자기 어디서 사람을 구하겠느냐며 괜찮으니 버티라고 하시길래.

 사람 오늘 내가 구해서 박아놓을 테니 이력서 받을 메일이나 주시라고 정중히 친절히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보다 훨씬 경력도 많고 일 잘하실 인재를 구해 상무님께 말씀드리고.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이사님께 죄송하고 죄송하다는 사과를 드리며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도 미안하다고 얘기를 하고.

 이른 퇴근을 하며 나오는데 어찌나 맘이 가벼운지.

 내가 어쩌자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맘으로 또 이렇게 일을 벌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아침 한 시간', '저녁 한 시간' 이 문제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모든 엄마들의 가장 큰 괴로움은.

 아침 한 시간. 저녁 한 시간.

 그 시간만큼의 공백에 애를 어쩌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그렇게 아웅다웅 어찌어찌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새삼 기억해내며 씁쓸했다.

 

 

 

 더 황당했던 건.

 일을 관두자마자 다음날. 출장을 가야 한다며 새벽 일찍 짐을 싸는 신랑.. 이였다.

 

 "아니... 내가 일 안 관두면 어쩌려고 그랬던 거야..

 나는 7시엔 출근을 해야 하는 거였고. 당신이 8시 반에 나가면서 애 챙겨서 같이 나간다고 했었잖아..."

 

 

 " 뭐 어떻게든 됐겠지.. 나라고 별 수가 있었겠냐.."

 

 

 신랑의 답변에 정말 짜증이 지대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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