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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Sep 26. 2016

어쩌자고 시크질을.

제가 잘못했어요. 부장님 연락 주세요. 일 열심히 잘해요..


 이대로 집에 계속 있다가는 바닥을 칠 것 같은 우울함에 으쌰 힘을 내볼까 하는 기분으로 공연을 보러 갔었다.

 저녁 8시에 시작되는 공연이라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데리고 나가 버스를 탔다.

 롯데홀 8층에 콘서트홀이 오픈되어 얼마 전부터 각종 공연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공연장에 수십억 원을 들여 설치했다는 그 파이프오르간의 소리가 궁금하던 차였다.

 현존하는 최고의 파이프오르간 연주자라는 87세의 프랑스 연주자 장 기유 할아버지가 그 첫 번째 파이프오르간 독주회를 한다는 소개가 되어 있었고. 당일 오전 운 좋게 남아있는 5개의 자리 중 두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드디어 그 악기가 처음으로 연주되는 순간이구나. 마음이 설렜다.

 

 입장권을 교환하고 얼른 딸아이에게 샌드위치와 주스를 사주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산했던 공연장 밖이 표를 교환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나오기 잘했다.. 공연도 좋을 거야. 이 공연을 보고 맘을 툭툭 털고 다시 활기차게 지내야지..

 

 그때 문득 들어온 카톡.

 지난번 알바를 할 때 알게 된 어느 언니의 안부인사.

 아.. 잘 지내시죠... 네네. 저는 지금 일은 안 하고 놀죠.. 아 예.. 지난번 어디를 가서 일하려다 이틀 만에 잘렸어요.ㅎㅎ..

 "아. 그럼 온수 씨. 일 안 할래요? 일이 들어왔는데 소개해도 될까요?"

 

 아. 좋죠..

 안 그래도 쫓겨나듯이 일을 관두고 좀 우울하던 찰나였다.

 나는 그저 내가 생존하는 생활비 정도는 벌면서 살고 싶다. 그게 이젠 좋아하는 일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사람이 자기 먹고 살 돈은 스스로 벌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며 좀 기가 꺾여 있던 찰나였다.

 그 일은 어디서, 어느 기간만큼이며 월급이 얼마인가 여쭤보니 소개해주려는 언니도 잘은 모르시는 눈치였다.

 담당자 번호 알려줄 테니 물어봐라.. 하시길래 전화번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기.. 온수 씨.. 그분이 좀 높으신 분인데.. 답변 기다리고 계세요.." 하신다.

 ?

 아. 그러니까 대충의 기간(뭐 3개월 정도라고)과 대충의 급여(뭐 경력따라 다르고 그때그때 다르다는)를 알았으니 우선 일을 할지 말지를 먼저 얼른 보고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이 쪽 일이 좀 그런가 보다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지난번에도 그리 확인에 확인을 하고 갔었어도 막상 가니 작성했던 계약서와도 다른 엉뚱 조건 때문에 관두고 나온 일이 생각나 잠시 망설여졌다.

 

 "아.. 제가 지난번 일 할 때.. 막상 가니 기간이랑 퇴근시간이랑 이것저것 조금씩 틀어지는 바람에 일을 관두고 나온 거였거든요..

 저기 조건이 딱 맞지 않으면 또 그런 사태가 벌어질까 봐서요.. 제가 그 분과 전화통화를 하고 좀 여쭤보고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조심스러웠다.

 나를 좋게 보아 일을 연결해주려는 그분이 혹시라도 언챦아하실까 눈치를 보고 있자니.

 아. 그랬군요.. 하며 연락처를 알려주시겠다고 했다.


웅장한 소리가 난다..


공연직전엔 천석이 넘는 좌석이 꽉 찼다.


 바로 공연이 시작될 시간이 되어 공연 보러 와 있어서 두 시간 후에나 연락이 가능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넓고 높은 공연장의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해졌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멋진 검은 슈트를 입고 등장하는 백발의 노신사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나는 몸을 바짝 당겨 노신사를 내려다보았다.

 공연장의 중앙에 위치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를 멀리 2층 꼭대기에서 바라보니 그 연주하는 손가락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꼭대기 자리에서도 맨 앞쪽이라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에는 가장 가까운 자리였다. 마지막 남은 자리라 가장 싸고 구석자리였지만 연주를 즐기며 파이프오르간을 바라보기에는 가장 최적의 자리였다.

 

 

 생소한 악기가 연주되고. 그 웅장한 음악을 듣고 있자니.

 저 87세의 연주자가 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전 세계를 돌고 있다는 게 경이롭게 느껴졌다. 여전히 그는 현역에서 연주를 하며 작곡을 한다고 한다. 그의 열정에 존경심이 일었다.

 

 

 파이프오르간 곡은 생소했으나. 그림으로 치면 마치 추상화 같은 느낌의 곡들이라 그의 감정과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온몸으로 곡을 느꼈다.

 하지만 한껏 기대를 하며 처음 와본 공연장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던 딸은 감기 기운마저 겹쳐 언제부턴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쉬웠지만 딸아이 눈치를 보다 1부가 끝났을 때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핸드폰의 전원을 켜니 들어와 있는 연락처가 없었다.

 내가 너무 꼬장꼬장 따져 물어 언니가 좀 기분이 언챦으셨나..

 하지만 어쩌겠나 하는 마음으로 맘을 살짝 접었다.

 집에 가자 하는 엄마를 째려보는 딸아이에게 왜.. 했더니 맛있는 거 먹고 가야지.. 한다.

 한 시간 전에 먹어치운 샌드위치는 다 어디 가고 배가 고프다길래. 몸 아픈 딸을 위해 전복죽을 사줬더니 내가 먹던 삼계탕에 닭까지 다 뜯어먹었다.

 저 먹성 좋은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일은 해야 하는 건데...

 내가 저 연주자처럼 세계적인 거장이 되는 거야 이미 틀려먹은 거고. 좋아하는 일들도 가만 보니 돈은 안 되는 것들인데..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와 할 줄 아는 거라도 접목해서 알바라도 좀 열심히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생뚱맞게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날 연락처가 찍혀있었다.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라는 언니의 얘기와 함께.

 나는 30분쯤 기다렸다가 조심히 전화를 드렸다.

 바로 전화를 받으시는 부장님의 목소리가 좀 흔들린다.

 "아 네네.. 괜찮아요. 엘리베이터 안이여서 그랬어요.. 그래요. 물어봐요..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 건지.."

 어딘가 좀 시크하다. 조심스럽다.

 

 일을 하게 되는 기간과 장소, 출퇴근 시간, 월급을 물어보니.

 기간은 3개월 정도. 장소는 조금 멀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출퇴근 시간이 9시 반부터 6시 반..

 아.. 6시 반이네요..

"왜요? 6시 반에 끝나면 안 되나요?"

 지난번 일을 하다 관두게 된 상황을 짧게 설명드렸다. 혹시 9 시가서 6시에 끝내면 안 될까요..

 "여기는 전 직원이 9시 반 출근이에요.. 뭐 6시에 꼭 나가야 한다면 맞춰드릴 순 있어요.. 30분 더한다고 뭐 얼마나 더하시겠어요?.."

 아.. 괜찮을까요. 그렇다면.

 근데. 저기 월급은. 그래서 얼마 시라는..(왜 그건 말을 안 해주시나요...)

 "얼마를 원하시는데요?" (그래서 넌 얼마를 바라는데 도대체. 살짝 요런 느낌.)

 ....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닌가.

 그 부분을 가장 먼저 제시해야 하는 거 아니었어..?

 뭐. 좋아.

 내가 받은 알바 월급 중에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 경력따라 어쩌고 했지만. 난 이만큼 받은 적도 있어요.. 하는.

 "우린 최소 000은 드리죠.. 아.. 예.. 뭐 그럼 이력서를 보내시고 그럼... " 하며 전화는 끝이 났다.

 

 

 저 쪽에서 한껏 시크하시길래. 나도 한껏 시크하게 솔직히 얘기하고 물어봤다.

 근데 그러고 보니 저분은 나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는 눈치였다. 그래서 경력은 얼마나 되시는데요.. 물어보기도 했고.

 저분이 제시한 월급은 내가 최고로 받은 알바비보다 월등히 높은 금액이어서 슬쩍 이 사람 혹시 사기꾼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껏 쓰던 알바생과 달리 고분고분하지 않고 꼬치꼬치 따져 묻는 느낌이 들어 전화통화 중간에 나를 '아웃'시킨 건지도 모른다.

 기다려도 이메일 주소를 날리지 않길래. 나는 또 좀 맘을 접었다.

 

 

 좀 뒤에 나를 소개해주신 언니에게서 연락이 와 상황을 얘기했더니 원래 시크하시단다.

 이메일 주소 아시느냐고 물어보니 보내주셔서 우선 그 주소로 내 이력서는 보내드렸다.

 보내면서도. 글쎄.. 과연 성사가 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나를 소개해주신 분께 예의를 다 해야겠다는 생각에 성심껏 써서 보냈고 이메일 내용에서는 시크한 말투는 없앴다.




 다음날. 날이 끝내주게 좋아 무작정 나왔다.

 문득 그 회사가 있다는 곳이 어느쯤일까 궁금했다.

 지난번처럼 또 막상 갔더니 훨씬 멀더라... 하면 곤란하기도 하고.

 날도 좋은데 여행 삼아 가볼까. 하는 심정으로 지도를 검색해 버스를 탔다.

 다행히 집 근처에 한 번에 가는 좌석버스가 있어 처음 타보는 버스를 타고 시간을 쟀다.

 

 

 그 버스는 훌쩍 동네를 벗어나더니.

 내가 어렸을 때 다녔던 초등학교 근처를 지나갔다. 거진 수십 년 만에 내가 다니던 학교가 창밖으로 보이니 신기하고 맘이 설렜다.

 쨍한 햇살 아래 어쩐지 깨끗해 보이는 건물과 넓은 운동장이 예전과 좀 다른 것 같기도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보는 추억의 장소였다.

 버스는 또 달려. 서울공항을 지나간다.

 말로만 듣던 공군 기지구나.. 아.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거였어...?..

 얕은 산들과 생소한 건물들.. 을 또 지나. 갑자기 높은 고층 건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바로 다음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니.

 정거장 바로 옆으로 개천이 흐르고. 개천을 다 덮을 만큼 나무가 우거져 있고. 그 나무 사이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과 물길 위 돌계단들이 신선하고 생소했다. 그 돌계단을 건너 넘어가도 새로 지어진 듯한 고층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고.

 나는 반대방향으로 육교를 건너 건물 숲으로 들어가니.

 오. 넓은 광장을 중앙으로 양 옆에 높은 건물들이 쭉 들어서 있고 그 건물들 1층에는 온갖 식당들과 카페들이 즐비했다.

 마침 점심을 먹으러 우르르 나온 사람들은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었고 옷차림이 캐주얼 해 뭔가 활기찬 느낌이 들었다.

 

 

 오. 좋은데.

 이런 곳이었어..?

 생각보다 멀지도 않고.

 마침 찾게 된 그 회사의 건물 1층에는 대형 스타벅스마저 들어가 있었다.

 

 

 '아. 이런. 시크가 웬 말이야. 한껏 굽실거리는 건데.....' 


 저런 건물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면 그 월급을 충분히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믿음이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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